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부려 스스로에게 뒤통수를 맞는 예술가
범상치 않았던 ‘착’을 다시 만났습니다. 타투이스트이자 퍼포머로 활동한 ‘착’은 항상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날카롭고 거침없어 보이는 그는 퍼포먼스를 할 때면 주위 사람들을 같이 흥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의 에너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 규칙을 만들어 선을 쌓아 그려나갑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마주하는 삶을 예술로 만들어나가는 그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목차
착 이야기
작업 이야기
공간 이야기
내일 이야기
착이야기
을지로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착 입니다.
타투이스트로 활동하고 있었고 2019년 18년 19년쯤 을지로에 오게 되면서부터 퍼포먼스 활동을 시작을 하게 되었어요. 올해 들어서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어요. 사실 그림을 가장 오래 해왔습니다.
그럼, 가장 오랫동안 해오셨다는 그림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림을 전공하신 걸까요?
전공을 하지 않았어요.
고등학교는 예고를 진학했었지만, 1학년 1학기를 다니다가 그만둔 이래로 입시를 준비했고 18살에 동서대를 갔었어요. 그런데 대학교도 2학년이 되자마자 그만뒀어요. 멀티미디어 영상과를 갔었거든요. 전공은 영상이었지만 저는 계속 그림만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아직은 좀 섣불리 다가간 건 아닐까 싶었어요. 자퇴를 결심하고 그 뒤로부터는 혼자서 계속 쭉 그림만 그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씬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말 혼자서 어디까지 가보나 하면서요.
작가님의 서사는 역시 일반적이지 않네요. 흥미로워요. 그림을 하셨고, 입시를 해서 예고를 가신 거잖아요. 졸업하지 않고 18살에 대학을 가셨을 때 어떠셨어요?
수능 준비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환경은 너무 좋았어요. 친구들도 너무 좋고. 그런데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게 너무 분명한데 굳이 남은 고교생활 2년을 입시준비로 보내야만 하는지. 이게 좀 시간낭비라는 생각으로 엄마한테 얘기하고 그 당시 화실 선생님께 얘길 했었죠.
한국 사회라는 곳이 학력을 많이 따지고, 부모님 입장에서도 예고를 보내셨으면 기대하시는 바가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아들이 여기까지는 성장했으면 좋겠다. 나도 노력을 해서 보낸 거니까 여기까지 좀 참고해 줬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지 않으셨을까 싶은데 반대는 안 하셨어요?
학력 중요한 건 알았지만 그게 또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좀 깔려 있었고, 어릴 적부터 엄마는 뭐랄까 내가 이거하고 싶다고 하면 최대한 밀어주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엄마도 무조건 학교는 나와야 한다는 편견은 크게 없으셨던 것 같아요.
사회적인 어떤 측면보다 아들의 삶의 가치가 더 중요시하셨던 거네요.
왜냐하면,
엄마도 원하는 걸 하면서 살고 싶어 했었고 그런 점에서 저랑 잘 맞았어요. 또 이걸 얘기하기에 좀 웃기 한데 ‘대학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그렇게 생각했었어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어떠셨었어요? 나이도 동기들보다 어렸을 거고, 과랑 무관하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셨다고 하시니 그 이후의 서사가 궁금해져요.
MT도 그렇고 술을 마셔야 하는 자리가 많다 보니 술집에 가는 날엔 끼기도 힘들었어요.
동기들과는 거의 말을 놓고 지내던 편이라 대학교 생활이 좋았는데 결국에는 또 전공에 대한 애정의 문제로 완주하지 못했던 거죠. 영상 과를 갔는데 나는 영상 할 생각을 안 하고 있었으니. 영상과를 선택한 것은 화실 선생님의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영상을 잘해야 할 거야. 직업적으로도 비전이 좋아.’라고 하셨죠. 근데 대학을 간 이후에도 저는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었고 2학년이 되어서도 영상이란 재료에 없다는 걸 파악했어요. 아직 스스로에게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입시라는 게 고등학교 3년 동안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를 보류하는 시간인 거잖아요. 저는 스스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고 그런 상태에서 대학을 간 케이스죠. 전공마저도 생각할 여력 없이 시간을 아끼겠다는 이유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대학교 전공선택을 화실선생님께 맡겨 정해버린 거였지만, 결국 저한테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다시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러던 차에 어머니가 “문신해 볼래?”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대학교를 나오고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가던 무언가가 사라진 거란 말이죠. 저는 그 시간을 충분히 내가 하고자 하는 무언가로 채울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나름 그 먹먹함이 컸지만, 그럼에도 잘은 견뎠어요. 그동안 그림은 그리고 있었거든요.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같으니까 한예종을 준비를 해볼까? 이러면서 나름 설렁설렁 혼자서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2년간 실패를 맛보고 있던 와중에 어머니께서 눈썹 문신하면 잘할 것 같다며 추천을 해주신 거죠.
어머니께서 중요한 길을 열어 주셨네요. 그나저나 타투이스트의 시작이 ‘눈썹문신’이었다니!
작업이야기
어떻게 보면 저는 제 선택으로 무언가를 시작 한 계기가 거의 없다고 봐요.
