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배에 이야기를 담아 나르는 화사
피자와 치킨을 그리는 작가가 있습니다. 원형의 피자는 균등하게 분할해 사람들과 함께 먹을 수 있으나 치킨은 날개, 가슴, 다리로 구성되어 다수가 원하는 부위가 존재합니다. 때문에 치킨 앞에서 누군가는 다리를 양보하고, 누군가는 다리를 차지합니다. 작가는 음식 앞에 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회 구조 전체를 그려냅니다.
학부 시절 디자인과 스튜디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그래픽 작업이 한창인 사람들 사이 굵은 흑연을 쥐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거친 선이 쌓여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보고 느낀 것의 기록하듯 작은 스케치북에 순간이 모여 이야기가 되어 쌓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디자인 스튜디오 보다 판화 작업실에 더 자주 있었습니다. 손으로 그리고 복제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책 만들기를 좋아하는 동료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나누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조금 다른 졸업전시를 마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종종 친구가 운영하는 바에 가서 삶의 긴장을 풀어놓고 간다고 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아트북 페어에서였습니다. 대기업 회사원이었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 자유로운 모습으로 대중 속에 있었습니다. 찾아온 관객들을 환영하며 책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거친 선들이 쌓인 그림들이 있었고 책은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가 본 세상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보고, 만든 세상을 구매했습니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삶의 일부가 되어 퍼져 나갔습니다.
현상을 발견하고 세계관을 구축합니다. 그가 그린 그림은 쌓여 책이 되고 물성을 가진 조형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점점 더 확장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어디까지 커질지. 흥미롭고 기대됩니다. 그림을 통해 동시대의 관찰자이자, 기록자이며, 창조자가 된 신동철 작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신동철 이야기
작업 이야기
공간 이야기
내일 이야기
신동철 이야기
저는 만화 형식의 그림으로 제 상상 속 세상을 그려나가는 신동철 작가라고 합니다. 만화처럼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만들게 되었어요.
작가로서의 성장 과정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보고 싶어요. 작가님께서는 대외 적으로 보기에 사회적으로 좋다고 평가받는 환경에서 성장해 오셨잖아요.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었는지 어떤 고민 위에 계신지는 차치해 두고,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오셨어요. 한때는 대기업에도 입사를 하셨었고요. 어쩌면 우리 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만들어온 정답에 가까운 삶을 살아오셨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겪은 사회의 형태와 무게 있었을 것 같아요.
제일 좋은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어요. 열심히 해야만 무엇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주어진 것들만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사회가 만들어 놓은 어떤 규범이나 트랙에 들어가 있었어요. 고등학교와 대학에 진학하고, 회사에 들어가며 정해진 트랙 안에서 생활을 했죠. 막상 안에서 지내보니 그 환경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이 계속 모험을 하는 이유도 비슷한 것 같아요. 현실에 제약이 있다고 생각하니 몽상을 하고, 속에서 계속 모험을 하게 되었어요. 몸은 회사에서 일해야 되는데 마음은 멀리 떠나가고 싶으니 아주 멀리까지 갔어요.
지금 있는 작업들 중 몇 개는 회사를 다니던 시기에 조금씩 했던 것들이에요. 2023년에 서촌에 서점인 오프투얼론에서 리소로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주셔서 회사를 다니며 그린 것들을 기반으로 구성한 후에 몇 작업만 추가되었어요. 금방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지난 몇 년 동안 그려왔던 것들을 묶어서 만들었더니 생각보다 뚝딱 만들어졌어요.
한편으로는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도 작품을 놓지 않았던 것이 대단하게 느껴요. 힘들었지만 놓지 않으셨던 이유는 스스로 삶의 돌파구를 찾기 위함이 있을까요?
표현 욕구일 수도 있고, 현실에서 불만족한 것 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인공이 계속 모험을 떠나는 이유도 현실에서 답을 구하지 못하니 다른 세상으로 도피하거나 탐험을 한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했어요. 최근 3년간 작업한 것들의 세계관을‘피자 헤븐(Pizza Heaven) & 치킨 헬(Chicken Hell)'이라고 부르는데 언제까지 이 세계관을 유지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모험이 끝나더라도 저와 주인공은 새로운 모험을 떠나게 될 거예요.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계속 답을 찾아가고 그것을 능동적으로 고민하는 존재가 되는 과정에 작업이 같이 발을 맞춰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상적인 낙서로 끝낼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마주할 수 있는 형태의 결과로 만들면서 주어진 환경이 정답인지 아닌지, 무엇을 지향해서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고, 그것을 책이라는 매체로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과 마주해 이야기를 확장해 나가는 순환 고리를 만들어 오신 것 같아요.
