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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 Dec 24. 2023

나오시마 여행기

2부 안녕, 나오시마

예술의 섬 나오시마이라고 불리는 나오시마.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한 곳이었다. 섬에 미술관이 있고,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막연한 상상을 했었다. 당시 그려진 그림은 끝없이 펼쳐진 넓은 바다 위 몇 평 남짓한 작은 섬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작은 섬마다 각기 다른 형태의 미술관이 있는 모습이었다. 선선하고 온화한 바람이 불고, 배는 푸른 파도를 헤치며 흰 거품이 좌우로 튀기며 통통 미술관을 향하는 마음은 어떨까 상상했었다. 머릿속으로만 다녀왔던 상상의 섬을 다녀왔다. 2박 3일의 이야기를 나눠본다.



목차


1부 안녕, 다카마쓰

여행을 시작하며

수고했어 10월

계획했어, 무계획으로

1일

안녕, 다카마쓰

2.7km 아케이드

살기 위해 우동

원동과 서구 사이, 미술

자연과 도시 사이, 리츠린

애피타이저, 야키토리

칵테일과 멧돼지, 구운 채소. 유기농을 더한

1인 오마카세와 새우


2부 안녕, 나오시마

2일

안녕, 나오시마

골목길, 산길

베네세와 안도 타다오

집 프로젝트

히치하이킹과 달리기

2인 오마카세와 2점

동네 친구들

여행을 마무리하며



2부 안녕, 나오시마


2일


안녕, 나오시마


날이 밝았다.

나오시마로 가는 날. 여러 차례 입항을 위한 경로를 확인했다. 항구까지 도보로 이동하여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도로에 나가니 버스 타는 방향이 헷갈렸다. 이래서 일본에 오면 한국인은 역주행 위험이라고 이야기하는구나 싶다. 일요일 아침 도시는 한산했고, 날이 좋았다. 그늘은 싸늘했지만 볕이 따뜻했다. 그렇게 휴일을 맞이한 고요한 도시를 지나 항구로 가는 길 성터가 보였다. 1590년에 지어진 성터였다. 임진왜란 발발하기 2년 전 완공된 성터를 보고 있자니 시코쿠의 한 다이묘는 성을 지으며 지역에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겠다. 잠시 그의 시간은 어떠하였을지 잠깐 상상해 보며 항구로 향했다.



✓다카마쓰성터 : google map


항구에 도착했다. 구글지도는 섬의 동쪽 편으로 입항하는 경로를 알려 주었다. 지도에서 안내한 시간 기준에 맞춰 출발한 터라 현장에 도착해서 섬 서쪽으로 입항하는 페리의 시간을 보니 차이가 있었다. 지중미술관 관람 예약은 오전 10시 15분. 입도하는 시간 20분 + 나오시마 항구에서 지중미술관까지 도보 기준 34분. 시간을 계산해 보니 페리를 타고 들어가면 10시 15분까지 미술관에 도착할 수 없었기에 구글이 알려준 데로 9:20분 고속여객선을 타기로 하였다. 어느 항구로 나올지, 언제쯤 나올지 예정할 수 없었기에 편도 티켓을 끊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때 왕복표를 고민해 보며 체크했었어야 했다. 이유는 뒤에서 이야기하겠다.


*글을 쓰면서 다시 구글지도를 찾았다. 하지만 구글은 당시 시간으로 다시 검색을 해도 동편으로 입도하는 항로를 안내하지 않는다. 구글의 뱃길도 지도에서 더 보이지 않는다. 이후 뭔가 변화가 있었거나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어주고 싶은 구글의 계략이었을까 싶다. 나오시마, 테시마에 입도하시는 분들은 꼭 하단에 '선박 시간표' 사이트를 확인하시라.


