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내 일상을 달래줬던 우동 한 그릇

[먹는 게 남는 것]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얼큰우동, 그리고 갈비만두

by 챠크렐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딱 10년이 흘렀다. 10년 중 대부분의 기간 동안 몇 차례 언론사를 옮겨 다니며 계속해서 기자로 근무하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기자 외의 직무에 도전해 보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10년 전만 해도 내가 기자로 계속해서 근무하게 될 줄 몰랐다. 처음 다녔던 언론사와 잘 맞지 않아 얼마 가지 않아 퇴사하고 공무원 준비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퇴사하고 처음부터 공무원을 준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언론사 외 그나마 접점이 있었던 출판사 쪽은 당시 공고가 별로 나지 않았고, 몇 번 주어진 면접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그렇다고 기자를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점점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눈에 들어온 것이 9급 공무원 시험이었다. 마침 친한 친구 중에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가 있어 그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부는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언론사 입사 준비를 위해 신문을 읽고 시사토론을 하며 사회에 큰 관심을 가져온 내게, 갑자기 사회와 단절해 교재와 인터넷 강의에 파묻혀 사는 것은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너무 지루했고 시간이 정말 느리게 흘렀다. 어느 정도였냐면, 근처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저녁을 먹으러 집에 와서 뉴스를 볼 때가 하루 중 가장 활력소가 도는 시간이었다. 뉴스를 뒤로 하고 공부를 하러 다시 가는 발걸음이 어찌나 무거웠는지.


수험생의 생활이 그렇듯 점심과 저녁식사 시간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다. 보통 점심은 집에서 도시락을 싸 가거나 대학교 학생식당에서 사 먹곤 했는데, 매번 먹다 보면 질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식당을 찾아 가끔 거기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 당시 몇 군데를 갔었는데, 10년이 지나 대부분 없어지고 지금은 딱 하나만 남았다. 그 식당이 바로 '수유리우동집'이다.


수유리우동집 가게 내부의 모습. 10년 전에도 지금도 메뉴판은 저렇게 나무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은 전국에 100개가 넘는 매장을 가진 준척급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성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수유리우동집은 가맹 사업을 막 시작해 매장이 전국에 10개도 채 되지 않았다. '수유리'라는 이름처럼 원조격인 식당은 1980년대 강북구에 있는 수유리에서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화에 나선 이후 서울 '노도강(노원·도봉·강북)'과 의정부 등 경기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조금씩 매장을 늘리고 있었다. 우동 종류가 간판 메뉴고 그 외 국수, 김밥, 만두 등을 판매한다.


당시 이곳의 우동이 4000~5000원 정도였고 만두가 3000원 정도였으니 상당히 가격이 저렴했다. 그러면서도 양도 꽤 많고 맛도 있어서 학생식당보다 조금 비쌌음에도 꽤나 자주 들렀다. 주로 우동에 매운 양념장을 푼 '얼큰우동'을 가장 많이 시켰고, 가끔 우울하거나 컨디션이 영 좋지 않은 날에는 나에게 주는 선물 느낌으로 갈비만두도 같이 주문했다. 그렇게 시키면 정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가격이 1만 원도 되지 않아 좋았던 기억이 난다. 낙 자체가 별로 없었던 수험 생활에서 그나마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혼밥'을 해도 큰 부담이 없다는 점 역시 좋았다.


모처럼 이곳의 얼큰우동이 생각나, 간만에 의정부 쪽을 방문한 김에 들러 보기로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가 주로 가던 망월사역 앞 수유리우동집은 마침 브레이크타임(오후 3~4시 사이)이어서 바로 가서 먹을 수 없었다. 4시까지 기다릴까 잠깐 생각했지만 다음 일정이 있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목적지로 갔다. 다행히도 목적지 근처에도 하나 있어 그곳에서 먹기로 했다. 현재는 의정부에만 수유리우동집 점포가 무려 11곳이나 될 정도로 지역 내에선 정말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식당이 됐다.