그게 우유부단한 성격의 제가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뭘 해보면 이게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는 거죠. 짜장면, 짬뽕 중에 뭘 먹고 싶었는지 잘 모를 때면 먼저 짬뽕을 먹어봐요. 그게 좋았다면 계속 짬뽕을 먹으면 되고, 먹어보고 아니었다면 내가 짜장을 먹고 싶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뭐, 다시 어떤 계기로 재입사를 하게 될 수도 있겠죠? 그것은 아직은 모르겠어요.
작업 이야기를 하면서 여쭙겠지만, 작가님께서는 지난 시간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다시 동력으로 쓰는 힘이 있으신 것 같아요. 선택하고 여행하고, 모험을 떠나고. 다시 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여정을 떠나는 과정이 과거의 힘이 계속 작가님이 앞으로 가게 밀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시간에 불평이나 좌절보다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다시 귀한 것들을 살피듯 들여다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작업 이야기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인용을 통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작년 대학원 논문을 쓸 때 ‘아트북'에 대해 발견한 문장이 있어요. 그 문장을 한번 읽어 드릴게요. ‘아티스트북은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책의 유통 경로를 그대로 취한다. 이는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낯선 관객에게 까지도 다가가기 위함이다.’(김옥경, 예술매체로서의 책의 담론과 패러다임, 한국기초조형학회 2권 2호, 2001. 08, p339-349, 345page) 이문장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듯 어쩌면 사람들에게 작은 전시장을 들고 직접 찾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아트북이 미술관이 낯선 관객들에게 갈 수 있기 위해서는 수요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보는 것과 아트북을 소비하는 것에서 표면적을 넓히는 전략이라면 현장의 구조가 갖춰져 있어야할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경험하신 현장은 어땠나요?
서울 아트북 페어로 알려진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경우에 3일 동안 2.3만 명 정도가 방문하는 하는데요.(2022년 기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는 행사이다 보니 작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관객과 직접 대면하는 장이 열려요. 대부분의 도시에서 이러한 규모의 아트북 행사가 열리는데, 작년(2023)에 방문했던 ‘싱가포르 아트북페어’도 비슷한 규모의 관객이 온다고 알고 있어요. 어느 정도 기본 수요와 시장이 있어요.
관객들이 소설, 시, 사진, 일러스트, 패션 등 세부적으로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더라도 ‘책'이라는 공통된 매체를 통해 하나로 뭉치는 행사가 열리다 보니 관객, 출판사, 작가 간에 발생하는 시너지가 엄청나요. 예를 들어 다른 관심사로 행사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제 부스에 들러서 작품을 처음 접하고 피드백을 주시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우연적인 과정들이 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줘요. 개인전처럼 독립적으로만 활동한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을 거예요.
그림을 전공한 저도 종종 겪는 상황인데, 전시장에 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곤란하거나 난처한 상황들이 있잖아요? 작가마다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나 방법, 주자가 다 다르고, 어떤 작가는 직접적인 소통을 원치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분명히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거나 이 업계 종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경우, 어려워하는 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책’이라는 매체는 우리가 어려서부터 손에 잡아봤고, 서점에 가서 소비도 하고, 도서관에서 대여도 할 수 있으니 접근 방식에 대한 어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트북페어에서 만나면 좀 더 캐주얼하고 일상적인 만남이 되면서 오히려 더 가볍게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기화가 되는 것 같아요. “이건 왜 그렸어요?”라는 질문은 미술관에서는 무례해 보일까, 무식해 보일까 걱정이 앞서지만, 페어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질문이 돼요.
아트북페어의 경우는 장터, 축제 같은 성격을 가져요. 저 스스로는 작가인 동시에 상인이 되는 느낌도 받아요. 뭔가 더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부스도 더 예쁘게 꾸미고 싶고, 상품 구성과 가격도 고민해야 해요. 물론 스타일에 따라서 몇 개의 작업 위주로 보여주고, 대화를 많이 하지 않는 작가들의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 마저도 자신의 주제나 작품과 연관된 이유가 있을 수 있어요. 이런 다양성이 아트북페어를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게 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있어 책이라는 형태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이야기의 서사를 그림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매체가 더 적절하기 때문이겠죠? 어떤 책을 만들어 오셨는지 듣고 싶어요.
