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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l 26. 2019

난 웃는 얼굴이 참 예쁘다

은퇴한 남편과 부부싸움

난 웃는 얼굴이 참 예쁘다.

난 웃는 얼굴이 참 예쁘다


영악한 나는 어느 날 그걸 알아버렸다. 그래서 난 항상 웃는 모습이다. 가끔은 제멋대로 화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저렇게 험악하게 보이는데 좀 미소를 띠면 안 될까? 저런 얼굴을 밖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그런 때도 있다. 어느 연주회를 갔는데 바이올리니스트가 제멋대로 표정을 짓고 연주했다. 끝날 때까지. 부드러운 미소 한 번 없이 말이다. 난 연주 감상보다도 저런 표정으로 무대 위에 있을 수 있음에 그 용기에 감탄하곤 했다. 그렇게 난 웃는 얼굴을 고수한다. 내가 그때 가장 예쁘다는 것을 아니까. 


그런데 예외가 있다. 나의 남편 앞에서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 앞에서는 아무렇게나 했다. 밖에서는 참 착한 여자지만 집에서는 심통도 부리고 그랬다. 그래도 난 착한 딸이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예외다. 남편에게는 맨날 구립쁘 만 모습만 보여주거나 화가 나면 감히 웃지 않는 험악한 표정의 나를 맘대로 드러낼 수 있다. 어릴 때처럼 엄마 아빠 앞에서 처럼 마구 씸통을 부리기도 한다. 어릴 때 난 녹번동에서 광화문 덕수 국교까지 만원 버스를 타고 다녔다. 참으로 먼 거리였다. 나란히 여섯 집이 있었던 조용한 주택가. 그곳에서 나와 한 참을 걸어 다시 버스를 타고 참으로 멀고도 먼 길. 그런데 내가 엄마 아빠에게 심통이 나면 나는 초인종을 눌러대는 것으로 나의 심통을 표현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기억 안 나나 그 먼 학교 빨리 가야 할 텐데 지금 보니 엄마 아빠 걱정이 대단했을 텐데 그런데 난 내려가다가는 올라와 집 대문 초인종을 사정없이 눌러댔다. 학교 안 갔냐? 빨리 안 가? 하면서 튀어나오는 엄마 아빠. 그때 후다다닥 내려가서는 어딘가 쏙 숨고. 그리고 잠잠해지면 다시 올라가 초인종을 사정없이 눌러대고. 얘가 정말. 지각한다고. 어서 가! 모 이러면서 뛰쳐나오는 엄마 아빠. 잽싸게 도망. 갔으려니 생각하실 때쯤 또 살금살금 올라가 찌리리링 심하게 초인종을 누르고 다시 뛰쳐나오시는 엄마 아빠. 또 도망. 하하 이러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다 계산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선. 어디까지는 그래도 되지만 더 하면 늦는다는 것은 다 계산하고 그렇게 누르고 누르고 또 누르고 심통을 부려댔던 것이다. 그렇게 난 남편에게 심통을 부린다. 남편에게도 어느 수위가 있다. 영악한 나는 그걸 안다. 어느 선까지는 내가 아무렇게나 해도 나의 남편은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 나의 앙탈을 다 받아준다. 그런데 그 수위가 있다. 나는 그걸 안다. 그 수위를 넘어서면 그가 화를 내는데 절대 화를 안 내는 사람의 어쩌다 한 번 화는 정말 무시무시하다. 그래서 난 알아서 그 수위를 넘지 않도록 조심한다. 




