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게 남는 것] 때로는 덜 먹는 게 남는 것
얼마 전 20대의 월평균 커피 지출이 15만원에 달한다는 글을 봤다. 남 얘기처럼 읽다가, 문득 나도 한 달에 커피값으로 얼마를 썼는지 궁금해져서 카드 거래 내역을 확인해 봤다. 우선 2025년 5월부터 7월까지의 내역을 살펴 보니 월 10만원을 넘었다. 구체적으로 5월에는 11만2920원, 6월에는 10만2700원, 7월에는 10만5340원이 나왔다. 다만 여기에는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이따금 사 먹은 것들은 빠져 있기에(거의 매일 한 캔씩 캔커피를 마셨던 것 같다) 실제 커피값은 월 15만원 정도로 추정된다. 여기에 커피를 매번 내가 사진 않고 외부 미팅에서 얻어먹거나 한 경우도 많았기에, 이것까지 감안하면 더 많은 커피값이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당시 내가 생각해도 커피를 꽤나 마셔서 커피값도 많이 들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진짜 커피에 돈을 많이 썼다 싶었다. 연간으로 따지면 거의 200만원 가까이 나온다. 그 사실을 그 때 알았으면 분명히 너무 많다, 줄여야겠다 생각했을 텐데...싶다가도 막상 그 때로 돌아가면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때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으면 그야말로 머리가 안 돌아갈 지경으로 카페인 의존증이 심했다. 업무 특성상 외근을 많이 하고 미팅도 잦아 사무실보다는 외부 카페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 카페에 오래 머무른다 싶으면 꼭 음료를 두 잔 이상씩 마셨다. 눈치가 보여서라기보다는 그냥 그 때 그 커피가 너무나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다섯 잔 이상 마셨다. 순간적인 집중력이 필요할 때면 얼음이 가득 든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두통을 잠재우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커피의 힘으로 하루를 잘 넘기는 나날이 지속됐다.
이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다 보니 부작용도 나타났다. 가장 큰 부작용은 두통이었다. 언젠가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둔탁하고 양 옆 관자놀이 쪽이 지끈거렸다. 당시 나는 커피로 그 두통을 잠재우곤 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집에 있는 페트병 커피를 먹거나 출근길에 캔커피를 사 먹었다. 아침 두통이 가장 심한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전날인 토요일이 쉬는 날이기에 커피를 좀 덜 먹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잠을 충분히 자도 두통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두통이 일종의 카페인 금단현상이었다. 찾아보니 카페인이 두통을 완화시키면서도, 너무 많이 마시면 오히려 두통을 유발한다고 한다. 결국 두통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두통에 독이었던 셈이다.
이외에도 소변을 보러 자주 가게 되고, 가끔 빈속에 커피를 들이부어 위장이 쓰린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커피로 인한 각성 효과를 포기할 수는 없어 계속해서 커피를 마시고 또 마셨다. 확실한 건 물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훨씬 더 많이 마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2~4월의 커피값을 살펴봤다. 지난해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 2월에는 총 7만3900원이 나왔고, 3월에는 5만5000원, 4월에는 5만1000원이다. 마찬가지로 신용카드 기록을 살펴봤고 여기에 사내 카페 이용 금액으로 월급에서 빠져나간 금액을 더했다. 역시 편의점에서 산 커피는 계산에서 빠졌지만, 최근 들어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 먹는 빈도가 월 1~2회 수준에 불과하게 돼 실질적으로는 커피값의 절반 이상을 줄였다고 할 수 있겠다.
커피값을 확 줄인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양이 줄었다. 요즘은 출근길에 사내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 한 잔을 사 들고 오전 내내 마시는 게 전부다. 점심을 먹고 후식이 필요하면 커피 대신 과채음료나 녹차음료 등을 찾는다. 각성 효과는 덜하지만 그래도 식곤증을 깨우기에는 충분하다. 벤티가 톨 사이즈 2잔 분량이니, 실질적으로 하루 3~4잔 마시는 경우가 많았던 예전보다는 커피 섭취량이 줄어든 셈이다.
커피를 줄이기로 한 것은 그간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 왔다는 것을 몸이 느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밤에 잠이 잘 안 오는 경우도 잦아졌고 일을 하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날도 있었다. 진지하게 커피 때문에 건강이 악화될 수도 있겠다 싶어 의식적으로 커피를 조금이라도 덜 마시려고 한다. 여기에 작년 하반기 회사를 옮기면서 스트레스가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굳이 머리를 빡세게 굴리고 집중력을 억지로 유지할 필요가 줄면서 커피가 당기는 빈도도 줄었다. 단지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결심만으로 커피 양을 줄이기는 어렵지만, 이런 변화가 더해지면서 다행히도 습관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커피를 주로 사는 곳도 바뀌었다. 기존에는 주로 프랜차이즈 카페를 가면서 틈틈이 편의점 캔커피를 마셨다면, 요즘은 평일에는 사내 카페에서 저렴한 값에 커피를 사고 주말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대량으로 주문한 페트병 커피를 마신다. 편의점에서 커피를 한 잔씩 그때그때 사는 것보다 한번에 대량 주문하는 게 훨씬 쌌다.
그렇게 줄어든 커피값을 대강 계산해 보니 한 달에 약 10만원쯤 덜 쓰고 있었다. 1년으로 환산하면 120만원이다. 늘 커피를 입에 달고 사는 나를 보면서 어머니는 "커피값 아끼면 집 한 채 사겠다"며 나를 타박하고는 했다. 물론 이는 돈을 아끼라는 취지로 말씀하신 익숙한 잔소리다. 하지만 막상 따져보니 실제 적잖은 비용이 세이브됐다는 걸 확인하면서, 여러 면에서 커피를 줄이는 게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됐다. 커피값 아껴서 집은 못 사더라도, 커피값 아껴서 건강도 챙기고 주식도 한 주라도 더 살 수 있게 된 셈이다.
물론 월 15만원이라는 비용은 수많은 직장인들과 대학생들이 하루를 잘 버티기 위한 합당한 비용일 테다. 적잖은 비용이지만 그만큼 요즘 직장인과 대학생들에게 커피가 반쯤 생활 필수품이 돼 버렸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평소에 스트레스 받는 일도 많고, 이래저래 너무나도 피곤한데 커피 한 잔이라도 없으면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지난해까지 나 역시 카페인 중독자였기에 다 이해한다.
하지만 하루에 한두 잔 정도 덜 마신다고 해서 하루를 버틸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덜 마신 만큼 남는 게 있다는 사실도 실감한다. 평소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문패로 글을 써 오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오늘 글만큼은 '덜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문패로 바꿔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