저는 제 상상 속 세계를 이야기를 만화의 형식을 빌어 전달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주인공은 같지만, 에피소드별로 이야기가 달라지는 만화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이야기와 주제에 따라 만화를 그리다 보면 판화 형식의 표현 기법작품이 나올 때도 있고 세밀화를 그려야 할 때도 있고 조금 더 가벼운 Toon 형태로 그려야 될 때도 있어서, 매번 그림 스타일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제일 처음 만들었던 책은 ‘페어드롭(Peardrop)'이었어요. 키워드는 ‘삶’이었는데, 빨간 표지의 작은 책인데 대학 졸업 이후 취업준비를 하면서 틈틈이 그렸던 그림들을 엮어 만든 책이에요.
그다음엔 ‘33, The Dream Anatomy’라는 책인데 꿈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그 이후에는 2021년 첫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그린 그림들과 지난 몇 년간 그려둔 그림들을 엮어서 2022년에 3권의 책을 냈어요. 그 세계관이 Pizza Heaven과 Chicken Hell이에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콘탁트(Kontaakt)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무라카미 다카시의 부산 전시, RM의 앨범 등을 디자인한 멋진 디자인 스튜디오예요.
책을 만드실 때 이야기의 서사를 먼저 짜고 그에 맞는 그림을 그려가시는 것일까요?
정확한 서사를 미리 짜두고 그리진 않아요. 제가 머리가 엄청 좋았다면 내러티브를 텍스트로 다 써놓고, 스토리보드를 짜두고, 어떤 이미지들이 비중에 따라 얼마나 들어갈지 비율과 칸을 나누고 하면서 진행할 텐데, 성격상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까진 못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틈틈이 그려놓은 그림들을 펼쳐 놓고 안에 담긴 서사를 다시 추적하는 과정을 가져요. 배치하고 재구성하면서 이야기를 직조하는 거죠. 중간에 필요한 그림이 생기면 추가적으로 그려서 넣어요. 자전적인 이야기도 들어가고 처음에는 없던 장면들도 추가되곤 해요.
한컷한컷 작품을 그릴 때는 재미있어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금 생각하는 것만 구현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작품을 한 번 소화해서 책을 만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요. 그 안에 구성을 만들어야 하고, 충분한 페이지를 확보해야 하고, 이미지를 배치하고, 인쇄소에 맡기고, 완성된 책을 다시 포장해야 하죠 이러한 긴 과정이 수반되니 짧은 시간에 해결하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에요.
그럼에도 책이라는 매체에 매력은 느끼는 이유는 있어요. 유명한 작가가 아닌 이상 큰 회화 작품을 팔기는 사실 쉽지 않아요. 페어나 갤러리에서 그림들이 판매되기도 하지만 누가 샀는지, 어느 집이나 장소에 걸려 있는지 갔는지 모두 알기란 어렵죠. 하지만 책은 눈앞에 있는 관객이 사가기 때문에 ‘저 사람은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구나’, 혹은 ‘이러한 것을 기대하고, 호감을 가졌구나’ 같은 지점들을 목격할 수 있어요. 현재 미술 제도 안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 일들을 직접 경험하니 재밌어요.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엮어서 책을 만들고.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재배열해서 책을 만들고. 작가님의 작업의 순환되는 구조를 만드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동철이라는 작가가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은 작가로 시작하지만 전시를 기획하고 만드는 큐레이터,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스트 역할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종이 매체로 된 하나의 전시를 만들고 그것을 미술관 밖에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배달부 혹은 상인의 역할까지 1인 다역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2년간은 피자와 치킨을 소재로 한 작업을 많이 했어요. 이것은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해요. “피자 먹을래? 치킨 먹을래?”라는 질문은 제가 어린 시절에 많이 접했던 질문이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배달 플랫폼이 없었고, 중국집, 피자집, 치킨집 등이 특별한 날 시켜 먹을 수 있는 한정적인 선택지였어요.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에게는 참 어려운 질문이죠. ‘피자냐 치킨이냐.’ 제 작품 속 주인공도 그것이 너무 고민이 되어 ‘음식의 신'을 만나러 가요. 그렇게 모험을 떠났다가 얼굴이 2개인 ‘음식의 신’을 만나게 되어요. 음식의 신의 머리 중 하나는 피자를 상징하는 돼지를, 하나는 치킨을 상징하는 닭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2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싶어 신을 만났지만 신조차도 결정해 줄 수 없는 문제였던 거죠. 이러한 신의 속성 때문에 우리가 항상 결정을 못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었던 거죠.