의도치 않게 어떤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결정적인 순간들이 특히나 그랬죠. 그래서 전 그 속에서 어떤 역할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항상 고민해 왔어요.
타투도 그래요.
저는 사실 타투를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진짜 안 좋아했어요. 아니 타투를 왜 하냐고 몸에. 근데 어머니가 ‘눈썹 문신’을 접하고는 “너 이거 하면 잘하겠다.”고 추천해 주셨는데 그 계기가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했어요. 그 당시 저는 백수였고. 무엇을 뚜렷하게 하고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거절할 수도 없었던 거예요. 타투는 싫어했은데 그래도 ‘일단 기술이랍시고 배워나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눈썹 문신을 하시던 이모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오히려 야쿠자 문신으로 알려진 이레즈미를 추천해 주셨고 그분의 소개로 이레즈미작업을 하고 있던 형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타투를 배우게 됐어요.
이레즈미라는 장르는 굉장히 평면성이 발전한 특성이 있어요. 이게 일본의 우키요에로부터 시작했어요. 우키요에는 평면성이 필연적인 장르이죠. 저는 그전까지 그림을 그리면 입체적으로 그렸어요. 평면성을 다루는 건 쉬운 일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오히려 아니었던 거예요. 이 평면이 강조된 그림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되게 또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하는 것에 대한 흥미를 느꼈어요. 우키요에나 이레즈미가 지닌 평면성에 흥미를 느낀 이후 완전히 바뀌었어요. 평면성 안에서 자연스러운 느낌을 뽑아내고자 입시 때부터 다져온 입체성을 내려놓았어요.
이레즈미를 배웠던 기간이 기억나요. 그전까지는 종이에만 그리다가 사람 살에다 그리는 일을 하게 된 거잖아요. 새기는 일이 어느 순간은 종이에다 그리는 일이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어요. 저는 피부에 새겨 넣는 맛?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그 촉감이 좋았어요. 제가 어떤 그림을 표현하던, 그 맛을 계속 느끼는 것이 되게 자극적이었고 흥미로웠어요.
퍼포먼스도 예상치 못하게 시작을 하게 되었어요.
이건 좀 계기가 웃었던 게, 중국에서 전시랑 공연을 기획하게 될 때가 있었어요. 2019년 한 중반 여름쯤이었는데 그때 중국 샤먼에서 요한 형이 샤먼에서 살고 있는 지인분과 함께 기획한 자리였어요. 저는 타투를 하면서 제가 그렸던 도안들을 전시하는 처지로 참여했었어요. 현재 ‘안철순’의 철순, 케이헤르츠 누나라든지.. 당시 육일봉에서 만난 지인들이 공연팀이었어요. 전시와 공연전날에 저는 전시준비 다 끝내고 공연팀 준비에 뭐 도와줄 거 없나 하고 공연장소에 갔었죠.
큰 광장이었어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음악을 틀었죠. 철순이가 먼저 음악을 틀었나? 사람들 춤추려고 음악을 튼 건데 아무도 안 들어오는 거예요. 광장 주변에서 서성이며 보고만 있고. “이러면 우리 공연 망하는 거다.”라며 되게 걱정을 하고 있다가 마침 그때 제가 가져갔던 스케이트보드 하나가 있었어요.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제가 박수 유도를 해보겠다 했었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광장을 돌면서 박수 유도를 했어요. 한국식으로 했죠. 근데 안 먹히더라고요. ‘어떡하지? 하다가, 내가 먼저 춤을 추고 있으면 사람들이 한 사람씩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저 혼자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그때 저는 전시장에서 타투 퍼포먼스 하겠다고 손님을 받으려 했던 와중이라 마스크 끼고 앞치마에 라텍스 장갑 끼고 있다가 춤을 추게 된 거였어요. 계속 추니까 그때부터 한 사람 한 사람씩 들어오더라고요. 결국에는 성황리에 끝났어요. 되게 주목도도 높았고.
한국에 돌아갈 때쯤에 철순이가 ‘한국 돌아가면 내가 음악 틀고 너 춤췄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줬어요. 그때부터 시작이 된 거예요. 감각의 제국에 놀러 가면서 춤추고 이후에 ‘안철순’이 생기면서 철순이 안도랑 같이 뭔가를 정말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육일봉’에서도 퍼포먼스를 진행을 했었고요. 그러면서 작가분들과도 연이 닿으면서 퍼포먼스를 하게 됐죠. 이게 퍼포먼스를 하게 된 계기였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시작해서 진행한 게 없어요.
제가 그은 선을 보고 왜 이렇게 그었는지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어요.
전에는 그리고 싶은 대상이 제게 있었고 그것을 그렸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을 찾아왔어요. 하지만 그리고 싶은 대상이 없을 땐 그림을 그리지 못했던 때가 있고 없고를 반복했어요. 그러다 작업에서 큰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이 있었어요. 제가 호주에서 그렸던 브러쉬 작업이에요.