정말 멋진 여행길이었다. 남편의 골프 스케줄 때문에 우리는 먼저 출발했다. 경치가 너무 좋아 즉석에서 들 하루 더 있자~ 한 건데 우리는 골프 스케줄 때문에 함께 더 머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열렬한 배웅인사를 받으며 먼저 떠났는데 당연히 나는 네비를 '우리 집'으로 조작했다. 네비를 장착했으니 조수석에 앉은 나는 핸드폰에 코 박고 그동안 밀린 브런치며 카톡에 답도 하고 내 나름의 딴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전하는 그에게 기쁨조를 하지 않고 핸드폰 만지는 게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러고 있는 참에 자꾸 내뱉는 그의 말. 어째 좀 이상하다. 대구로 가는 것 같아. 이상하네 왜 이리로 안내하지? 나보고 자꾸 다시 해보라는데 나는 홀로 핸드폰 만지작 거리고 있던 것이 미안하기도 하니까 도리어 큰 소리 빵빵 친다. 우리 집으로 되어있다고. 우리 집!!! 이상한데 정말 우리 집 맞아? 그래 맞아. 네비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고! 람이 무언가 미안하면 더욱 크 소리를 내게 되어있다. 그렇게 의아해하면서 달리고 달렸는데 정말 이상한지 그가 결국 화를 낸다. 잘 좀 체크해보라고! 무언가 정말 잘못된 걸까? 덜컥 두려워진 나는 도리어 큰 소리 빵빵 친다. 우리 집으로 되어있다니까! 네비를 믿어! 우리 집이라 하지 말고 집 주소를 다시 찍어 설정해봐! 그가 화를 벌컥 낼 수위에 도착하는 듯싶으니 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흥! 우리 집으로 되어있다니까 내참! 툴툴대며 네비 메뉴를 뒤로 가기 해 집 주소를 쳐 넣는다. 흥. 똑같을 텐데 무얼! 중얼대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뿔싸. 그는 곁에서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고 있는데 요 거이 웬일이냐. 네비에 집 주소를 치니 헉 30분이면 도착한다는 것이 두 시간으로 늘어나네. 헉. 어째. 고쳤어? 응. 같아? 그래. 우리 집. 같아? 도착 시간이 같아? 아니, 조금 늘어났어. 거봐. 다른 거잖아. 진작부터 좀 체크하라니까. 매번 우리 집으로 하고 갔잖아. 오늘이라고 무어 다를까 했지. 아까 제대로 한 게 아니잖아. 어, 우리 집이 절로 잡히네. 했잖아. 그렇다. 네비를 등록된 '우리 집'으로 설정하려는데 다다닥 어떻게 되더니 목적지가 '우리 집'으로 장착되는 것이다. 그래서 등록된 그곳으로 가려니 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아, 얼마나 미안하겠는가. 미리 체크할 걸. 좀 더 관심 있게 운전하는 그에게 집중할 걸.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이런 사달이 났구나. 하는 미안한 마음이 정말 퐁퐁 솟았지만 그의 툴툴거림과 화는 나의 그런 미안한 마음을 싹 가시게 만든다. 




이미 밤은 어두워졌고 칠흑 같은 어둠이고 우리는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다시 되돌려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한참을 그것도 두 시간 정도를 더 가야 했으니 아, 얼마나 피곤한데 빨리 가서 쉬고 싶은데. 그 미안함 만큼 다시는 핸드폰을 손에 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무언가 미안해 라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 집이라고 등록된 곳으로 항상 갔잖아. 그냥 그렇게 고수하며 나도 화가 난 듯하고 있을 밖에. 화를 풀려해도 어떤 실마리가 있어야 풀 것 아니겠는가. 미안했던 만큼 그걸 모두 나는 화로 표출한다. 입을 일 미터나 쑥 내밀고 아무 응답도 말도 아니하는 심통난 상태. 휴게실에 쉬지도 않고 무섭게 달린다. 그 역시 무척 화가 났음을 표현하는 거겠지. 흥! 그래도 뭐! 사실 함께 운전에 동참하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 게 많이 미안하다. 그런데 그 미안함은 그의 화로 쏙 들어가 버린다.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냥 심통이다. 그렇게 좋은 여행 끝에 우리는 냉랭하게 단 한마디도 없이 달려 집에 겨우겨우 왔다. 아주 늦게 늦게. 예정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두 시간 내내 아무것도 못하고 꼼짝 않고 일 미터 입을 내민 채 심통만 부리고 있어야 하는 나는 그것도 정말 못마땅하다. 두 시간이면 글을 써도 몇 개를 쓰고 밀린 답을 얼마나 할 수 있는데. 흥!




그래도 대구까지 가기 전에 알아내서 다행이다. 왜 우리 집이 대구로 등록되었을까. 슬그머니 그가 화해의 손길을 뻗어오지만 두 시간 내내 못난 마음과 못된 마음. 화내는 마음, 미안한 마음 그 모든 것이 복합되어 냉전체제로 돌입한 나는 그렇게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분명 내가 미안한 거고 그렇지만 그가 화를 내면 참 싫다. 어쨌든 이유불문 화내는 말투, 나를 탓하는 말투는 정말 싫다. 그래서 난 심통을 부린다. 그 심통 부리는 내가 싫어 나의 심통은 더욱 길어진다. 그래서 멋진 밤의 데이트 시간이 다 날아가 버렸다. 이런 화는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실마리가 있어야 풀어지지 않겠는가. 사실 초반에 마음먹기 나름이다. 괜히 싫어. 아 싫어 이렇게 무장하고 나니 다른 맘이 들어 올 수가 없다. 그리고 웃으면서 이해되던 그 모든 상황이 싸악 변한다. 그렇게 나는 악마 같은 못된 여자로 변해가고 그리고 모든 일도 꼬이기 시작한다. 내 마음이 넉넉지 않으니 아주 사소한 것들에 짜증 나고 화나고 정말 사소한 것들 모두가 풀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웃지 않는 나의 얼굴은 모든 불행을 몰고 오는 것 같다. 그리고 보니 어떻게 아무 걱정 없이 살았을까? 그도 나도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다. 분리된 우리는 얼마나 초라한가. 이 삶을 견뎌낼 수나 있을까. 그러나 우리 둘이 힘을 합칠 때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그것은 웃는 모습일 때 가능하다. 아, 시작 부분에서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 그러나 그런 아쉬움으로 시간은 지나고 또 지난다.