결국 주인공은 피자를 시키기로 하는데 값을 잘못 지불해서 빈 피자 박스를 받게 되어요. 그렇게 다음 책인 ‘The Heaven and the Sinner’으로 이야기는 넘어가요. 피자 값을 잘못 지불한 형벌로 ‘피자 천국’, ‘치킨 지옥’을 모험하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죠. 마치 단테의 신곡처럼요.
그럼 피자, 치킨은 선악의 개념인 건가요?
사실, 선악의 구분은 아니에요. 모든 것이 다 섞여 있는 혼돈의 세상 같은 거죠. 만약 사람들에게 둘 중에 고르라는 양자택일의 질문을 제시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질문에 의해 사고가 제한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은 사실 햄버거를 더 좋아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피자와 치킨 중에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거죠.
인문학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시는 것 같아요. 일상 속에 상징을 기호화하고 이야기를 부여하는 과정이 즐거워 보여요.
약간, 저 스스로 음모론자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해요. 우리가 피자를 시키면 배달 중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삼발이 형태의 플라스틱을 알고 계실 거예요. 그것을 피자 세이버라고 부르는데 작품 ‘Pizza Saver’에서는 피자를 만들고 이 피자를 지킬 피자 세이버를 소환하는 비밀 결사대가 등장해요.
이러한 이야기들은 제가 길을 가던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면 미친 사람으로 보겠지만, 이러한 내용의 책을 만들고 설명하면 사람들이 그럴 수 있겠다고 진지하게 수긍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ㅎㅎ
작가님께서 피자 천국, 치킨 지옥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으신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요?
옛날부터 이솝 우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우화는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야기를 듣고 독자들이 본인이나 사람들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효과가 있어요. ‘이 행동은 아둔했다.’, ‘아 나도 이럴 때가 있는데.’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기도 하죠. 우화를 만드는 것도 ‘조금 물러나서 이 세계를 관찰하면 좋겠다. 그러면서 세계 자체도 흥미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비롯되었죠.
피자 천국과 치킨 지옥은 이분법적인 세계처럼 보이지만, 사실 피자와 치킨 중 하나만 영원히 선택해야 되는 건 아닌 거죠. 그런 생각으로 만든 세계인 거죠. 오늘은 피자를 먹었으면 내일은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거죠. 돼지와 닭이 같이 존재하는 세상이에요. 소도 있고요. 지금은 이야기를 만들면서 현실하고 접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여기 보이는 이 책은 새로 만들고 있는 책이에요. 책의 1부는 닭과 돼지가 그려진 간판 사진들을 모아놓았고, 2부는 만화를 그릴 예정이에요. 서사는 아직 잡아가고 있는 단계예요. 아직은 시놉시스만 있는데 목장에서 평범하게 살던 돼지가 적성에 안 맞아서 피자집 간판에서 홍보 일을 하는 이야기예요.
길에 있는 간판을 보면 돼지, 소, 닭이 자기가 맛있다며 미소 짓고 있잖아요. 경쟁하듯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있거나 군침이 돈다는 듯 혀를 하나 내밀고 있어요. 그런 이미지들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하고, 우리 모습 같기도 하죠.
지금까지 작업해 온 세계관으로 조금 돌아가보면, ‘피자 = 천국’, ‘치킨 = 지옥’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피자는 8등분으로 나눠져 있어서 이론상 공평하게 먹을 수 있죠. 물론 완벽하게 공평하다고 얘기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지만요. 반면 치킨은 원하는 부위를 먹기 위해 경쟁해야 돼요. 그러한 점에서 세계관 속 피자와 치킨은 현실 속 남한과 북한처럼 이데올로기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해요.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나는 남한에 살고 있으니까 치킨만 먹어야지.’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지는 않아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화는 현실의 일부를 비춰보는 정도의 역할을 해요. 심슨과 같은 만화를 보면서 부조리한 사회 모습에 대한 풍자를 읽는 것이지 모든 세상을 해석하고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아니듯이요. 저는 작업을 통해 누군가에게 교훈을 주려는 생각은 없고, 상상 속 세상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제안을 하고 싶어요.