그 당시에도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던 때였는데, 뭐라도 그려보자 했어요. 마침 붓이랑 검은 물감이 있어서 획을 긋었는데, 그 그림을 표현을 해놓고 이 획이 왜 이렇게 그었는지를 역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 저 스스로를 관찰하게 되었어요. 붓 터치라는 게 제가 항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100번을 그어도 똑같은 획이 나오지 않아요. 단 한 번도 다 다르거든요. 내가 그었지만 내가 오히려 관찰하게 되는 거예요. 의도치 않게 발생한 현상을 내가 관찰을 하게 되는 그 과정에 흥미를 좀 강하게 느꼈었어요. ‘내가 꺼냈으면서도 관찰을 하게 되는 이 상황이 재미있었고 획을 긋기 전까지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형상이었기 때문에 더 자극이고 더 새로웠어요. 더 발견할 만한 발견인 거죠. 뭔가 내가 창작을 했어. 내가 원하는 대로 나왔다,라는 느낌과는 달랐고 그 계기로부터 전환점을 맞이했던 것 같아요.
나 밖에서 나를 보게 되면서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 혹은 나와 환경의 소통으로 만들어진 결과를 가지고 탐구하기 시작한 거네요.
맞아요.
그동안까지는 슬럼프여서 거의 한 2년 3년간을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에 회의감이 느껴져서 그만둔 상태였거든요. 그런데도 뭔가 표현의 욕구가 있었던 나머지 한번 그려나 보자 해서 한 거였는데 그림에 있어 관점을 바꾸는 시작이 되었어요.
그 순간이 수행자의 입장에서 작업을 하게 된 전환점이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혀 다른 접근의 시작점이에요.
제가 살아가면서 방금 말씀드렸던 것처럼 오히려 내가 첫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던져놨는데 그 속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하고, 만나게 되고, 마주하게 되고, 좀 더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뭐가 또 나오고 계속 그 과정이 연속이에요. 지금도.
작가님의 예상치 못한 변화의 순간이 한순간에 생긴 게 아니라 지난 시간 퇴적되어 온 것들이 우연치 않은 요소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 확 피어올랐다가 다시 쌓이는 과정을 가지고 어느 순간 다시 절묘하게 변화를 야기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 같아요.
그런 연속이었어요.
《누구로부터 From Whom》도 3년 정도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이 또한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가 만족할만한 타투도안을 찾기 위해 다양한 스타일의 도안을 시도하고 고민하다가 또 한 번 이미지에 대한 회의가 왔어요. 그리고 싶은 대상이 없었던 거죠. 하지만 생계와 타투가 또한 연결이 돼 있었기 때문에 놓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여자친구와 카페에 앉아서 책상에 종이랑 펜만 올려놓은 채, 그냥 이렇게 멍하니 있었어요. 그때 시작 되었어요.
타투도안에 변화를 주려고 정말 다양한 시도를 했었어요. 계속된 시도 끝에 결국 지쳐버려서 이제 더 이상 관심 있는 대상도 없고 마음에 동하는 것도 없고 그냥 진짜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긴 해서 종이에 펜으로 직선을 그었어요. 정말 직선만 그었어요. 그나마 이전부터 타투 연습을 하면서 제일 제가 정말 열중하고 몰입했던 연습은 직선을 긋는 연습이었어요. 타투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기술이기 때문이었고, 그 연습이 떠올라서 종이에다가 계속 그냥 그었어요.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밖에 없는 것 같으니까 해보자.’였어요.
몇 개월간 계속했어요. 그 기간에도 그리고 싶은 대상이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누구로부터’ 작업의 방향을 잡기 시작했어요. 방향을 잡게 한 요소는 ‘의심’이었는데, 처음 긋는 직선마저도 어떻게 이쁜 그림을 만들까를 의식하면서 긋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어요. ‘미’를 계획하는 의식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발생이 되길 바랐어요. 좀 더 발생적으로 나오는 그림이 없을까를 고민하다 처음 그었던 저의 선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그날 《누구로부터》의 첫선을 여자친구에게 먼저 맡겨버린 거예요. “네가 일단 그어봐 봐. 여기서 내가 한번 보게.”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저는 예전부터 어떤 하나의 스타일을 정하고 나면 3개월을 넘긴 적이 없어요. 항상 뭔가 지루해서 또 여기서만 머물 수 없는 지점을 느꼈기 때문에 또 다른 지점으로 넘어가고, 넘어가고 했어요. 직선 긋기는 볼 것도 없이 곧 그만두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제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선 긋기를 3년 가까이하고 있다는 게 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인 거예요. 정말 기대가 없었단 말이에요. 여기에 어떤 발전이라든지 어떤 변화에 대한 부분이라든지 다양성이라든지. 그런데 이 작업을 가장 오래 하고 있어요. 또 뒤통수를 맞았지만, 여기 안에서도 바라보게 되는 관찰점을 발견하니까 반갑기도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좀 복합적이에요. 또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여기서도 볼 게 있더라고요.
‘쪼’라고 해야 하나요?
버릇 같은 건데. 물론 계속하다 보면 잡히는 게 또 ‘쪼’이기도 하겠지만 경계를 하고 있어요. 일단은 좀 흘러가는 상황 위에 나를 놓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현재 저는 춤을 잠시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에요 ‘지금 좀 멈춰야겠다. 쪼가 생겨 버릴 것 같다. 가 제 판단이에요. 더 한다면 스스로 ‘인위감’을 느끼게 될 것 같아요.
