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두 Oct 20. 2024

작은 도시의 들, 꽃

PROLOGUE

장인의 화원 일원, 을지로 산림동, 2017



24개의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쌓였습니다. 수 때문일까요. 지난 1년 8개월이 마치 24 절기를 지나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절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 김에 '예술가 이야기'의 첫 장을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그동안 듣고, 기록했던 이야기를 정리해 보기에 적절한 시점처럼 느껴집니다. 


그들은 '을지로'라는 지역을 공유했습니다. 서로의 색이 다르지만 '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낡은 도시, 빠르게 변하는 도시, 많은 것들과 연결된 도시 을지로는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장소를 공유했습니다.


낡은 도시엔 틈이 많습니다. 콘크리트에 금이 가듯. 서울의 외곽이 점점 개발되면서 새것을 쌓아가는 동안 중심에는 시간이 쌓였습니다. 부동산은 한국 사회에서 투자를 위한 좋은 수단이 되었고, 돈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사람들의 관심도 흘러갔습니다. 낡은 콘크리트, 오래된 수도시설, 엘리베이터 없는 건축물은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졌습니다. 그렇게 서울 중심에 위치한 작은 도시의 시간은 멈췄습니다. 그 무거운 진공은 낮은 파장으로 진동했습니다.


옛 길과 건물은 임대료를 멈추었고, 어떤 곳은 후퇴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낮아진 가치는 역설적이게도 어느 순간 새로운 기회를 주는 공간으로 전환되었습니다. 1년 중 어둠이 가장 긴 동지에서부터 밝음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듯, 작은 도시의 가치가 가장 낮아졌을 때 새로운 가치가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흘러온 예술가들은 도시의 빈 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마다의 지향과 취향을 가진 이들은 무엇이든 마음껏 해도 되는 멈춘 도시에서 저마다의 싹을 틔우고 잎을 펼치고 꽃을 피웠습니다. 무채색이었던 도시는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색이 피어는 곳이 되었습니다.


예술가라는 조금 별난 업을 삼고 있는 이들은, 을지로라는 조금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마치 짐작할 수 없는 여정을 지나 비옥한 토양을 찾아낸 야생화 같이 자리 잡았습니다. 저마다의 색으로 자신이 점유한 장소를 채우며 각자의 지향으로 하루마다 가까워졌습니다. 지난 시간 을지로에 쌓여 있는 서사가 모두 그들을 위한 양분이었고, 이웃하는 서로의 존재로 공존하고 경쟁하며 자신의 영역을 더 풍요로워지게 하였습니다.


'땅' 역시 자신의 비어있던 낡음을 형형색색 채워줄 '들꽃'의 방문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제서야 공실은 긴 동면에 들었던 자신의 역할과 가치가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다시 구석구석 사람들이 찾아들고, 버려졌던 곳에 있었던 가치를 공유했습니다.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만드는 곳 중 하나로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9년간 간의 예술가와 도심은 서로를 필요로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서로가 필요하다면 나는 어떻게 증언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시작했고 24명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각자 다른 장점으로 도시의 삶을 채운 17가지 줄기에서 핀 24송이의 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본 책의 목차는 크게 4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나를 찾는 여정」 「만남과 연결」 「도시 발견자」 「세상이 비친 세상」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서로 다른 24명의 공통점을 찾아 보면 '○○을 공유하는 사람' 혹은 '○○을 △△와 연결하는 사람'이라고 설명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작하되 공유해야 하는 과정 위에 그들은 존재합니다. 또 홀로 존재할 수 없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자신의 업을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위 이야기에 대입해 4 가지 구분 기준을 만들어 그들을 상징할 수 있는 들꽃에 비유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의 틈에 피어난 그들을 머릿 속으로 그려보실 수 있길 바래봅니다.


나와 내면을 연결 : 제비꽃

나와 새로운 세계를 연결 : 꿩의 비름

타인과 타인은 연결 : 수수꽃다리

타인을 장소를 연결 : 괭이밥



≫ 작은도시예술지도




*본 브런치 북에 담길 예술가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일 수 있도록, 귀에 들리자 않았던 것을 들릴 수 있도록 하여 인지의 표면적을 넓히고 자신을 이해하도록 돕고, 나아가 타인과 소통할 여지를 열어주기 위해 예술의 영역 안에 있는 매체를 이용하는 모든 이들을 칭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