피자 천국과 치킨 지옥이라는 세계는 제목에서부터 이분법적인 인상을 주지만 과연 피자 천국이 진짜 천국이라면 이렇게 생겼을까? 생각해 보는 거죠. 피자 천국과 치킨 지옥의 풍경을 그린 이유도 제목대로 상상하려면 하려면 하늘 위에 천국이 있어야 하고, 지옥은 땅 아래에서 불지옥이 끓고 해야겠지만 사실 주인공은 그것들이 반반으로 뒤엉켜 공존하는 세계 속에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인식하는 현실도 비슷한 것 같아요. 인터넷 속에서는 국가와 정치, 지역 모든 것이 갈라진 개념처럼 보이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모든 것들이 다 섞여있죠. 어떤 이들은 머릿속 개념을 가지고 현실의 존재를 나누거나 재단하려고 하죠.
옳다고 정의한 것은 뭘까에 대한 고민도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정의라고 생각한 것은 정말 옳은 것일까. 결국 한 사람이 파지 한판을 다 먹을 수 있고, 배려해서 나눠준다 하더라도 상대가 싫어하는 게 잔뜩 들어간 부분을 주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치킨은 서로가 선호하는 부위를 나눠서 공평하게 먹을 수 있다고요. 옳음과 그름, 선의와 악의가 뒤엉킨 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을 작가님을 통해 한번 더 하게 되어요.
작가님께서는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을 내리거나 명확한 메시지를 주시지는 않는 것으로 느껴져요. 자신의 이야기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작가들도 있잖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작업의 주제가 ‘피자 혹은 치킨’이라는 질문 자체예요. 저 스스로도 대답을 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나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명확한 판단을 내리고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직 서툰 것 같아요.
세밀화가 아닌 그림들의 형태는 미키마우스의 전신인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나, 베티붑(betty boop) 같이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봤을 법한 이미지와 닮아 있어요. 이러한 이미지는 ‘러버 호스 애니메이션(rubber hose animation)’이라고 불리는 스타일이에요. 마치 신체 움직임이나 모양이 고무 호스와 닮아 붙여진 이름이에요. 그런 형태가 재밌고 좋아서 그리게 된 것 같아요.
신동철이라는 작가에게 작업이 책이어야 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었어요. 그림이 담긴 작은 전시장이고, 세상을 해석하며 찾아간 이야기를 공유하는 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결과를 매해 관객들에게 전해주는 선물 같은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후엔 책 외에도 어떤 작업들을 계획하고 계실까요?
책이 아니더라도 그림은 계속 그려나갈 거예요. 요즘엔 설치 작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요. 지난달에 판화 단체전을 했어요. 실크스크린으로 간판 속에서 웃고 있는 돼지 이미지를 여러 장 찍어서 전시를 했는데, 각각의 이미지에 실제 돼지 귀에 다는 순번표를 붙였어요. 100개로 채우려다가 공간에 맞춰 6행 16열로으로 이미지를 붙이게 되면서 96번까지 순번표를 부착했어요. 그래서 제목을 ‘96점짜리 미소’라고 짓게 되었고요. 100점이라는 목표는 항상 이 사회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인데 살짝 모자란 96개의 미소로 작품이 완성됐어요.
의도치 않았지만, 100개의 순번표를 주문했는데 그중 몇 개가 빠져 있더라고요. 이 때문에 벽에 붙은 숫자는 결국 98로 끝났어요. 실제 작품에서는 숫자가 ‘98’로 끝나지만, 제목은 ‘96점짜리'고 수치화된 미소라는 사실이 저만의 농담인 거죠. 애매한 숫자들이 등급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앤디 워홀이 마를린 먼로의 웃음을 찍은 것 같기도 하고, 돼지의 웃음 속에 여러 층위가 섞여 있게 되었어요.
결과적으로 정답이 없네요. 모든 게 정답이 없고, 또 완벽하지 않고요.
살아가다 보면 어떤 것들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되어질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자전적으로 보면 회사를 다니다가 어떤 시점에 퇴사를 하게 되는데 그것도 내 선택일까, 시점이 잘 맞아서 자연스럽게 퇴사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이런 오묘한 의문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있어요. 주체적으로 생각해서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다 결정하고 몇 수 앞을 내다보지만, 저는 지나고 보면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한 것들이 내가 내린 결정이 아니고 어떤 상황으로 만들어졌다고 느끼곤 해요.