제가 관객의 입장이 되어 무용작품을 볼 때 ‘인위감’을 느끼게 되면 감상을 망쳐요. 이런 경우를 제 연출가 친구는 ‘상태’를 감지하는 거라고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예를 들어 내가 말이 없는 사람인데, 역할 상 말이 많아야 할 것 같으니까 그 상태로 자기 자신을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표출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상태’로 자기 자신을 두려는 그 지점을 말하는 거예요. 그것을 경계한다더라고요. 그 말에 너무 공감했어요. 그러니까 그 ‘상태’의 지점이 보이는 순간, 그것을 무시한 채, 감상하고 싶어도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현재 퍼포먼스를 내려놓으려 하는 이유 역시 ‘상태’로 나를 몰아가기 전에 끝내기 위함이에요. 물론 보는 이들마다 각기 다른 감상을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공연에서 ‘상태’에 접어든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해냈다. 다행이다. 근데 앞으로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단은 지금 멈춰 서려해요.
내가 해온 예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준 형식이지만, 관성대로 하는 것이 나에게 솔직하지도 않은 거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신 거군요.
네, 맞아요.
그 맥락에서 《누구로부터From Whom》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까 제가 첫선에 대해 의심을 한다고 그랬잖아요. 제가 긋는 선이 어떤 ‘상태’를 만들려는 무의식적인 의도가 담기는 것 같아서 오히려 다른 분들한테 선을 받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누구로부터From Whom》는 다른 사람이 그어준 선을 따라 선을 그어간다는 그리기 체계를 설정해 둔 거고 《트렉Track》은 반듯한 설계도를 따라서 획을 긋겠다는 형식을 부여하고 있어요. 작업을 진행하는 와중에 ‘조형미를 의식하는 상태’를 못 부리도록 하기 위해서.
《트렉Track》의 작업과정에 대해서 조금 더 듣고 싶어요. 정방형과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서요.
제가 항상 사각형 안에서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해왔었던 걸 발견했어요.
사각형은 많은 형태를 포괄하는 가장 수용적인 형태라고 느껴왔어요. 이미 사각형 자체가 균형이라고 생각했어요. 《트렉Track》은 ‘세로형 직사각형 형태를 기반으로 모눈종이에 설계도를 만들어내면서 시작해요. 작용이나 갈등을 조장하는 일이죠. 굳이 균형 잡힌 사각형에게 다시 갈등을 주는 일. 누게부터를 통해서 ‘조화’를 고민했어요. 타인의 선이란 갈등요소로부터 나의 선을 메워 나만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갈등요소는 조화라는 현상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라는 걸요. 그러니까 트랙 작업은 반대로 사각형이 지닌 균형을 깨면서 다시 한번 조화를 이루는 작업이에요. 저를 감상하게 하는 것들에겐 언제나 내외적으로 작용과 갈등요소가 있었어요.
자로 그어 만들어진 반듯한 설계도 위에 투명한 필름지를 얹고 설계도의 길을 따라 움직임이 쌓여요. 가는 길은 정해져 있어도 그 길을 따르려는 불완전한 붓질의 움직임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결이 드러나요. 또한 필름지 위에 획을 긋다 보니 수성염료가 바로 흡수되지 않아서, 같은 곳을 그을 때마다 다른 결로 바꿀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트랙작업은 이미 설계된 길을 따르는 붓질을 통해 제가 마음에 와닿는 결을 찾아나가는 작업이에요. 시작이 갈등이건 균형이건 제가 놓이고 싶은 상황은 갈등과 균형이 함께하는 조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품이 추상의 형태로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되어요. 정방형이 가장 안정적인 형태라고 하신 부분 때문에 더 이해가 되고, 형상을 벗어나 나를 다시 보게 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가 되어요. 조화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형상을 가진 것들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결론을 내리셨을까요.
보시다시피 저는 반듯한 선을 그으려 하지만 온전히 그렇지 못한 선긋기로 조화로운 형상을 이루는 추상 작업을 해요. 조화를 이루는 결과 자체를 바라기보다 어떤 태도로 조화를 이루어 가는지가 제겐 더 중요했어요. 저는 제가 살아온 환경을 말씀드린 것처럼, 의도치 않은 계기를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저는 그 상황 속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한 최선을 선택해 왔어요. 조화라는 게 서로의 관계 갈등을 균형하기 위해 한쪽이 온전히 이기적일 수 없는 것처럼요. 조화는 항상 수동적인 태도를 요구합니다. 개개인이 지닌 감각도 결국엔 열고 닫는 버튼 없이, 수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이고요. 현재 누구로부터와 트랙 작업의 선들은 항상 규칙과 정해진 형식 안에서 그어지고 있어요. 그 속에서 발생하는 저의 태도와 움직임으로부터 조화를 이룬 형상을 보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또 다른 예로 들자면, 컵 같은 경우에는 이미 컵이 만들어진 용도나 상징하는 것들이 있죠. 기본적으로 기능적인 이유로 생겨난 물건이죠. 물론 작가들 같은 경우에는 이 컵이 뭔가 담아서 마시는 사물이다 보니 컵의 용도와 또 다른 상징을 컵에 대입하고 비틀어창착을 하죠. 그러면서 기존인식에 대한 확장의 메시지를 주는 작업들을 봐왔었고요. 하지만 그것 역시 컵이라는 상징 안에서 나온 또 다른 상징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닭이 되어 또 알을 낳는 것처럼 기존의 상징을 깨기 위해 또 다른 상징과 담론을 덧붙여나가는 작업은 저를 관찰하기보다 생각의 꼬리만 물고 무는 태도가 되어버려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더라고요. 생각은 좋은데 저의 태도는 온전히 생각을 따르질 못하는.