매표소 외벽에 부착된 안내표(좌), 고속선 티켓(우)


✓ 여객선 매표소 : google map

✓ 선박 시간표 : 시코쿠키센 공식 사이트


고속 여객선은 아담했다. 사람들이 빈틈없이 앉았다. 뒤편에서 한국어도 들렸다. 들썩들썩 물살을 가르며 배는 나오시마로 향했다. 짝꿍님이 예상했던 입도 항구는 섬의 서편이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전기 자전거를 빌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관광객이 많으니 서둘러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가는 곳은 동편. 같은 섬이니 동편에도 있을 거라고 안심시켰으나 자전거 대여소가 없을 경우 날 가만두지 않겠다 했다. 그녀의 진심을 알기에 무서웠다.


배가 나오시마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이 내릴 줄 알았다. 하지만 나오시마에서 내리는 사람은 네 명뿐이었다. 우르르 내리는 걸 상상하고 멍 때리다가는 못 내릴 뻔했다. 우릴 내려준 배는 테시마섬을 향해 갔다. 배에 내려 시간표를 찍었다. 18:10까지 배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때까지 여유롭게 섬을 거닐 생각으로 구글지도를 따라 출발했다. 다행히 100m 앞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었다. 안도감으로 다가가니 "일요일 휴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 대여소는 있으나, 영업을 하지 않았기에 이점을 참작해 주시어 생명을 보존해 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도보로 여행을 떠났다.


항구 풍경(좌, 중), 배 시간표(우)



골목길, 산길


마을을 지나 산길을 따라 걸었다. 지도엔 마을 곳곳에 있는 미술관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천천히 하나씩 들리며 지나면 좋았겠지만 지중미술관 예약 시간이 있으니 우선 그쪽으로 향했다. 바닷가 일본식 가옥 사이사이 볼거리들이 많았다. 신사, 가정집, 안내소, 미술관, 기념관 등등. 곧 다시 만남을 기약했다.


나그네들과 동네에 복을 줄 것 같은 귀여운 너 구라 조각상(좌), 을지로 골목에 있었던 부가(우)가 떠올랐다.



마을을 지나 야트막한 산 초입을 걸었다. 언덕을 따라 마을이 점점 흐려졌다. 마을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식 정원을 가진 료칸이 나왔다. 푸른 하늘, 갓 단풍이 들기 시작한 산과 현대식 일본가옥과 정갈하게 관리되는 정원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런 곳에서 묵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짝꿍님도 같은 마음이었다. 사실 숙소를 예약할 때 나오시마에서 2박을 하는 것도 생각을 했었고 한다. 하지만 당시 모든 숙소의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푸른 하늘과 물이 들기 시작한 요로이산이 어우러진 료칸



베네세와 안도 타다오


산길을 따라 지중미술관에 도착했다. 안내소에서 예약 확인을 하고 허기를 좀 달래고 싶었으나 곧 입장시간이 되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지중미술관에 입장하니 등 뒤로 철문이 닫혔다. 입장인원을 통제해 양질의 관람 환경을 만들려는 노력으로 느껴졌다.


후쿠타케서점베네세라는 이름으로 1988년부터 나오시마를 예술섬으로 만들었다. 현대 건축의 선구적인 역할을 해온 건축가 안도타다오가 그들과 함께 했다. 섬에 남겨진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고, 미술을 심어 섬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가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예술의 섬'으로 불리는 나오시마이다. 많은 미술관과 작품이 가득한 섬이기에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보긴 어려웠다. 때문에 우린 아쉽지만 3개의 미술관과 집 프로젝트의 7채를 관람하였다.


*지중미술관 地中美術館 → 이우환미술관 李禹煥美術館 → 히로시 스기모토 갤러리 杉本博司ギャラリ → 집 프로젝트 家プロジェクト


전시 관람 이동 동선


전시를 기획해 오면서 '미술관, 전시장'이라는 고정된 공간에 주제, 서사, 작품의 형태・형식에 맞춰 공간을 구성했었다. 하지만 나오시마에서 마주한 전시는 이전에 내가 해온 전시의 접근과 전혀 달랐다. 미술관의 외관은 주변 자연환경에 맞춰, 내부 공간은 설치될 작품에 맞춰 설계되었다. 그 작품의 아우라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이 설계되었고 지속되었다. 영속될 것처럼 느껴졌다. 극대화된 아우라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콘크리트는 아우라를 증폭시키는 확성기 같았다.