별 것도 아니다. 그냥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종잇장 뒤집듯 마음을 휙 바꾸어버리면 끝이다. 찌그러진 상에서 웃는 상으로 밝게 활짝. 웃을 상황 아니지만 그냥 웃고 보는 것이다. 그래 웃어보자. 이런 엉망의 상황을 불행을 불러오는 상황을 오래 질질 끌고 갈 이유 절대 없다. 그냥 가만히 있는 남편. 가끔 화해의 손짓을 보내지만 흥!!! 찬바람 쌩쌩 일으키며 시작이 무언지도 모른 채 어리둥절해하는 남편에게 흥흥!!!! 찬바람 쌩쌩 씸통을 부려대던 나는 이제 그 끝을 고하련다. 이거 정말 아니다. 이런 마음 상태 정말 안 좋다. 온갖 불행은 다 안고 있는 여자 같다. 그냥 마음이 그렇게 몰아간다. 딱! 끊어야 되겠다. 그런 냉전 상태에서 파리에 있는 아들에게서 보이스톡이 왔다. 그 애는 출근길에 그렇게 종종 보이스톡을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안부를 묻고 그 잠깐의 대화를 우리는 너무나 좋아한다. 그런데 악마 같은 마음에서는 그 즐거운 대화조차 할 수가 없다. 엄마는? 엄마는? 삼자 대화에서 내가 빠져있으니 아들은 자꾸 나를 찾는다. 화해의 시도로 남편은 그래 엄마랑 같이 하자. 하면서 핸드폰을 내 곁으로 가져오지만 나는 함께 동참할 수가 없다. 이런 엉망진창의 마음에서 금방 밝은 얼굴로 하하 거릴 수는 없는 것이다. 눈치 빠른 아들은 확 알아챈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이미 회사에 출근해서 내게 따로 전화하는 아들. 괜찮아 엄마? 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더니 엄마 본래 고통 속에 모든 예술이 탄생하잖아요. 엄마의 그 복잡한 마음을 글로 써보세요. 글로 쓸 때는 그래도 살아있을 때다. 지금은 너무 엉망진창이라 글도 안된다. 컴퓨터 앞에 갈 수 조차 없다. 





그렇게 뒤죽박죽인 채로 침대에서 뒹굴다 푹 잠을 자고 일어났다. 심통 속에 푹 뒹굴뒹굴 잠이 나 실컷 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니 모든 게 다르다. 무엇에 화를 낸 건지도 모르겠고, 무엇 때문에 냉전이었는지도 모르겠고. 늦잠 자는 남편은 아주 늦게 일어나리라. 그때는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냥 항상 웃는 나로 돌아가야겠다. 역시 웃는 얼굴이 좋다. 웃는 얼굴은 절로 복을 끌어들이는 것 같다. 모든 게 희망차고 힘이 팍팍 나고 더욱 웃게 만드는데 한번 찌그러진 우거지상은 모든 일을 그렇게 엉망진창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모든 일이 불가능으로만 보인다. 그럴 필요 없다. 확! 바꾸는 거다. 그래 웃자. 하하하하 웃자! 웃으면 복이 온다. 별 것도 아닌 것을 정말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이렇게 나도 남편도 피해자로 만들다니. 우울함이여~ 지질함이여~ 우거지상이여~ 모두 모두 안녕. 어제까진 난 몰라요 오늘 하루는 나 답게 음하하하 웃음으로 휙휙 많은 일들을 처리하며 신나게 지내리라. 운명아 비켜라! 내가 나간다. 하하 이런 말 있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너무 좋아해 학창 시절 나의 좌우명으로 까지 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진짜 참 멋지다. 하하 오랜만에 외쳐본다. 음하하하 크게 웃으며 말이다. 운명아 비켜라! 내가 나간다. 하하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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