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가치를 더해주는 일반인 A
골목 모퉁이에 위치한 건물 1층엔 세종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사장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볼트가게를 물려받은 사장님은 골목에 작업실을 만든 예술가들이 반갑다며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맘씨 좋은 사장님이 계신 건물에 이후 2층에 케이크가게가 생기고, 3층에 편집샵이 생기고, 4층엔 멋스러운 바가 생겼습니다. 이전에 없던 생경한 활력이 건물 전체를 타고 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022 공예주간 : 우리 집으로 가자》포스터가 붙은 문을 발견하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메모를 남기고 갔습니다. 그렇게 오영훈 작가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업실엔 3D프린터와 공작기기가 가득했습니다. 어떻게 이 무거운 것을 가지고 올라왔을지 놀랐고, 열심히 작업을 돕고 있는 3D프린터들이 부러웠습니다. 장비들 사이엔 사람과 반응해서 움직이는 조명, 사람이 쓴 글과 그림을 잠시 간직하는 조명 등 다양한 기술적인 실험과 상호작용에 대한 고민이 쌓여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3년 만에 다시 작업실로 찾아가 작가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건물에는 더 이상 바와 편집샵이 없었지만 작가님의 작업실 모습과 분위기는 여전하였습니다. 낡은 골목이 내려다 보이는 창 안으로 은은하게 계속 변함없었습니다.
21세기 초입을 관통하는 시점에 공예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삶에 어떤 의미를 더해줄 수 있을지. 공예가로, 제작자로, 교육자로 중도의 답을 찾아가는 오영훈 작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오영훈 이야기
작업 이야기
공간 이야기
내일 이야기
오영훈 이야기
어렵네요. 참, 자기소개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저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말은 ‘재미를 추구하는 노멀한 성향을 가진 사람’인 것 같아요.
대학교 진학 전, 고등학교 때까지는 이과에서 공부를 했었어요. 미술을 늦게 시작한 편이에요. 고3 때 미술을 시작했어요. 재수를 하고 금속공예를 전공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3D에 접근하거나 다루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어요. 돌아보면 학부시절 배웠던 지식들이 오랫동안 쓰이는 것 같아요. 오늘날까지 해온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노멀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예술계 사람들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되게 예민하거나 특정 취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죠. 그 특정 취향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파고 들어가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요. 그런 면에서 저를 바라보면 특별하게 예민한 부분도 없고, 취향도 강하지 않아요. 그래서 문득 ‘노멀’이라는 단아가 딱 맞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창 시절에 보면 반에서 주역이 되는 친구들이 꼭 있잖아요. 그 친구 주변엔 관람객 같은 A, B, C 친구들이 있고요. 주역인 친구와 가까울수록 앞에 쓰이는 알파벳을 선정한다고 했을 때 전 거기서 한 D나 E 정도였어요. 미대에서의 생활도 그랬고요. 이후 활동도 그래요. 일관되게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작가라는 직업과 ‘튀지 않는 성향’이라는 표현이 대비적으로 느껴져요. 더 궁금해집니다. 성향과 별개로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고, 타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실 것 같아요.
첫 시작은 주얼리를 하고 싶었어요. 금속공예과로 진학을 했었죠. 석사를 하게 되면서 곰곰이 고민을 해봐도 제 성향이 특별함이 없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타인의 삶에 무엇인가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의미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주얼리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작품의 이야기와 내재된 요소들을 통해 제가 소중하게 여겨지는 물건을 남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교육에도 큰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소수의 학생들에게라도 제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사람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어쩌면, 제 스스로 저를 그런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그런 역할을 하고 사람이 되고 싶다? 음. 아니에요. ‘되고 싶다’는 너무 적극적인 단어인 것 같고, ‘그런 사람이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모든 것은 일반인 A에서 시작하게 되는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과하지 않음이 작가님께서 균형을 잡는 방식인가 싶기도 해요. 내가 어떤 것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이 주얼리가 되어 삶에 소중한 의미가 될 수도, 사람이 성장하는데 영향을 줄 수도. 다른 과정과 결과 이겠지만 관통하는 맥락이 있네요.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의미 있는 것을 남기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는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위치로 걸어왔고 지금은 그 위치에 서있게 되었구나 싶고요.