신동철 작가라는 이 예술가는 ‘어떻게 될 거야.’라고 선제적으로 얘기하거나 예언해서 사람들을 끌어가겠다는 입장 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서 3.5 걸음 정도 뒤에 있는 것들을 돌아보면서 그것들을 꾸준히 들여다보고 이해해하는 사람 같아요. 그림과 책이라는 소재로 재구성해내면서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또 앞으로 나가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무언가를 만든 이후에 한걸음 뒤에서 들여다보고 다시 이해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그걸 조금씩 더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작업을 해나가요. 이것이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와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최종 형태를 정해놓고 계획해서 설계하고 나아가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책을 만들고 다음 버전은 축소해서 만들기도 해요. 개정 증보판을 만드는 방식을 많이 취하고 있어요. 다른 예시는 피자를 투명레진 안에 넣고 굳히는 작업을 하고, 그 작품을 스캔해서 스티커로 만들기도 했어요. 몇몇 그림은 동판화를 한 다음에 그걸 다시 스캔해서 실크로 찍고, 그걸 다시 스캔해서 넣은 것도 있어요. 이상하고 번잡한 작업이지만, 결국 미래에 내가 어떻게든 하겠지라는 생각에 부담을 덜고 작업을 할 수 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최종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을 덜고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고 계속 과거의 것들을 살펴보면서 새로운 형식과 언어로 생산해내고 있어요. 그런 태도로 인해 판화라는 매체를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신동철이 움직이는 형태가 순간순간을 귀하게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현재가 내 미래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순간이 아니라 지금 내가 눈앞에 있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쌓아 온 것들이 다른 길을 열어주는 문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물론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 새로운 작업이나 현대 미술에 대단한 비전을 제시하면 좋겠지만……
모르죠. 한 걸음씩 가다 보면 어느새 닿아 있을지도요.
그림은 언어를 뛰어넘는 게 있잖아요? 귀여운 것은 만국 공통이라는 말도 있고요. 그런데 제 작품이나 그림 스타일은 스스로 느끼기엔 좀 비주류의 작품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감사하게도 좋아해 주는 한정적인 사람들이 있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 그림의 스타일을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보부상처럼 내 그림을 좋아할 사람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국내 아트북 페어뿐만 아니라 도쿄, 타이베이, 싱가포르, 베를린 등 해외 아트북 페어에도 지원했어요. 해외에서도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이 만든 책을 한국에서 모두 판매/소화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해외 아트북 페어에 나가게 된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였어요.
한국 페어 이후에 책을 가지고 해외에 가보게 되었는데, 가서 많은 작가들이나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어요. 작업을 하면서 온라인=인스타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도 있었고요. 저는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그들이 한국에 왔을 때 밥을 함께 먹거나 여행지를 추천해 주거나 같이 가기도 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친구들이 반대로 제가 그 친구들의 나라로 갔을 때 작가대 작가가 아닌 인간대 인간으로 관계를 맺었어요. 그렇게 친구가 되니 그들의 문화나 생각을 느낄 수 있었어요.
예를 들면 중국의 'abC 페어'는 처음에 제가 참가 문의 메일을 보냈다가 담당하는 친구를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한국에 왔을 때, 궁금한 마음에 함께 밥을 먹으면서 친해지고, 이후에는 제가 2년 연속 베이징 아트 페어에 참여하면서, 그뿐만 아니라 abC의 다른 친구들도 모두 친해지게 되었어요.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친구들이라, 9월 초에 진행하는 음식 축제의 그래픽 작업을 협업하게 되었어요. 그들과 함께 먹었던 많은 음식, 특히 베이징덕 전병을 생각하면서 만화를 그렸어요.
관계가 확장되고 각 나라에 인적 자원으로 거점이 생기는 과정이라면 후엔 엄청난 힘이 될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지난번 언리미티드에디션(서울 아트북 페어)에는 제가 대학원 논문을 쓰느라고 참여할 엄두가 안 났지만, 베이징 아트 페어에서 2년 연속 이웃이었던 ‘만화경 북스(Kaleidoscope Books)'가 가 부스에서 제 책을 판매해 주겠다고 먼저 제안했어요. 그리고 그에 대한 고마움에 스튜디오 초대를 하고 저녁을 함께 먹었는데, 함께 놀러 온 스위스 출판사 'CVBOOKS'과 이야기하다가,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서점에도 제 책을 입고하게 되었어요. 이런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그래서 저는 제 책들과 이야기가 저보다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워요.