수유리우동집의 특징적인 요소 중 하나인 냉옥수수차.
얼큰우동(7000원)의 모습. 유부와 어묵, 파, 애호박 등이 넉너하게 들어갔다.

가격이 저렴한 편인 만큼 모든 주문은 셀프다. 가장 많이 주문했던 조합인 얼큰우동과 갈비만두를 시킨 후 음식이 나오기 전에 먹을 반찬 등을 셀프바에서 가져왔다. 김치와 단무지, 양념된 단무지가 담긴 통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옥수수차를 먹을 수 있는 대형 정수기가 놓였다. 옥수수차는 이곳의 '시그니처'라고도 할 수 있는데 보리차와 비슷하면서도 좀 더 옥수수 특유의 구수한 뒷맛이 강하게 우러난 게 특징이다. 굉장히 차갑게 나오기 때문에 음식이 나오기 전 적당히 목을 축이기 좋다.


옥수수차로 입맛을 돋우다 보면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얼큰우동은 멸치, 디포리 등으로 깔끔하고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약간 매운 양념장이 조화돼 매콤하면서도 개운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양념장을 적당히 풀어준 후 습관적으로 국물을 한 숟갈 떠 보니 예전과 맛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멸치 베이스 국물의 균형잡힌 맛과 적당한 정도로 맵기를 조절한 양념장이 정말로 잘 조합됐다. 여기에 일반 우동면보다 아주 살짝 얇으면서도, 쫄깃하고 탱탱한 수제 우동면이 더해지니 누구든지 좋아하는 맛이 된다. 그야말로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


은근히 잘 어울리는 얼큰우동과 갈비만두

먹다가 살짝 달콤한 맛을 내는 갈비만두를 먹어 흐름에 변화를 줘 본다. 늘 갈비만두를 같이 먹곤 했던 이유는 사실 별 거 없다. 김밥은 면에 밥까지 먹는 게 좀 부담스러웠고, 모둠만두는 갈비만두와 만두 개수는 같았지만 가격이 살짝 더 비쌌다. 그러다 보니 소거법으로 갈비만두가 남았는데 매콤하고 깊은 얼큰우동에 달콤하고 쫄깃한 갈비만두가 생각보다 잘 어우러졌다. 특별한 만두는 아니지만 무난하게 맛있는 만두다. 얼큰우동과 갈비만두를 합친 가격은 1만 1500원. 10년 전 당시와 비교하면 어쩔 수 없이 가격이 올랐지만 요즘 우동이나 칼국수 한 그릇에 1만 원 언저리라는 걸 생각하면 여전히 합리적인 가격이다.


얼큰우동만 먹기 아쉬울 때는 주로 갈비만두를 같이 시킨다


수험 생활을 하던 당시 이렇듯 싸고 맛있는 음식들은 내게 큰 힘이 됐다. 수유리우동집을 비롯해 몇 가지 기억나는 음식들이 있다. 대학교 정문 앞에 바로 위치해 입맛이 없을 때 주로 찾곤 했던 바른생활샌드위치, 찌개류에서부터 라면·라볶이까지 두루두루 맛있었던 은혜식당, 그리고 간혹 시립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갔을 때 그곳에 있던 식당('참새와 방앗간'이라는 이름이었다)에서 팔던 바삭바삭한 돈가스까지... 비록 지금은 수유리우동집을 빼고 다 없어졌지만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생생하다.


하지만 그 수험 생활은 약 7개월여 만에 막을 내렸다. 수험 생활의 지루함도 지루함이었지만 당시 터졌던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연일 뉴스를 도배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뉴스에 관심을 끊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탄핵 집회에 간간이 나가면서 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신문도 꾸준히 읽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다시 언론사 시험을 보러 다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군데에 합격을 해서, 이후 거의 10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한 걸 보면 정말로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수험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그때 힘들었던 내게 큰 위로가 되어 주었던 음식이었기에 지금까지 추억 속의 한켠에 남아 있게 됐다. 어쩌면 그 얼큰우동 한 그릇이, 지금의 나를 만든 한 조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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