개인적으로 상징적인 것에서 감상의 포인트를 잘 못 느껴요. 그래서 오히려 ‘이게 뭐야?’ 같은 추상에 좀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저도 다른 분들의 추상을 보면 어려워하는데 추상 작업을 하는 이유는 상징이나 의미가 자리 잡힌 사물들은 이미 용도와 상징으로 균형을 지니고 있어요. 형태적인 균형보다 더 강력한.. 물론 작품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생각해 냈지 또는 어떻게 이런 감각으로 해석했지? 하며 재밌어해요. 하지만 계속 새롭게 들여다보게 할 만한 감상점을 저는 느끼고 싶은데 제가 접근할 경우, 색다른 아이디어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될 순 있어도, 저 스스로 느끼는 감상점에선 뭔가 공허하게 잊히거나 여운 없이 끝나버리더라고요. 여운이랄까요. 여운을 계속 느낄만한 작업을 더 하고 싶었어요.
작가님께서 지양하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오직 능동적인 상태’로 살아가는 일이에요.
능동인지 수동인지를 판단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한 일 일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속이다 못해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건지도 모르는 상태. 저는 발생하는 걸 믿어요. 내가 이걸 만들어야지 해서 만드는 지점보다 발생하는 걸 믿어요. 예를 들어 삼공이(인터뷰어 반려견) 같은 경우에도 동물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죠. 근데 행동은 얘가 숨길 수 없을 거예요. 태가 나겠죠. 말 잘하시는 분도 많죠. 자기 쪽으로 이끄시는 분들도 많고. 근데 시간이 지나면 알맹이가 보여요.
겉으로 꾸밀 수 없는 기저에 깔린 성향이 말씀하신 알맹이가 아닐까 싶어요.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도 있고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있고. 그것들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요?
네, 그래서 오히려 작업 경우 거의 반복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내가 나의 숨길 수 없는 태를 드러내기 위해서예요.
아까 ‘상태’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 있을지라도 그게 반복되다 보면 안에 있는 진짜 성질이 드러나고, 그것은 내가 가진 근원적인 에너지에 가깝고, 그것이 드러남으로써 주변 환경이 또 달라질 수 있고, 거기서 부터 예상치 못한 게 촉발돼서 내 뒤통수를 때리기도 하고.
그거예요. 그래서 이면도 중요하죠.
정신적인 것도 중요한데 저는 일단 제일 솔직한 게 신체라고 생각했어요. 신체. 멋지죠. 손톱 까먹는 버릇부터 해서 이런 것들이 나는 의식하지 않은 새로 뭔가 하게 되는 그런 행위에 대해서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내가 의도하는 의도치는 나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도 예전에는 내가 이렇게 그리고 싶어 해서 끊고, 끊고, 끊고 했던 것들을 이제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더 반복적인 작업으로 뭔가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춤도 그래서 안무를 안 하였어요. 제가 그냥 그 상황을 투여해서 그냥 리듬 듣고 이렇게 췄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은 타투에서 퍼포먼스로. 퍼포먼스에서 회화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착’이라는 아티스트가 하는 예술 행위는 달라졌지만, 그 기저에 깔린 자연스러움, 꾸며지지 않음을 찾아가는 태도는 일관된 것 같아요. 어떤 이상에 다다르고자 하는 것 같아요. 그를 위해 이상적인 방식과 노력과 이 결과들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 기저에 계속 같이 오는 것 같아요. 아까 ‘상태’라고 얘기했던 위험에 넘어가지 않음으로 스스로를 지키는 것 같고요. 최근에는 계속 반복되는 선과 내가 만든 규칙과 그 안에서 찾아가는 균형과 조화, 갈등을 넘어서 다시 조화로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 같아요.
많은 깨달음을 주었죠.
또 계기를 주고 그러니까 지금 작업은 체계를 잡을 수밖에 없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조심하기 위해서 ‘상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고. 그리고 저의 여운을 계속 남겨갈 만한 제가 이걸 알아야 한다고 그랬잖아요. 그걸 더 잡기 위해서 오히려 저한테는 체계가 필요해요. 그걸 이제 지금 작업에서 선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다 달리 주면서 그 각자만의 체계에서 제가 감사한 이유는 여한 없는 어떤 그런 상태를 더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에요.