혹자는 자신의 존재를 크게 드러내거나 성향을 언급하거나 대중에게 소리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작가님께서는 내가 지향하는 것들이 타인에게 좀 더 의미 있는 것으로 존재하고, 그것이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길 바라며 고민하고 애정을 쌓아오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인 A로써.
작업 이야기
현재는 ‘데스크테리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테이블 위에 소품, 조명을 많이 작업하고 있어요. 어느 정도는 하나의 생활공간에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앞서 말씀드린 주얼리에서 지향했던 일상 속에 의미 있는 물건을 만들고 남기는 것과 맥락을 이어간다고 볼 수 있겠어요.
제가 INTP라서 되게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기계적인 성향이에요. 생각해 보면 예전에 제가 상처를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지만 상처가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제가 그런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내가 원하는 지향과 다른 상황을 보고 좀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아울러 다른 측면에서 얘기를 좀 더 이어나가 보자면, 우리 사회에서 MBTI가 유행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 개인 개인의 성향에 대해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다른 부분은 인정하면서 너무 강하게 다가가거나 진지하지 않으려 해요. 작업에서도 어느 정도의 중도를 지키는 미학을 지향하려 해요.
말씀을 듣다 보니 작가님의 작품들은 마치 대리인 같이 느껴집니다. 누군가의 삶 안에서 빛을 밝히는 기능뿐만 아니라 의미를 더해주고, 시간을 더 가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은 작가님의 마음을 조명이 대리해서 그곳에서 그 역할을 하게 하도록 부여하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걸 좀 대신해 줘.’
‘너는 나의 분신이다.’ 맞습니다. 자연스럽게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면 그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샘플을 만들고 실험을 하고 있어요. 금속공예 기술적인 부분들을 활용하기도 하고 3D 프린팅을 이용한 여러 이점을 실험하고 활용하고 있어요.
제 성향을 상징할 수 있는 작업은 ‘토끼:달의 전설’라고 생각해요. 평범하고 중도에 있는 것들을 원하면서도 일상의 즐거움, 재미를 추구하는 편이에요. 여러 즐거움이 있겠지만 작업의 맥락에서, 공예적인 것을 이야기한다면 물성에 대한 탐구와 실험을 통한 것들이에요. 제가 만드는 것들이 생활공간 안에 있는 제품이지만 그 안에서 기법을 재미있게 풀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요. 그 실험 과정이 즐겁고요. ‘토끼’는 그런 면에서 제 생활 방식 자체를 대변할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토끼’는 다른 작가님의 작업들과 굉장히 달라 보여요. 실험하고 틀을 깨보고 하는 과정 자체가 작가님께 큰 즐거움이었을 것 같아요.
네 그렇죠. 작업하고 실험하는 과정 자체도 그렇고 관객들의 입장에서도 ‘이거 어떻게 했지? 너무 신기하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는 것도 즐겁고요. ‘쟤는 만나보면 그냥 뭐 잘 모르겠는데 작업은 재밌어.’라는 평가를 듣는 것이 좋아요. 이런 부분에서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제게 큰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연구하는 과정과 관객 혹은 소장자의 감상이 연결된 즐거움이네요. 작품이 내 대리인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의 다른 모습을 대변해 주는 역할도 해주고요.
‘토끼’ 작업이 이후로도 더 진행되었을까요?
기법을 활용해서 조명을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사용성’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요소이다 보니 먼지가 많이 끼고 손을 탈 때 변색되는 문제가 걸려서 이후 더 연결되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향상 지속해서 무엇인가를 잘 못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공예과의 특성일지 모르겠는데 제 작업에 대한 확신을 계속 외부에서 찾으려는 성향이 있어요. ‘이게 맞는 걸까?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볼까?’ 그래서 사실 되게 즐겁게 한 작업임에도 불고하고 스스로 덜 찾게 되더라고요.
어느 정도 이뤘으니, 그 목표치는 달성이 되었고. 놓아줄 건 또 놓아주고. 계속 작업을 해나가시는 과정에서 고민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내가 지향하는 것과 외부에서 원하는 것에 관해서요.
그 균형이 저에게 좀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원래 성향도 있었을 것이고, 공예를 하면서 스스로 정리한 정의라던가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으면 그런 성향이 더 생긴 것 같아요.