옛 종교 건축물 혹은 왕실의 건축물을 방문하면 짐작해보곤 한다. 우리 세대야 태어나면서부터 고층 빌딩을 봤고, 형형색색의 컬러텔레이전, 도시의 야경을 보며 살아왔지만 인간이 만든 현대 도시와 같은 거대함과 화려함이 부재하던 시절 피지배층이었던 이가 종교 건축물과 지배층의 공간에 들어선다면 얼마나 놀라웠을까. 그 자체로 이상세계에 와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안도다다오의 미술관은 마치 동아시아의 종교 건축과 닮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성인, 혹은 신성함을 모시기 위해 설계된 공간과 지형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 건축물이 어떤 것이 담았느냐, 어떻게 담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옛사람들이 느꼈을 전율과 감동을 능히 짐작해 보게 되는 경험이었다. 오늘날 예술이 종교가 했던 역할을 어떻게 분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지중미술관은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왜일까. 셔터 소리가 관람을 방해해서? 아우라는 디지털 사진이라는 가시광선을 복제한 데이터에 담길 수 없어서? 디지털 데이터로 해석된 신호를 보지 말고 아우라를 온전히 마주하라고? 어떤 이유이든 모든 것이 납득되었다.





* 지중미술관

건축물은 경관과 어떻게 어우러질 것인가.

예술을 본다는 것, 보게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빛을 어떻게 보고 이해하는가.


* 이우환미술관

수행은 예술의 형태를 입었다.

우린 어떤 인간이 되어갈 것인가.


* 히로시 스기모토 갤러리

공간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것은.


✓베네세의 나오시마 예술 프로젝트 관련 내용 : 미술관이 된 도시 prologue. 예술의 OO



지중미술관(좌), 이우환 미술관(중, 우), 절제된 고수의 맛이 이런 것인가.




히로시 스기모토 갤러리



아우라에 흠뻑 담겼다 나온 후 지중미술관의 지중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지중미술관에서 먹은 샌드위치가 맛이 없더라.' '커피도 맛이 없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미술관 음식이 얼마나 맛이 있겠나. 또 얼마나 맛이 없겠나. 기대 없이 주문을 하였다. 그래도 샌드위치는 시키지 않았다. 접시에 담겨 나오는 음식 2종을 주문했다. 지중카페는 어디서 취식을 해도 바다가 보였다.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기분 좋게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바다 바람이 함께 했다.


음식과 커피는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 허기 때문이었을까. 소문과는 달리 만족스러웠다. 단지 일회용품 용기들이 아름다운 풍경과 대비되어 아쉬움이 있었다. 푸른 바다 건너 멀리 공장지대가 보였다. 아마 오카야마현의 타마노 공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닷가의 거대한 건축물과 유유히 떠가는 구름. 가까이에 매 한 마리가 바닷바람을 타며 활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눈앞에 공장이 보이고, 북쪽엔 핵폐기수가 방류되고 있지만 푸른 풍광을 보고 있자니 이곳은 오염과는 무관한 세상처럼 느껴졌다.



지중미술관의 카페는 실내, 실외 모두 취식이 가능하다. 샌드위치보단 그릇에 나오는 식사를 추천한다. 한그릇에 풍광을 더한.



지중미술관에서 나와 이우환 미술관을 거처 히로시 스기모토 갤러리로 향했다. 자연 동행했다. 길냥이들은 앉아 쉬는 여행객의 무릎에 올라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산속엔 샛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 여러 미술관과 야외 작품들에 대한 안내판을 지나쳤다. 아쉬운 지나침이었다.


섬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며 곳곳에 자신의 작품을 세웠을 작가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되었다. 그들은 마치 새로운 섬을 연구하기 위해 모인 최정예 탐험가 같았을 것이다. 귀족 가문에서 후원을 하는 최정예 탐사대. 그들은 이곳에 와서 이전 사람들이 봤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서 있었지만 서있지 못했던 장소를 선별했을 것이다. 이곳의 바람, 비, 산, 자연, 사람 사이에 자신이 쌓아온 언어를 굳건하게 세웠다. 마치 영토를 개척한 이들이 이곳은 이전과 다른 세상이 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처럼. 옛 선인들에게 네모 반듯했던 비석은 오늘날 다양한 형상으로 모습을 바꿨고, 돌 안에 담았던 문자는 형상 그 자체가 되어 기화했을 뿐이다.