‘상태’를 위한 장치를 만들어 작업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자신을 견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퍼포먼스는 ‘상태’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일단락 지어 계기 중의 하나가 도시 열섬(2022)이 있었을까요? 열섬에서 해방감과 성취감과 이게 되게 복합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어느 선을 넘어선 경험이 퍼포먼스를 여기까지 한번 마무리하고 다른 형태를 찾는 계기가 되었을까요?
그거 확실히 제가 느꼈던 지점이에요. 맞아요, 그러니까 그때는 죽고 싶었어요. 여한이 없다는 느낌이었어요.
훗날 작가님의 작업이 체계가 잡혀가고 어느 이상까지 가까워지면 다시 스스로 그걸 허물어가는 작업을 하실 것 같아요.
제가 사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어느 때가 되면 한 번은 온전히 떠나 있어 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요. 진짜 말 그대로 절에 들어가는 듯한 그런 상태 작업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상태에서 한 번 다시 의심이 있는 부분들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아요. 작업으로 다 다다르지 못한 그런 그걸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요.
그때까지 탄탄히 쌓여갈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과정이 되게 다져지고 양분이 가득 차는 시간일 것 같고 어느 순간 꽃이 다 피고 다른 형태의 열매가 돼서 지금 말씀하셨던 자신을 돌아보거나 한번 모든 걸 끊어보거나 하는 시간이 되고, 자연스럽게 또 연결되고, 또 그 시간이 회복의 시간이 될 것 같고 마치 겨울을 나서 겨울 동안 땅이 얼지만, 그 때문에 다시 봄의 싹이 틀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되는 날이 있겠다. 상상하게 되네요.
저는 그 뒤샹이 레디메이드 작업하다가 마지막에 체스를 두잖아요.
저 그게 너무 공감되는 거예요. 그니까 이게 되게 오그라드는 말일 수도 있는데. ‘그래, 삶이 예술이 된다면 차라리 예술이 되는 선택하는 게 아닌가.’라는 태도에서 결국 ‘상태’가 되지 않는 나의 삶을 또 원하는 거라고도 생각을 했어요. 어떤 결과물을 통해 증명되는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그냥 내가 살아가는 것 자체에서 어떤 분들이 오시면 누군가 저 자체로 뭔가 영감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가 됐을 때 옆에 있어 준 사람들이 지금 있어 주는 사람들처럼 좋은 사람들이면 되게 건강한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상적으로 본다는 거는 세상 모든 것을 내가 감상하는 처지로 본다는 것이겠죠. 너무 나를 이입시키지도 않고 그게 내가 온전히 될 필요도 없고. 그게 나 자신일지라도. 한 걸음 떨어져서 보고 아프면 아픈 데로 그걸 봐주고 좋으면 좋은 대로 그걸 봐주는 분이 함께 계실 것 같아요.
뭐랄까. 저 역시 ‘최선’을 다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면 결국에는 제가 여기 있으려면 재미를 찾아야 해요. 관심거리를 찾아야 하고, 없어도 발견을 해야 하고. 그래야만 제가 잊게 되더라고요. 저만의 알고리즘을 알게 되다 보면 처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더라도 결국에는 관심 가질 요소를 발견하는 식으로 계속 좀 흘러왔던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되게 방황 많이 했죠.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타투를 하면서도 난 좋아하는 거 뭐지? 내가 진짜 원하는 거 뭐지? 근데 지금에 와서야 받아들인 것들이 생긴 거죠. 오히려 이게 더 자연스럽게 내가 나일 수 있겠구나. 예전에는 나름 작업을 어떻게 좀 개념으로 접근을 하고 막 이런 과정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좀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게 돼요. 왜냐하면 이 과정을 결국에는 또 나는 따르겠구나. 결국에는 지금 뭔가 놓여진 상황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하겠구나. 그게 내 그냥 과정이구나. 그게 내가 제일 자연스럽게 해 왔으니까.
오히려 제가 뭔가 이걸 하겠다라는 결단을 내리고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운 다음에 그걸 차근차근 진행하는 만족감도 되게 큰데 그걸 제가 버거워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거기에 대한 회의감, 자괴감도 많이 느꼈어요. 그런 와중에 뭔가 계속 다양하게 접근할 만한 태도를 보이게 되어서 저는 참 만족을 하고 있거든요.
학자 같아요. 학자 입장으로 탐험하는 것 같아요. 탐험의 주제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 자신’이고. 가면서 계속 만나는 그것들과 반응하는데 그거 자체로 발견하는데 끝나는 게 아니라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 또 난 여기서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을 만난 다음에 나는 다른 존재가 돼 있고. 일정 기간 가다가 또 어떤 계기로 우연치 않은 계기들이 생겨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전혀 예상밖에 항상 저는 뒤통수를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저한테 스스로 항상 근데 그 뒤통수를 맞는 삶 속에 뭔가 느낄 만한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보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사실 그게 저한테는 새로웠어요. 그게 새로움으로 다가왔어요.
