[맛집을 찾아서] 육개장칼국수 40년 외길, 문배동 육칼 본점
고등학교 때 친구랑 종종 서울에 있는 맛집을 찾아다니곤 했다. 그 친구 덕분에 처음 먹어 본 음식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육개장칼국수였다. 지금이야 여러 채널을 통해 많이 소개됐고, 이화수전통육개장 등 육개장칼국수를 파는 프랜차이즈 식당도 생기며 이름을 알렸지만 당시만 해도 상당히 생소한 음식이었다. 처음 친구가 육개장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 "그게 뭐야?"라고 반문했다. 육개장에 밥 말아먹을 생각만 했지 칼국수를 말아먹을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먹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육개장과 칼국수는 환상의 궁합이구나.
그 육개장칼국수를 처음 먹어본 곳이 '문배동 육칼'이라는 식당이다. 삼각지역 인근의 오래된 건물에 자리잡아 외관은 허름했다. 그러나 막상 육개장칼국수를 먹어보니 오래된 관록의 맛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풍부한 맛이 났다. 지금껏 먹어봤던 육개장보다 훨씬 진하고 칼칼한 국물에, 적절히 삶은 칼국수 면이 인상깊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당시 이 식당이 있는 곳까지 지하철을 타고 왕복 2시간이 좀 넘게 걸렸는데, 여기까지 찾아온 값을 톡톡히 했다. 당시에는 어렸을 때라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초딩 입맛'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맛있었다.
최근 간만에 생각에 나서 이곳을 다시 찾았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운동 겸 집에서부터 식당까지 러닝을 했다. 딱 정해진 거리를 뛰면 식당에 도착하는 정도라 기분 좋게 땀을 흘리고 식당 앞에 다다랐다. 외관은 식당 바로 옆에 고가도로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을 빼면 그대로다. 식당 안도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연식 있는 식당의 모습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도 든다. '육개장칼국수' 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유명세에 비해 가게 규모도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다만 1970년대부터 40년 동안 하고 있는 식당이라고 하니, 이런 노포 특유의 느낌이 음식 맛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품게 하기도 한다. 어쨌든 가게 한구석에 앉아 육개장칼국수 정식(1만8000원)을 시킨다. 육개장칼국수에 '맛보기수육'이 추가된 구성이다.
주문 후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육개장칼국수가 나왔다. 육개장과 칼국수 면이 따로 담겨 나온다. 면을 육수에 조금씩 말아 먹어도 되고, 한번에 다 담아서 먹어도 된다. 나는 일단 초반에는 면을 한 젓가락씩 나눠서 국물에 적셔 먹은 후, 절반 정도 남았을 때 남은 면을 한 번에 다 부었다. 처음에는 마치 츠케멘(면에 소스를 찍어 먹는 형태로, 라멘의 한 종류)을 먹는 것처럼 국물에 면을 살짝 적셔 국물에 있는 건더기와 함께 먹은 후, 나중에는 국물에 면을 충분히 담가 국물이 충분히 밴 칼국수를 즐기는 식이다.
본격적으로 먹기 전에 국물을 한 숟갈 먹어 보니 맵고 칼칼하면서도 진한 고기 육수가 인상적이었다. 사람에 따라 기름지다고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된 고깃국물이었다. 여기에 아낌없이 들어간 양지머리와 파 등 건더기는 덤이다. 고민 없이 면을 말아 후루룩 먹으면서 공기밥도 시켜볼까 잠시 고민했다. 요즘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려고 하지 않으려는 중이라 실제로 시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만일 밥과 면을 조금씩 즐기고 싶다면 육개장 정식을 시키면 된다. 밥과 약간의 칼국수 면이 같이 나온다).
그야말로 딱 육개장칼국수에 기대한 '그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 갔을 때 느꼈던 그 맛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사실 육개장칼국수라는 게 육개장을 맛있게 끓이고, 칼국수 면을 잘 익히기만 하면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음식이다. 다만 생각보다 맛깔나는 육개장을 만들기가 어렵고, 너무 면이 푹 익지 않도록 적당한 쫄깃함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가 않을 뿐이다. 그런 기본적인 것을 빈틈없이 잘 해냈기 때문에 1970년대부터 40년 넘게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칼국수를 절반쯤 먹자 함께 주문한 맛보기수육도 나왔다. 육개장에 소고기가 들어가는 만큼 소고기의 남은 부위를 활용해 수육도 판매하는 모양이다. 양지, 아롱사태, 도가니로 구성됐으며 양은 많지 않지만 칼국수와 함께 곁들여 먹기 딱 좋은 양이다. 같이 나온 간장소스에 찍어 먹어도 되고, 육개장칼국수에 넣어 한번에 먹어도 된다. 칼국수만으로 살짝 아쉽다면 추천할만하다. 맛보기수육은 예전에 왔을 때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칼국수와 제법 잘 어울린다.
처음 갔을 때 느꼈던 그 맛을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어 감사했다. 비록 7000원 정도였던 당시와 비교해 가격은 1만2000원(육개장칼국수 정식은 여기에 맛보기수육 가격이 포함된 가격이다)으로 적잖이 올랐지만, 시간이 지나면 물가도 오르게 마련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문배동 육칼'은 이곳 본점도 있지만 역삼역, 삼성역 인근 등에 직영점도 있으니 그곳에서 먹어도 된다. 다만 역시 맛집은 본점을 한번쯤은 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육개장에 면을 말아먹는 '육국수'라는 또 다른 요리가 있다고 한다. 육개장칼국수와 다른 점이라면 칼국수 대신 소면을 넣고, 미리 말아져서 나온다는 점이다. 서울에서는 찾기 힘들고 주로 대구경북 지역에서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먹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칼국수보다 면이 훨씬 얇아 국물이 훨씬 면에 더 잘 스며드는 만큼, 육개장칼국수와는 또 다른 느낌의 맛이 있을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먹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