히로시 스가모토 갤러리에 도착해 전시를 둘러보던 중 카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들어서려 하니 입장권 확인을 했다. 입장권이 있다면 추가 비용 없이 시간의 회랑에서의 티타임을 즐길 수 있었다. 하염없이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볼 수 있는 회랑이었다. 메뉴는 녹차. 대여섯 가지의 녹차 메뉴 중 하나를 고르면 차와 간식이 제공된다. 시원한 콜드브루를 주문했다. 천년 된 느티나무로 만든 티테이블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차를 기울였다. 거대한 시간을 누리는 교만한 미물이 되어 볼 수 있었다.


 

예약을 확인하면 바다가 보이는 창가, 1000년이 넘은 느티나무 탁자 위에서 녹차 한잔을 기울일 수있다.



회랑을 나와 바다로 향했다. 유리로 투명한 공간을 만든 작품을 지났다. 바닷가엔 공공 조형물이 곳곳에 있었다. 형형색색 화려한 색감은 강한 햇빛과 어울렸다. 작품들은 갤러리로 오면서부터 만났던 한 무리의 아이들에게 점령당해 있었다. 신나게 언니와 떠들다가도 우리가 인사를 하면 목소리가 무척 작아졌던 아이들은 작품이 하염없이 그들의 무게를 버텨준다는 신뢰가 가득한지 한껏 신이 나 있었다. 올라타고 매달리며 작품과 함께 놀았다. 가능하다면 작품에게도 아이들과 노는 과정이 어떤지, 그들의 심경을 들어보고 싶었다. 크고 작은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사고를 알고 있는 우리는 아이들이 밝게 노는 모습이 하염없이 좋으면서도 다치진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작품과 아이들이 노니는 모습. 작품이 부서지진 않을까, 아이들이 다치진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참 보기 좋았다.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기슭에서 내려다보았던 노란 호박이 있었다. SNS를 통해 최근에 본 것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인스타에 비친 관광지와 실재 관광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교해 놓은 피드였다. 그 유명 관광지의 열기를 노란 호박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쿠사마야요이의 호박은 인기가 많았다. 기념촬영을 위해서는 순서를 기다려야 하며, 가까이서만 촬영이 가능했다.


도리이 일부(좌), 석불(우)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전통 조각도 마주하게 된다. 붉은 턱 받이는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으나 불상을 더 귀엽게 만듬에는 틀림 없었다.


나오시마의 버스 역시 쿠사마 야요이의 무늬를 입고 있었다(좌), 벼 만들기 프로젝트도 운영중인데, 기계를 쓰지 않고 인력으로만 추수한 벼를 말리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우)



집 프로젝트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안내센터 本村ラウンジ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지난 8월 생겼던 통풍으로 인한 염증에서 완벽하게 회복되지 못했던 터라 장시간 걸으니 엄지발가락 주변으로 통증이 있었다. 여느 때 여행 했듯이 잠시 쉬어가야겠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짝꿍이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나오시마에 언제 또 오겠냐며 주변 전시공간에 대한 정보를 받아야겠다고 했다. 오,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이라니. 여느 여행에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더 여유롭게 더 느리게 가 이전까지의 모토였기 때문이었다. 나오시마가 무척 좋았음을 짐작 캐했다. 모드를 전환할 새 없이 뭉그적거리는 나를 뒤로하고 벌떡 일어서 직원에게 향했다. 그렇게 집 프로젝트의 전시 뿌시기가 시작되었다.


집 프로젝트는 혼무라지구本村地区의 빈집을 예술 공간으로 전환한 사업이다. 건물의 역사, 그곳에 있었던 사람의 역사를 해석하고 예술로 전환하였다. 현재 7개의 집 '카쿠야角屋' '난지南寺' '킨 자 きんざ' '호왕 신사護王神社' '이시바시石橋' '바둑 회소碁会所' '예샤はいしゃ'가 예술 공간으로 전환되거나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나이가 지긋하게 든 나오시마의 어르신들이 공간에서 관람 시 주의사항과 공간에 대한 설명을 더해주셨다.


