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게 남는 것] 내게 회사 구내식당이 각별한 이유
새 회사로 이직해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점심시간의 편안함이다. 그냥 점심시간이 되면 회사 동료들과 함께 구내식당으로 가서, 주어지는 메뉴를 고민 없이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가볍게 식사를 마치면 남은 점심시간 동안 쉬다가 다시 오후 업무를 시작한다.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의 점심시간이지만 내게는 썩 낯설다. 그간 점심시간이 업무 시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기자로 일하던 시절, 늘 점심시간에 사람들과의 약속을 잡고는 했다. 점심시간은 취재원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시간대이기 때문에 자의로든 타의로든 약속을 많이 잡게 된다. 겉보기에는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자리지만 취재원들을 만나는 것은 기자의 중요 업무 중 하나이기에 사실상 업무의 연장선상이다.
밥상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한다. 그냥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내가 취재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관련 업계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공통점은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나는 만큼 내가 신경 쓸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식당 장소를 어디로 잡을지부터 시작해 식사 자리에서 어떤 얘기를 꺼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대화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늘 염두에 둬야 했다. 취재원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무엇을 어떻게 더 신경 써야 하는지도 조금씩 달랐기에 늘 긴장 상태였다.
그러다 보면 음식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내 몫의 식사를 남기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여하튼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커피까지 마시다 보면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2시간이 지나는데, 미팅이 끝나고 헤어지면 거의 자동적으로 미팅이 어땠는지에 대한 복기에 들어간다. 내가 무슨 말과 행동을 잘하지 못했는지, 어떤 질문을 했어야 하는데 못했는지 등에 대해 고민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기자로서 취재원을 대하는 능력이 많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점심시간이 거의 대부분 이런 식이니 점심시간임에도 쉰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오히려 또 다른 스트레스의 요인이 된다고 보는 게 가까울 것 같다. 물론 사람들과 만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런 과정마저도 즐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식사 일정을 잡는 것도 신경쓰이는 부분이었다. 나는 기자로 일하면서 거의 항상 한 달여 정도의 점심 일정을 미리 잡아두곤 했다. 상대방이 내게 먼저 연락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내가 제안을 하는 쪽이었다. 연락을 한참 돌리다 보면 으레 한두 달 뒤까지는 점심 일정이 가득 차게 된다. 사실 그렇게 일정을 채우지 않으면 불안했다. 다른 기자들도 끊임없이 취재 아이템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나 역시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려고 약속을 잡는 데 열을 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먼저 연락을 쭉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연락을 돌려야 할 사람들도 많았고, 그 사람들이 꼭 시간을 내준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간혹 데스크가 내게 A기업의 B상무를 만나고 싶다는 식으로 콕 집어 내게 지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는 "상무님은 바쁘십니다" 식으로 그냥 어물쩍 넘어가려는 상대방에게 부탁도 하고 회유도 하며 어떻게든 일정을 잡아 와야 했다. 그렇게 줄다리기를 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였다.
기자를 그만두고 일반 직장인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실감하는 장점 중 하나는 이런 점심시간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됐다는 것이다.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식사를 하며, 늘 보던 직장 동료들과 이런저런 신변잡기적인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편안한 일인지를 실감한다. 직장에서의 점심식사가 으레 그렇듯 다들 식사를 얼른 끝내고 남은 점심시간 동안 최대한 쉬려고 한다. 그렇게 나 역시 남은 점심시간을 보낸다. 그냥 쉬기도 하고, 가볍게 산책을 하기도 하고, 뉴스 기사나 유튜브를 검색하기도 하면서... 그래, 점심시간은 원래 이렇게 평온한 것이었지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심시간을 더욱 기다려지게 하는 것은 맛있는 음식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구내식당이 꽤 잘 돼 있다. 점심에는 두 가지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양식/한식, 중식/한식 등으로 구성을 달리 하기 때문에 고르는 재미가 있다. 메인 메뉴를 중심으로 밥, 국, 각종 반찬이 고루 나오는 균형 잡힌 구성이다. 여기에 각종 드레싱을 갖춘 샐러드에 후식으로 먹을 수 있는 음료와 간식까지. 가끔 입맛이 없는 날에는 식당 한쪽에 있는 라면 조리기를 활용해 라면이나 짜파게티 등을 끓여 먹을 수도 있다.
가장 큰 특징은 한 달에 한 번씩 외부 식당과 제휴해서 '특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식당 측에서 직접 회사 구내식당을 찾아 시그니처 메뉴를 배식한다. 주로 서울에서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이나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들과 많이 제휴하는데 햄버거, 타코 등 양식은 물론 삼계탕, 수육 등 한식, 참치회정식 등 일식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특식이 나오는 날이면 평소에 다이어트 등으로 식사를 잘 안 하는 분들도 식사를 하러 가기 때문에 줄이 길게 형성되곤 한다. 대기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래도 무료로 유명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기대감이 더 크다.
아무리 점심시간을 온전히 쉬는 시간으로 보 수 있게 됐다고 하더라도, 밥이 맛없으면 점심시간이 기다려질 수가 없다. 회사 임직원용 애플리케이션에 게재된 주간메뉴를 보면서, 1시간만 지나면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전에 집중해서 일을 하는 데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회사 구내식당의 퀄리티가 임직원들에게 정말 중요한 이유다. 실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90.1%가 "직장 내 구내식당이 필요하다"라고 답했고, "다른 복지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식사를 아낌없이 지원하는 회사라면 호감을 느낀다"는 응답도 62.6%에 달했다고 하는데, 나 역시 그 설문조사를 했다면 기꺼이 그렇게 답했을 것 같다.
그렇게 맛있는 메뉴와 함께 보내는 평범한 점심시간이 지금 내게는 퍽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평안함은 한 달 치 점심 일정을 미리 짜며 불안해하던 예전의 내게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매일마다 취재원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가야 할지 머리를 싸매는 대신 오늘 나올 특식이 어떨지 기대하는 지금의 점심시간이 나는 만족스럽다. 그리고 앞으로는 적어도 밥 먹는 시간만큼은 나를 위해 쓰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