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을 찾아서] 영등포구 신길동 '우리집식당'
한동안 동네 백반집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링크). 준비해야 할 반찬은 많은데 식재료 물가는 점점 올라가고, 임대료까지 날로 상승해 비용 부담이 커질 대로 커지는 상황에서 메뉴의 특성상 음식값을 비싸게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백반으로 1만원을 받으려면 기본 반찬에 더해 적어도 불고기나 제육볶음, 생선구이 정도는 푸짐하게 줘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 다른 음식에 비해 마진율이 낮을 수밖에 없겠다 싶다.
바꿔 말하면 1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가격에 그럴싸한 백반을 제공하는 식당은 그만큼 소중하다는 얘기다. 공기밥 한 그릇에 갖은 나물과 밑반찬, 찌개나 국이 쫙 나오고 여기에 중심이 되는 고기·생선·달걀류 반찬으로 화룡점정을 찍는. 마치 집밥을 먹는 것처럼 다양한 반찬을 골라 먹을 수 있는 게 백반의 매력인데 이런 백반집이 동네 근처에 있으면 참으로 든든하다. 특히 매번 밥을 하기 어려워 나도 모르게 계속 배달앱을 켜게 되는 1인 가구라면 더더욱. 지난해 이사를 가기 전까지 내가 자주 갔었던 백반집에 오랜만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이곳의 주메뉴인 생선구이정식. 가격은 8000원이다. 잘 구워진 고등어 두 토막과 함께 제육볶음과 된장찌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열무김치, 멸치볶음, 김구이, 콩나물무침, 간장에 무친 나물(챗GPT와 제미나이는 시금치나물이라고 하는데 왠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한 개씩 가지런히 놓인 비엔나소시지와 가래떡까지. 밥과 어울리는 여러 반찬들이 잘 배치돼 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먼저 밥 한 숟갈을 뜬 뒤 된장찌개에 살짝 적셔 식사를 시작해 본다.
백반의 메인인 고등어구이. 예전에는 반 마리가 통째로 나왔는데 언젠가부터 이 반으로 토막을 냈다. 양이 줄어든 건 아니고 먹기 편하라고 토막을 낸 것 같다. 꽤나 살이 실해서 큼지막한 살코기를 밥에 얹어서 한 입에 먹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혼자 살면 사실 냄새 때문에 생선을 구워 먹기 쉽지 않은데, 이렇게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줘야 한다.
된장찌개는 뚝배기에 담겨서 나온다. 두부와 애호박, 양파와 함께 된장을 넣고 끓였다. 애호박과 양파가 꽤 많이 들어가 구수함과 함께 달착지근한 맛도 난다. 특별히 엄청 맛있는 된장찌개는 아니지만 그만큼 다른 반찬들과의 밸런스가 좋은 편이다. 부담 없이 딱 먹기 좋은 찌개다.
사실 이 제육볶음이 내가 이 집의 생선구이정식을 자주 먹었던 이유다. 생선구이정식이라고 하면 생선구이와 나물류 정도만 나오게 마련인데, 양은 많지 않지만 제육볶음까지 함께 주니 고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정말 소중한 반찬으로 느껴진다. 색은 꽤 붉으나 막상 먹어 보면 별로 맵지는 않고 야채와 함께 볶아 달콤한 맛이 감돈다. 밥과 함께 먹으면 이것만으로도 한 공기를 비울 수 있을 정도다. 요즘 고깃값이 비싸서, 오랜만에 갔더니 제육볶음이 빠지지 않았을까 좀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잘 있었다.
백반집이 그렇다. 음식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맛있지는 않더라도, 모든 음식이 고루고루 평균 이상을 한다면 충분히 손님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얼마나 기분 좋게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느냐가 중요할 텐데, 이곳에서 나는 늘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곤 했다. 양도 적당하고, 가격도 요즘 기준으로 합리적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점심에 가면 늘 사람이 많았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꼭 맛이 아니더라도 가격 때문에 나는 이곳이 잘 됐으면 한다. 2021년 처음 방문하고 나서 한 4년 정도 간간이 주말 점심을 먹으러 가곤 했는데, 이 기간 물가가 많이 올랐음에도 계속해서 7000원이라는 가격을 유지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가격 때문인지 반찬 구성은 조금씩 바뀌긴 했고, 반찬 양도 약간은 줄어든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고등어구이, 제육볶음, 된장찌개 '3대장'만큼은 굳건했다. 서울 도심의 식당에서 물가 상승의 여파를 늘 무섭게 느끼곤 한다면, 그래도 이곳에서는 조금은 지갑 걱정을 덜 해도 됐는데...
2025년 초에 이사를 가서 1년여 만에 방문했더니 결국은 가격을 8000원으로 올렸다. 된장찌개에 들었던 바지락도 보이지 않았고 비엔나소시지도 전에는 그래도 서너개 정도였는데 오늘은 하나였다. 어쩔 수 없이 이곳도 물가 여파를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쉽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몇 년간 물가가 무섭도록 치솟음에도 가격을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오죽했으면 1000원을 올리는 선택을 했을까. 이 정도면 나보다 이곳을 더 자주 찾는 손님들도 납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곳은 서울이기에, 여전히 한 끼를 8000원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얼마 전 대기업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1억 원에 다다랐다는 기사를 봤다. 대기업 고위 경영진들의 보수도 크게 늘었고, SK하이닉스 등 막대한 보너스로 화제가 된 대기업들도 있으니 평균도 많이 올라갔을 것이다. 최저시급도 어느덧 1만 320원으로 2025년 이후 2년 연속 1만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생활 물가도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고, 전반적인 생활 비용도 늘어나면서 서민들은 오히려 점점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런 가운데 저렴한 백반집의 가격마저 야금야금 올라가고, 싸게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현실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 속도를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1000원 비싸진 백반을 계산하면서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