누가 어떤 이야기를 남기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죠. ‘나는 그런가?’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계속 가지고 있어요. 흔히 현대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을 사용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스스로도 ‘공예가’보다는 ‘제작자’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메이커’라고 하기도 하고. 뭐 그런 것들 때문에 타인의 판단에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딛고 있는 위치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것은 너무 중요한 일이죠. 내가 지금 일반인 A로서 행위를 하고 있지만 내 작업의 맥락은 공예사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어라는 것도 너무 중요하고요. 어느 정도 통용되는 일반성, 보편성을 지녀야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요. 이전에 없던 기법과 방식을 많이 연구하고 찾아가시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을 더 중요시 생각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균형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어요. 예술가로 성장한다는 점은 사실, 어느 부분을 돌출해서 보여준다라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이 부분도 포기 못하겠고, 저 부분도 포기 못하겠고. 이런 성향이 있어서 좋다고 보면 좋은 점이지만 예술가로서 성장하기에 굴레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어요.
그것이 예술가로서, 공예가로서, 제작자로서 큰 짐처럼 느껴지실 것 같아요.
나르시시즘이 강해서 스스로의 창작 행위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구나 불안감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만큼 결과를 보여주는 순간 관객들에게 가지는 고마움도 큰 것 같아요.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가 보통 초심 같은 거잖아요? 그와 관련해서 항상 생각을 많이 하는데, 사실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명감 같은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느낌도 아니고. 하면 재밌고. 그래서 되게 복합적인 이유인데 원인을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일반적인 사람의 입장을 가지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맞는 것 같고요.
작업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대화도 할 수 있고.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있기도 하고요. 이제 이거 밖에서는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그래서 더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너무 큰 마음도 갖지 않고 너무 큰 기대도 갖지 않고 그냥 나 좋은 것, 나 즐거운 것 하고 싶어요.
뭐랄까. 은은한 숯 같은 느낌이 듭니다. 강한 불은 아니지만 쉬이 꺼지지도 않으며 온도를 유지하고 음식에 향도 입혀주잖아요. 은근한 긴 호흡으로 속까지 부드럽게 익혀주듯이요. 그러다 보면 길이 열리는 부분도 생기고. 주변에 사람이 오기도 하고. 그런 요소들이 모여 또 다른 걸음을 내디딜 동력도 되어 줄 것 같고요.
그런 느낌이죠. 15년 가까이해 오면서 흥미를 잃지 않고 하는 것이라면 괜찮은 일이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앞서 보여드린 ‘토끼’도 동료들과 기획했던 단체전에 참여했던 작업이었어요. ‘묘하다’라는 전시였고 ‘토끼의 해’를 맞아 기획한 전시였어요. 첫 기획 자체를 다 같이 시작했고 작품 결과도 재밌었고 주변 반응도 생각보다 긍정적이었어요. 개인적으로 그동안 보았던 눈치를 털어내는 전시이기도 했고요.
함께 전시를 만든다는 것은 어떨까요? 사실 힘든 과정이잖아요.
그렇죠. 제 것만 욕심부리지 않고, 조금 참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한 걸음 나아가고. 불 같은 성향을 가진 친구 덕분에 잘 되는 것도 있으니 ‘그래, 너랑 하면 이게 좋구나. 그래. 대신 너 이건 꼭 다해야 해. 꼭.’ 하는 마음으로 해요.(웃음)
그냥 1년에 두, 세명만 잘 가르쳐도 크다고 생각해요. 저도 강의를 이제 한 6년 정도 했으니 벌써 24명, 25명 정도 되겠어요. 지금이야 사제 지간이지만 조금 지나면 다 동료죠. 그래서 항상 얘기해요. “너 잘 나가면 나 어부바”
예전엔 제가 특색이 없고 특징이 없이 선호하는 취향이라는 것도 없다 보니 절망적으로 느껴진 적도 있었어요. 스스로 ‘재능 없음’이라고 판단한 적이 있었어요. 소위 천재라고 얘기되는 친구들은 잘 나가고 저는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때가 있었죠.
어느 정도 이 영역 안에서 지내보고 사람들도 만나다 보니 저 같은 사람도 필요하더라고요. 그런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있고, 또 무엇인가를 챙겨나가고, 필요할 때 내 역할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다 보면 어느새 그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었어요. 강하지 않고 은은하게 작업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그 은은함이라는 것이 무거울 수 있잖아요. 무게감이 은은하다고 해서 존재감 없는 게 아닌 거죠.
과정이 마치 평양냉면 같아요. 그것이 어떻게 보면 목표 같아요. 그렇게 노력하고 있고요.