공간이야기
부산에서 타투를 1년간 배우다가 안은미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피나인 부산이라는 프로젝트를 안은미 선생님께서 일반인들에게 2분의 시간을 줘서 네 마음대로 해라. 무대에 세워줄 테니까 그런 기획을 하셨거든요. 거기서 안은미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고 이제 나름 워크숍을 다 참여를 했어요. 공익이 끝날 때쯤이라 공연이어서 공연도 참여할 수 있었어요. 공연 끝난 뒤풀이에서 선생님께서 “너 서울에 오디션 있으니까 올라와.”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된 거예요.
부산이 너무 살기는 좋지만 공허한 느낌이 들었어요. 좀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었거든요. 너무 잘 된 거예요. 그래서 서울에 오디션을 보러 갔었는데, 안은미 선생님이 저를 불러주시고 오디션에선 떨어뜨리시더라고요. 근데 그럴 수밖에 없었어. 저 빼고 다 진짜 무용수분들이셨거든요. 당연히 떨어지겠구나 싶었죠. 근데 진짜 떨어졌어요. 오디션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안은미 선생님께서 그 얘기를 해주셨어요. “어차피 부산 내려가면 똑같은 일상의 패턴 반복이 아닐 거 아니냐. 서울 와서 공부 좀 해라.”그렇게 “알겠습니다.”하고 서울에 있게 되었어요.
이후로 저는 원래 하루 있다가 그냥 부산 내려가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그때부터 계속 서울에 있었어요. 그때 저기 신발주머니에다가 팬티 한 장, 티셔츠 한 장, 칫솔 딱 이렇게만 챙겨 왔었는데 그걸로 거의 한 달 두 달 그냥 안 내려가고 서울에 있었어요.
거의 출가했다고 봐야죠?
출가한 거죠. 그러면서 독방이다 싶은 집에 있었는데 얼마 후 호주에 있는 친구에게 워킹홀리데이 오라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호주에서 2년 정도 있었어요. 그런데 다시 한국에 돌아오려니 너무 무서웠어요. 한국에 가면 다시 시작이잖아요. 오히려 호주에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진짜 나중에 비즈니스도 받고 그때 타투도 했었으니까 혼자서.
결국에는 이제 비자 기간을 늘릴 수 없다는 판단을 했어요. 그리고 지금 돌아보니까 그게 우울증이었더라고 굉장히 안 좋았어요. 그래서 일단 한국에 돌아왔거든요. 돌아오고 나서 그때 진짜 타투도 해야 계속했고, 누드모델도 했어요. 당시 창신에 제 막내 동생 집이었어요. 당장 지금 호주에서 한국 가면서 있을 데가 없었고 서울에는 있고 싶으니까 동생 집에 얹혀 있다가 동생이 이제 다른 집을 구하게 되면서 거기에 자리를 잡게 된 케이스였거든요. 그러면서 다시 타투도 하고 육일봉에서 생활을 하면서 을지로에 오게 된 거예요.
그렇다면 을지로 오시게 된 계기가 육일봉이었던 거예요?
맞아요. 오게 된 계기는 육일봉의 가인이라는 그 친구가 이제 타투를 받고 싶다고 해서 저를 불렀어요. 근데 이제 그 작업실이 공사 중이더라고요. 가서 보니 공간이 너무 좋은 거예요. 너무 좋다고 계속 감탄을 하고 있으니까 여기 방 저기 세 개 좀 되는데 오빠 여기서 웬만해선 있어 봐 이러는 거예요. 그때부터 이제 처음에는 집이랑 육일봉을 왔다 갔다 하다가 나중에는 그렇게 어차피 계속 이제 활동도 하고 뭔가를 하게 될 것 같으니까 여기 있어 볼까 하면서 들어오게 되었어요.
집을 처리하다시피 하고 육일봉에서 초반에 있었죠. 그때 가인이랑 한요한 형 이렇게 두 사람이 운영하게 된 그 공간에 직원인지 아닌지 모르게 얹어있으면서 도움을 주고자 했었어요. 어떻게 보면 육일봉의 첫 멤버 이기도 하네요. 그때는 일단은 육일봉이 작업실로 하려고 했었는데 공간이 유지되려면 돈을 벌어야 했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제 가게 운영 방식으로 전환되었어요. 저도 거기서 초반에는 타투 워크숍을 했었죠. 했었는데 계속 진행을 하면서 생겨나는 크루들이 생겨났어요. 그래서 ‘지금 같이 계속 있기가 힘들 수 있겠다. 내가 따로 작업실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때 좀 여러 얘기를 잘 나누고 저는 작업실을 이전하게 됐어요. 너무 좋은 추억이었어요. 그때가 정말 저의 인생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작업실은 한동안 계속 을지로를 터전으로 있으실 계획이신가요? 그것도 고민이 좀 있으신가요?
일단은 있고 싶어요. 사람들이 거기 있으니까 나를 아껴주는. 확실히 예전부터 느꼈던 건 이제 공간이 확실히 멀어지면 그만큼 이제 사람이 멀어지는 그런 거리감이 들 수밖에 없는 그런 두려움이 있었고. 근데 어떤 면에서는 공간 자체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제가 여태까지 살아온 게 그랬었고 그냥 계속 왔다 갔다 하는 입장에서 그냥 귀찮은 것 외에는 사실 공간에 대한 미련 자체는 없어요.