7채 중 '닌지'는 관람하지 못하였다. 1일 관람 인원이 모두 끝났기 때문이었다. 아쉬웠다. 제임스 터렐의 "Backside of the Moon"이라는 작품이 있다는데 인터넷을 찾아봐도 안내요원에게 여쭈어도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직접 봐야 한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야속했지만, 감사했다.


징검다리 건너듯 골목을 걸으며 전시를 관람했다. 지금 돌아보면 을지로에서 전시공간들을 다니는 느낌과 비슷했소 있었을 것 같은데, 당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공간이 평평하게 1층으로 연결되어서 일수 있을 것이고, 공간과 작품이 여합부절이라 작품과 공간이 하나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고, 건물들이 모두 잘 관리받고 있다는 인상 때문일 것이고, 고도화된 도심이 아닌 자연에 가까운 옛 모습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정해 본다.


전시는 모두 상설 전이었다. 고정된 전시였다. 지속적으로 관리받을 뿐이었다. 일본인의 시간에 이것이 익숙한 것일까 싶었다. 오랫동안 관리받아온 건축물이 많은 나라. 고대부터 해온 극(심지어 고구려와 백제의 궁중 극도 일본에선 여전히 볼 수 있다)이 오늘날도 유지되는 나라. it가 국가 전반에 보급되지 않은 나라. 바뀌지 않는 것의 가치가 높은 나라. 시간을 대하는 감도가 한국과 일본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가 오랫동안 지속될 전시에 근거가 되어주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서울의 도심 을지로는 빠르게 전시들이 바뀐다. 작은 전시공간들 중 1달을 넘겨 진행되는 전시를 보기란 힘들다. 전시 공간들이 모두 임대를 통해 유지되는 공간이라는 점,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곳이라는 점, 시장과 미술사의 흐름 전방에 노출된 곳이라는 점 등이 을지로의 속도에 동력을 주는 요소일까. 도심과 외딴섬에서 방문객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환경이 다르니 형식 또한 다를 것이다. 일본의 도시를 더 들여다봐야겠다. 나오시마는 더 긴 호흡으로 지켜볼 필요가 나에게 생겼다.



집 프로젝트, 2023



✓ 나오시마 예술 프로젝트 소개 및 미술관, 숙소 예약 :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 공식 홈페이지




히치하이킹과 달리기


16:20, 싸늘했다. 왠지. 혼무라라운지(안내센터)에 짝꿍이 화장실에 간 사이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아까 찍어 두었던 뱃시간을 다시 확인하였다. 분명 18:10이 마지막 배였다. 하지만 다시 정독해 보니 다카마쓰 항으로 나가는 배는 15:30이 마지막 배였다. 아뿔싸. 시간만 보고 목적지를 확인하지 않았다니. 왜 당연히 온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을까. 반대편 항구는 17:00가 마지막 배였다. 현재 시각 16:30. 항구까지 도보 34분, 버스 15분, 택시 10분이 소요된다고 하였다. 버스를 타면 충분할 시간이었지만 버스는 17:00에 왔다. 걸어서 34분이라면 다소 속도를 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일단 출발했다.


20분간 달려간 경로


빠르게 걷다 뛰었다. 출발할 때 뒤통수가 따가웠다. 급박한 시간을 남기고 빨리 서두르자고 하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시간과 항구를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앞서갔다. 사실 살기 위해, 잡히지 않기 위해 더 앞서갔다. 그러다 뒤를 따라오던 임이 갑자기 멈춰 섰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뒤에 오는 차를 향해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과연 태워줄 것인가. 임과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종종 히치하이킹을 했다. 매번 좋은 분들이 태워주셨고 동네 맛집도 소개받아 여행이 더 알찼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그녀는 히치를 시도했다. 하지만 차들은 모두 그냥 지나갔다. 어떤 이는 두 손을 모아 "스미마생"이라 이야기하기도 했다. 실패할 때마다 다시 뛰는 임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녀는 끓어올랐던 화를 과정 자체를 즐기며 순화시키고 있었다. 안도감이 들었다.