‘공예의 사용성’에 대한 관점을 정리하고 있어요. 요즘 하워드 리사티( Howard Risatti)의 ‘공예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그분께서 공예에 대한 정의를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정의를 내린 당시와 오늘날은 많이 다른 시기잖아요. ‘사용성’이라는 단어도 실제로 사용하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여러 가지 다른 것들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단어가 가진 영역이 넓기도 해서 재미있는 요소가 사용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기서 ‘재미있는 요소’라는 것은 ‘개체가 사용자에게 반응한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에 사용성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말씀을 들으니 ‘을지로 디자인 위크, 연결과 확장(2022)’에서 선보였던 작가님 작업이 생각나요. 스탠드 등이 움직인다거나 UV로 사용자가 일시적으로 글과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만드셨던 것들이 모두 상호작용에 관한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재미에 두 가지 의미가 있어 보여요. 만드는 사람이 연구하고 탐구하며 만들 때의 성취로서의 재미와 사용하는 이들이 작품과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재미인 것 같아요.
'깔깔깔'이 아니더라도 가끔씩 생각하면서 웃음이 나오는 그런 것들 있잖아요? 제 작업이 그런 것이면 어떨까 싶어요.
유머스럽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어떤 상황에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억이라는 것이 감정과 연결되어 있잖아요. 이런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작가님의 조명을 일상으로 들인 소장자가 UV로 어디에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를 조명에 써 내려가는 거죠.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읽게 되고요. 하지만 이내 그 글은 조명에 흡수되듯 사라지고. 그때 작품을 대하며 느낀 감정, 녹아내린 시간이 기억을 쌓일 것 같아요.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고 나면 조명은 삶의 기억의 한 형태가 되어 있을 것 같아요. 감정과 기억을 보관해 주는 빛으로 일상에 있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인스타 계정이 ‘@oh_parts’잖아요. ‘oopart’가 원래 그 시기에 맞지 않는 기술을 칭하는 단어거든요. 제 성인 ‘오’와 ‘oopart’의 합성어예요. 오형훈의 작업들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어요. 제 분신과 같기도 하고요.
계속 고민의 지점이 있어요. 이 시점에 내가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 맞을까. 통용되는 언어가 맞을까. 그런 걱정이 많은 편입니다.
공간이야기
제가 전엔 수원 쪽에서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어요. 서울에 오면 종로, 을지로 일대 금속을 쉽게 다룰 수 있는 곳 인근에 작업실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공간을 구할 때 제일 중요한 요소가 도구였어요. 금속을 다루기 때문에요. 자르고, 붙이는데 필요한 도구들이 많아요. 이 지역에 있어야 내가 필요한 것들, 해야 할 일들을 까먹지 않고 하겠구나 싶었어요. 바로 거리로 나가서 재료를 사 오기도 용이하죠. 예를 들어 조명에 어떤 부품이 필요하면 샘플을 들고 다니면 찾을 수 있었어요. 그런 가까운 접근과 빠른 해결이 큰 장점이죠.
수원에서 올라와서 느꼈던 것은 인프라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어요. 만나는 사람들도 많고 어떤 일이 있을 때 편하게 초대도 하는 모습들이 너무 부러웠었죠. 수원에 있을 때는 돈을 받는 손님들 외엔 편하게 오가는 작가들이 1년에 한, 두 명 정도밖에 없었거든요. 그런 갈증이 교통이 편한 을지로에 작업실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었어요.
접근성과 사람의 교류의 밀도가 확실히 도심이 높고, 그것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큰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보는 것도 많아지고, 봐주는 사람도 많아지고요.
서울에 작업실을 꾸리고 집을 옮기게 되는 시점이 모두 박사과정 진행하고 맞물려서 진행되었어요.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점이었고, 서울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 다 시작되었어요.
앞서 재료와 도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던 부분에 대해 질문은 조금 이어가 보면 문래동, 용두동 일대에도 금속을 다루는 곳들이 있잖아요. 공장들도 많고요. 또 금속 세공이라면 종로 쪽도 있는데 왜 을지로 철공업 단지에 터를 잡게 되셨을까요?
문래동 같은 경우는 대량 생산하는 제품을 만들기에 더 용이한 곳이에요. 지금 을지로에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판집이라던지 공예가들이 선호하는 재료상이 더 많은 곳이에요. 소량으로 사려면 다른 지역에서는 눈치를 많이 보게 되죠.