그곳에 그 사람이 있어 주는 게 진짜 큰 힘이 될 때가 있죠.
정말 그렇죠. 그렇죠. 근데 이게 자칫하면 고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을지로 씬 안에 저도 지금 3년간 좀 있게 되면서 느꼈던 점이거든요. 오히려 의도하지 않게 이렇게 배제될 수 있을 듯하여 그 부분에 대한 경계를 좀 하게 되거든요.
그게 을지로에 있는 친구들과 그런 환경이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과 결과겠네요.
그럼요. 정말 좋은 추억들 이런 나로서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한 그걸 통해서 좀 알게 된 거예요. 힘든 게 마냥 힘든 게 아니구나.
마음이 어지러울 때 어느 정도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연인일 수 있고 동네 친구들일 수 있고. 계속 이게 건강하게 갈 수 있게끔 그리고 작가님께서 그런 작업의 기준들을 정해놓으시는 것들 시작과 끝을 정한 거나 아니면 선으로만 그린다거나 하는 것들이 스스로에 대한 기준도 명확하게 만들고 싶어 하시는데 중심을 잡아나가는 작가님의 모습이 보여요.
끝이 안 보이면 저는 불안감과 그냥 갈등이 마냥 갈등이면 그냥 넋이 나가 버릴 수 있는 그런 상황들 그러니까. 주위의 분들이 의도했든 의도치 않든 결국에는 그분들이 저를 살리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예전에는 뭐만 느끼면 이걸 어떻게 작업으로 풀어낼까 고민했었는데 이제는 저는 제 삶이 먼저예요. 삶을 살다가 새어 나오는 내 작업으로 보게 되는 관점을 갖게 됐어요. 오히려 작업이 제 삶보다 우선이 될 수는 그래서 오히려 더 저는 이런 진정성이라고 해야 될까요? 저는 거기에 대한 의심을 더 스스로는 안 하게 된 상태가 되었어요. 이제야 내 삶을 하면서 새어 나오는 것이 작업인 거죠.
그러니까 어떤 감정이 너무 이렇게 빠져 있는 나머지 그 속으로 훅 들어갈 수 있는 중에 있어요. 하지만 오락가락한 점 때문에, 그게 감정일 수도 있고 아주 논리적으로만 빠져드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초점 하나로 완전히 이렇게 빠져들지 못하는 저를 여태까지 봐왔는데 좀 이런 성향에서 오는 게 아닌가 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예전에는 부러웠거던요. 오타쿠들이. 오덕들이 어떻게 자신이 애정하는 것에 빠지지. 나도 저렇게 하고 싶은데 안 되는 거예요. 좋아는 하지만 저렇게까지 못 빠졌겠더라고요. 근데 최근에 좀 알게 된 거는 ‘아, 내가 어느 판에 걸려서 내가 빠지고 싶어 하는 거구나. 그게 작업이구나. 나는 작업 덕질을 지금 하고는 있는 거야.’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기간에 비해 그렇게 쉽게 할 수는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걸 저는 좀 균형이라고 생각했어요. 난 나의 선상에서 조화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갈등이 없었던 게 아니더라고요. 나 지금도 오락가락하는데, 그럼에도 무언가가 변화돼 가고 있고 이루어지고 있고, 나도 의도하든 의도치 않고 내가 살아있음으로써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또 상황이 벌어지고 현상을 만들어내고 그러니까 목적으로 체감적으로 느끼는 건 고통이 더 클지라도 이런 부분에서는 되게 만족을 해요.
내일 이야기
미자막으로 그렇게 쌓아오신 결과 위에 열릴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하려 합니다. 작가님의 첫 개인전을 앞두고 계시는데 전시에 관해서 말씀 부탁드려요.
올해 들어서 그림을 다시 그려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될 줄 몰랐죠. 일단 진짜 저는 제 그림을 제가 보고 감상하고 싶어서 시작을 한 거든요. ‘언젠가는 뭐 전시하지 않을까.’ 뭐 그냥 이런 생각만 하고 있긴 했었지만요. 이렇게 빨리 될 줄 몰랐어요.
개인전이 열릴 때가 자연히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첫 개인전을 축하드려요. 이번 전시엔 《누구로부터From Whom》과 《트렉Track》이 전시된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바로 이어지는 부산 전시에서 더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작가님께서 스스로를 견제하고 관찰하면서 쌓아온 지난 시간과 앞으로 열어나갈 시간을 응원합니다.
스스로에게 최선을 부려 뒤통수를 맞는
예술가 착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스스로를 연마하고 다듬어나가는 수행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전생이 있다면 수많은 생을 도를 닦아 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인생은 언제나 그를 예상치 못한 길로 나를 이끌지만, 그 길목에 만난 이들이 삶을 함께 채워주었고 때론 부족함을 더해 줘었음을 알게 됩니다. 영원히 함께하진 못함으로 우리의 지금이 더 소중하겠죠.
착이 그려내려 가는 수많은 선은 그런 인연과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매 순간의 선택, 함께 있어 준 이들을 위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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