뭔가 활시위가 당겨진 느낌이 드네요.
공간 이야기
이전에는 작업실이 신사에 있었는데, 신사에서 을지로를 왔다 갔다 하는 빈도가 생각보다 많아서 보통 일이 아니에요. 저는 실크 제판을 자주 맡기는데, 보통 완성본을 퀵으로 받을 수 있겠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제가 직접 왔다 갔다 하면 한 시간 넘게 소요가 되어요. 그동안에 체력 소모도 있고요. 여기 보이는 실크 판이 엄청 크잖아요. 낑낑거리며 들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 기운이 빠져서 그날은 작업을 못해요. 하지만 이제는 가까운 곳에서 종이를 바로 구매하고, 실크 제작 업체에서 바로 판 가져오고, 실크를 찍다가 물감이 떨어지면 안료 상사 가서 안료를 사 와서 계속 찍을 수도 있어요.
또 제가 스티커, 엽서, 포스터 같은 인쇄물을 맡기고 다음날에 받고, 목업(mock up)을 위해 소량으로 인디고 인쇄로 책을 만들면, 출근길에 가져올 수도 있어서 너무 편해요.
책이나 굿즈를 포장하는 비닐도 방산 시장에서 종류별로 직접 보고 구매하는 것도 너무 좋고요. 거리가 멀 때는 가는 곳만 가서 구매했는데 막상 이곳에 작업실이 있으니, 오며 가며 을지로의 다양한 곳을 알게 되고, 여러 곳에 발품을 팔다 보니 가격도 더 저렴한 곳도 많이 발견하게 되었어요. 여기 지내면서 보이는 게 많아졌어요.
작업의 효율성 극대화 되었을 것 같아요. 체력도 많이 아껴줄 것 같고요.
내일 이야기
5년은 좀 멀게 느껴져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책 속에 나오는 세계관을 보여줄 수 있는 물질적인 증거나 오브제를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아마 그런 일을 계속하고 있을 것 같아요. 말로 하면 허황된 저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독자들이 현실성 있게 느낀 것처럼, 물성을 지닌 오브제나 디자이너 토이, 입체 작업 등을 통해서 더 큰 몰입감을 주고 싶어요. 만화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피규어나 굿즈를 가지고, 그 세계에 열광하는 것처럼요.
그림에 있었던 것들이 현실로 나오는 과정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계관도 더 탄탄해질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상품 가치가 있는 것들도 나오고 소비도 되고, 작품성 있는 것들이 나오고 전시도 되고 미술 영역에서 소비도 되는 과정들이 순환하며 계속 열려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됩니다. 작가님께서 국제적으로 만들어가는 거점들이 또 있으니 그 통로들이 확장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이 ‘책’이었지만 신동철의 서사에서 ‘책’은 하나의 시작점으로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이후에 나올 것들의 바탕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바이킹이 바다를 지날 때 사용했던 배를 육지를 넘어갈 때는 들고 이동하고, 다시 바다를 만나면 타고 갔다고 해요. 저도 책이라는 매체를 고수하는 것이 미련해 보일 수 있지만, 중요한 순간순간 제 작품을 소개해주고, 누군가를 알게 해주고, 제가 모르는 먼 곳에 있는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책이라는 배에 이야기를 담아 나르는 화사
신동철 작가가 발견한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지고 책이 되면서 우리는 세상을 다시 한번 이해하게 됩니다. 우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작가님의 뜻대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운을 남깁니다. 조금은 덜 무거운 형식으로요. 시대가 지나 오늘날 우리가 이솝의 이야기를 기억하듯, 작가님의 우화도 뒤에 올 사람들에게 유효한 이야기를 계속 전해 주길 바래봅니다.
돌아보면 작가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오셨음을 알게 됩니다. 책이 배라면 끊임없이 아껴주고 관리해 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속'이라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지요.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더 많은 시간을 드렸나, 조금 덜 드렸느냐의 차이만 있어 보입니다.
내가 지나온 길을 흘려보내지 않고 귀하게 여기는 힘이 차곡차곡 쌓여 앞으로 밀어냅니다. 그 힘이 작가님을 어느 곳에 닿게 할지 기대됩니다. 양적으로 책의 페이지가 쌓이고 있고, 매체는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계망이 곳곳에 거점을 만들며 확장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작가님의 그림으로 우리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되길 바래봅니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동철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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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매체로서의 책의 담론과 패러다임, 한국기초조형학회, 김옥경,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