거리에 ‘학생작품’이라는 간판이 많이 있는 것처럼 사장님들이 젊은 창작자들에게 더 익숙하신 것도 수량 판매에 작용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돈 안되지만 팔아 주시는 상황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 일 텐데 더 편한 마음으로 해주시는 것 같이 느껴져서요.
네, 맞아요. 막걸리 한 병 사들고 가면 엄청 좋아하시거든요. 가격도 싸지고, 친절해지시고. “끝나고 먹을게~”하면서 다 해주세요.(웃음)
막걸리 한 병, 박카스 한 병을 사갈 때 그 안에 담긴 작가님 마음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가족들도 퉁명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손님으로 온 젊은 친구가 마음도 써주고.
아무래도 동료들이 많이 생겼죠. 작업실을 차린다고 하면 이쪽을 추천해주기도 해요. 바로 앞 건물에 친구가 있어요. ‘퍼프 스튜디오’ 친구도 제가 작업실을 이쪽에 차린다고 하니 딱이라며 응원을 해주기도 했고요. 창문 열면 바로 보이는 위치라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문자나 카톡 말고 종이컵 전화기를 연결해 놓자고 하기도 했었어요.
바로 앞에 친구가 있다는 것이 존재만으로도 의지가 많이 되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 친구는 사교성이 있는 성격이라 모임도 많이 해서 초대받아서 가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알게 되고 했어요. 그렇게 주얼리 디자인하는 친구, 소품을 만드는 친구, 인테리어 하는 친구 다양하게 있어요. 참 다들 자기 일을 잘하고 있는 친구들이에요.
말씀해 주신 친구 분들이 모두 너무 궁금하네요. 차차 한분 한분 찾아뵈어야겠어요.
내일 이야기
5년 후. 진짜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작업은 계속하고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내가 45세, 50세가 되었을 때 몸을 굴려가면서 일을 하는 게 맞을까? 벌써부터 목이 아픈데 50살이 되면 큰일 났다. 팔도 안 움직이고 이러는 거 아닐까.’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작업을 할 것 같아요. 물론 방식은 바뀔 수 있을 것 같아요. 젊은 몸을 가졌을 때처럼 공예작업을 하긴 어려워질 수 있겠지만 제작자로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나가는 일을 계속할 것 같아요.
최근엔 상품화하고 브랜딩 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공부도 하고 있고요. 작년에 나갔던 리빙페어, 홈테크페어를 나갔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어요. 추후 주문도 계속 들어왔었어요.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힘은 브랜딩과 홍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작업을 계속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향후 5년은 작업을 계속하면서도 브랜딩을 위한 준비의 과정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올해 잡힌 구체적인 계획들도 있을까요?
얼마 전에도 소논문을 몇 편 냈어요. ‘공예 워크숍’과 ‘공예가들의 작업실’에 대한 연구들이었어요. 올해는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려고 해요. 그 연구 결과를 토대로 페어에도 참여하고 브랜딩을 강화해 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해요.
지금까지 보여주는 것들과 내가 상품화하고 브랜드를 만드는 것들의 차이가 생길 것으로 예상해요. 더 많은 피드백을 받게 되겠죠. 그 결과로 제가 어떤 방향으로 더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이 나오리라 생각하고 있어요.
일상에 가치를 더해주는 일반인 A
인터뷰를 마치려 하니 작가님께서 스스로를 '일반인 A'라고 칭한 부분이 다시금 기억에 남습니다. 그 이야기를 열어나가기까지, 나의 경로를 설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화려하고, 튀지 않는 사람이지만 누군가의 일상을 귀하게 여기고 삶을 나누고자 하시는 은은한 마음이 작품에 담겨 오래도록 퍼져나가리라 생각해 봅니다. 작가님이 고민하며 걸어간 길이 또 누군가에게 지표가 되어주겠지요.
올해 예정된 연구와 전시 응원하겠습니다. 그 결과가 또 다른 시작이 될 때를 기대하겠습니다. 작가님의 동네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꼭 불러주세요. 그때까지 저는 또 설레겠습니다. 곧 뵙겠습니다. 긴 시간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영훈의 작업실
오형훈의 작업실 이동
· instagram : @oh_parts
· thesis : 3D프린터를 이용한 세포 이미지의 주얼리 개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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