16:52, 선물처럼 항구가 나타났다. 임이 막판 스퍼트를 냈다. 그렇게 매표소로 돌진했다. 바로 티켓을 사서 우리는 페리에 올랐다. 옥상에 오르니 쿠사마 아요이의 붉은 호박이 내려다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영하고 배웅했을 호박이 노을빛에 물들며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윤슬이 가늘어지며 지는 해에게 인사를 건넸다.


노을이 물든 쿠사마야요이의 붉은 호박과 바다 풍경이 잔잔했다. 안도의 호흡을 가다듬었다.



2인 오마카세와 2점


해가 진 바다를 보다 잠이 들었다. 잠깐의 쪽잠이 달콤했다. 뭍에 도착한 우리는 편의점에서 푸딩으로 입맛을 돋우고 한국에 돌아가서 전할 선물을 구매했다.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술 한잔으로 느슨해질 시간이 되었다. 어제 들렸던 스시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2인 오마카세를 시켰다. 셰프는 우리 앞에 접시 두 개를 놓고 스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짝꿍이 배고픈데 먼저 먹어도 되냐 물었고, 셰프는 그저 웃으며 스시를 건네줬다. 맛있게 먹고 나니 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사실, 그 접시는 우리가 주문한 스시가 아니었다. 2층으로 올라가야 할 스시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당황스러우면서도 우리의 모습이 재밌었을까. 민망했지만 어떠한가. 셰프가 완성된 접시 두 개를 들고 2층에 올라갔다 돌아와서 우리의 메뉴를 만들어줬다. 착각했었다고 이야기하니 괜찮다며 웃었다. 따뜻한 사케에 몸이 녹았고, 초밥은 입에서 녹았다.


우리 옆자리엔 중년의 남성 한분이 홀로 있었다. 사케 한잔을 기울이며 식사를 하고 계셨다. 외국에서 온 친구들이 궁금하셨나 보다. 어디서 왔냐며, 맛은 어떠냐며, 일본은 어떠냐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건배도 했다. 그렇게 취기가 오른 아저씨는 우리의 재미난 여행의 마무리를 기원해 주며 먼저 떠나셨다. 나가시는 뒷모습에 외투 카라가 뒤집어져 있었다. 쫓아가서 바로 잡아 드릴까 하다 너무 오지랖 같아 자중하였다.


✓ 미쓰코시 다카마쓰점 : google map

✓ 스시 카츠 : google map




동네 친구들


2차로 숯불고기를 먹고 어제 만석이어서 들어가지 못했던 이자카야로 갔다. 어제 사장님이 "이빠이 데쓰, 스미마셍"을 이야기했던 곳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다면 가기 전에 다시 가보긴 해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역시 오늘도 사람이 만석이었다. 밖에서 서성이다 자리를 떠나려 하니 문이 열렸다. 담배연기를 빼려는 것인지, 서성이는 우리를 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열린 문 너머로 바에 앉은 어른들이 우리를 보았다. 몇 명이냐 물으시더니 좌우로 이동하시면 두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그렇게 감사함을 전하며 일행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짝꿍님이 일본어로 주문을 했다. 일본어로 주문하는 외국인이라니 자리를 비워주신 좌우의 어른들이 너무 반가우셨나 보다. 어디서 왔는지를 물으셨다. 한국에서 왔다는 정보를 드린 후 서로 짧은 영어와, 구글 번역을 통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오시마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러다 한분이 사라지셨다. 다시 돌아온 선생님 손엔 '타코야끼'가 들려 있었다. 동네에 세 제일 맛난 타코야끼라며 우리들에게 건네셨다. 이것이 일본인의 정인가.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음식(좌, 중), 동네에서 가장 맛나다는 타코야끼(우)


백인 청년이 홀로 들어왔다. 독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위해 온 친구였다. 영어로 이야기하는 우리를 보더니 옆자리로 왔다. 이제 20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러 대학에 갔지만 자신과 맞지 않아 세상 공부를 하러 나왔다고 한다. 자기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며 우리에게 초상화를 그려 보여주었고, 사장은 녀석 그림을 그린다며 좋아했다.


가게 안쪽에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있었다. 그 무리의 주인공은 오늘 결혼한 새신랑이었다. 신부는 어디에 두고 혼자 친구들을 만나러 와있지? 당황스러웠지만 일본의 문화이겠거니 생각했다. 그가 오늘 결혼한 것을 알고 독일인 친구는 새신랑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자신이 마시던 맥주병을 들고 갔다. 새신랑은 병을 들고 오는 독일인을 보고 자신에게 축하주를 주려는 줄 알고 가득 차 있던 잔을 비웠다. 새 신랑이 빈 잔을 내밀자 독일 친구는 '쨘'을 하자며 병을 내밀었다. 빈 잔과 맥주병이 서로 마주하는 정적이 2초간 흘렀다. 그제야 새 신랑은 알았다. 그 친구가 자신에게 술을 주러 온 것이 아님을. 그저 술잔을 부딪히며 축하해주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빠르게 자신의 잔을 채우고 건배를 했다. 독일 친구는 그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고 마냥 행복한 얼굴로, 뿌듯함이 가득한 얼굴로 다시 돌아와 내 왼편에 앉았다.


우리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신 어른들은 모두 동네 친구들이었다. 한분은 도쿄전력의 지부장이었고, 두 분은 대학병원의 의사 선생님이었다. 동대문 포장마차에 갔던 이야기를 해주시질 않나, 한글을 읽으시질 않나. 사케를 시켜 마시는 우리를 보더니 토토로를 닮은 선생님이 니혼주를 좋아하냐며 계속 사주셨다. '이제 일어나자'는 이야기를 속삭이고 자리를 정리하려 하면 또 한병. 마지막잔이다 생각하면 또 한병. 그렇게 6병을 마셨다. "이렇게 받기만 할 수 없다." 하니 딸이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아비로써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이 섭섭하고 울컥한다고 하셨다. 음, 우리에게 술을 사주시는 것이 딸의 결혼 때문이라니. 따님에게 감사했다. 진심으로.


결국, 손님 술을 한잔 한잔 뺏어 먹던 사장님은 쓰러져 다다미에 잠이 들었고 함께 술잔을 기울여주신 선생님들은 막차가 끊긴 이후까지 함께 했다. 이 모든 상황은 아르바이트생이 우리 단체 사진을 찍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초상권에 대한 허락을 받지 않은 관계로 다소 팝 하게 편집해 본다. 우린 신났었으니깐.


✓ 케무리야 : google map

✓ 이치게키 : google map




여행을 마무리하며


결과적으로 심신의 소진은 나에게 더 큰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새살이 돋아나는 동안 좋은 약을 바를 수 있었다. 다소 흉이 남긴 했지만 싱싱한 새살에 남은 것이기에 이후 이어갈 여운으로 여겨질 뿐이다. 오히려 좋다.


약속했던 두 가지를 지켰다. 우린 나오시마를 다녀왔고, 맛난 음식을 많이 먹었다. 그것 만으로도 성공적이었음에 틀림없지만. 이제 나오시마는 상상의 섬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기 전까지 나에게 나오시마는 상상이었다. 옛 선인들이 이상세계를 꿈꾸며 한 폭의 그림을 중국의 산수로 채웠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을 딛고, 걷고, 보면서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되었다. 그 과정이 매끈한 푸른빛 거울이 되었다. 지난 시간 내가 해온 것들을 새로운 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었고, 앞으로 해나갈 일들에 귀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닮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한국과 일본, 공간과 예술, 지역에서 자본가의 역할 등. 있으나 보지 못한 것들. 남겨진 여운을 곱씹으며 다시 소화해 봐야겠다. 다시 긴 호흡으로.


그렇게 나오시마는 다시 와야 할 곳이 되었다.

그렇게 함께 여행을 해준 임껜 또 감사한 시간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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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목록 : 나오시마 여행기 2부, google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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