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똑띠 Apr 14. 2023

수학 선생님이고 계산기는 못 씁니다

조금 긴 이야기

계산기를 쓸 일이 아주 없었다 말한다면 분명 거짓일 테다. 매달 은행에서 잊지 않고 보내주는 이자변동 문자 덕분에 매번 생활비를 새로 계산하느라 사용하고 있으니까. 얼마 전엔 결혼식 축의금을 정리하면서도 계산기를 여러 번 두들겼다.


그뿐이랴. 아이들 성적과 출석 관리 때문에 사용하게 된 엑셀. 그 속의 수많은 행과 열도 결국 계산기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4년이나 다닌 사범대학교에는 엑셀은 한 번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먹고 살려보니 엑셀은 이제 그냥저냥 다루게 되었다.


-


한번은 6살 조카와 놀다 기진맥진하셨다는, 그래서 나이 듦을 몸소 느꼈다는 어느 여성분의 글을 읽었다. 나와 동갑이셨던 그분. 반은 그분에 대한 위로로, 반은 나를 위한 위로로 몇 마디 말을 남기고 싶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세 유아의 평균키는 약 120cm이고 성인 이삼십 대 여성의 평균키는 약 160cm이다. 길이비의 세제곱이 부피비가 되고, 그것이 곧 무게의 비가 된다. 그러니 필경 길이비( = 160/120 = 1.33)의 세제곱인 2.35배 더 많은 칼로리 소모를 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성인은 긴 팔다리를 움직이기 위해 동일한 동작에도 더 큰 가속도가 필요하니 ‘F=ma’를 따라 추가적인 칼로리가 소모된다.


그런 고로 노화보다는 물리학이 문제인 것이니 크게 괘념치 마시라 전하였다. 이때 1.33의 세제곱 값을 구하며 계산기를 사용했었다.


은행 이자 계산, 축의금 정리, 엑셀 자료 정리, 나이 듦에 대한 항변. 이것들은 모두 수학이던가?


-


내가 다녔던 대학교의 수학교육과는 4층 건물 '자연과학관'의 가장 위층에 있었다. 언젠가 수학과 교수님께서 강의 중 말씀하시기를


"

수학이랑 과학은 다른 건데,

왜 수학과가 자연과학관을 써야 하는 걸까?

수학과가 사용할 곳을 따로 만들어주면 좋으련만.

"


하셨다.


당시 공부가 부족하였던 나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수학과 과학의 엄연한 분리가 '큰 일'은 아니라 생각했었다. 과학은 21세기를 대표하는 종교가 되어가고, 수학이 과학의 언어가 된 것은 사실이니 그 '신당'의 꼭대기에 수학과가 있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나. 그리 생각했었다.


그런데 대학을 나와 강사가 되고, 선생님이 되며 종종 듣는 얘기가 있으니 "AI가 다 알아서 풀어줄 건데 왜 우리가 풀어야 하나?", "계산기를 쓰면 안 되나?" 등의 이야기다.


우리나라 수학 교육의 문제점을 들출 때면 언제나 들려오는, 흡사 메아리 같다. ’더 중요‘한 '문제 해결력',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 계산'과 같은 '사소'한 부분은 조금 내려놓자는 메아리.


주판이 역사에 등장하며 처음 제기되었을 문제에 21세기의 대한민국 수학 교육이 아직까지도 적절한 대답을 내어 놓지 못하고 있다니. 정작 수학 선생님들의 ‘문제 해결력'은 어쩌면 그리 강력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


본론으로 들어가 "수학 시간에 계산기를 쓰면 안 되나?"와 같은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답변은 이렇다.


"계산기는 다른 수업 시간에 쓰시면 됩니다."


아이들에게 '수학'이 무어냐 물으면 대부분은 '수(숫자)에 대한 학문'이라거나 '수를 연구하는 학문' 정도의 대답을 하기 마련이다. 공교육을 12년 정도 받은 고등학교 3학년쯤 되어서야 '글쎄요...' 같은 양심적인 답변이 나온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된 우리들도 대부분 비슷한 처지 아닐까? 수학 선생님이라는 나부터 우선 그랬었으니까.


'수에 대한 학문'이라는 대답이 마냥 틀린 것은 아니지만, 또 마냥 맞다고 할 수도 없다. 정확하게는, 내가 생각키로는, 수학은 수에 ‘대한' 것이 아니다.


'~에 대한'이란 말은 암암리에 이미 숫자로 나타내어진 ‘어떤 것'이 있음을 함의한다. 그렇지 않은가? '숫자'가 이미 있지 않다면, 어찌 숫자에 '대한'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수학을 수에 '대한' 학문 정도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 눈앞에 그 어떤 '수식'을 던져놓아도 그건 수학이 되고 만다. 수식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경제학에서 왔든, 물리학에서, 또는 생활비를 모아 적은 가계부든. 숫자가 적혀있고, 숫자에 '대한'것이 수학이니 맥락을 따지지 않고 '수식 = 수학'이라는 방정식이 성립될 조건이 만들어진다.


x, y, a, b 등의 문자가 포함된 식이라 하여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변수'라는, 문자로 나타낸 또 다른 숫자일 뿐이니까.


이러한 생각의 흐름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수학은 과학의 언어인데, 그 언어를 사용해 숱한 학자들이 연구결과를 내었다면, 그리고 그것을 수학에서 사용하는 기호로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수학의 영역으로 편입되어야하는가? 이는 문학이 언어를 사용하니 문학은 언어학이라 말하는 꼴과 같다.


소설을 배우려면 언어학자를 찾아야 하고, 요리를 배우려면 생물학자에게 가야 할 판이다. 어쩌면 요리를 화학자에게 배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요즘엔 '분자요리'가

뜨는 추세인 것 같으니까.



-


수학이 '수에 대한 학문'이 아니면, 그럼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주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나의 소견을 밝히면 이렇다.


“수학은 '수로 나타내는 학문'이다.”


숫자는 그저 기호일 뿐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누적된 '하나'라는 개념. 엄마도 하나, 아빠도 하나, 컵도 하나, 숟가락도 하나, 스마트폰도 하나. '둘'을 셀 수 없이 딱 '하나~'를 외치며 끝나는 수많은 대상들. 그 모든 기억과 경험을 '1'이라 적은 것에 불과하다.


인류 역사에 있던 숱한 '엄마'를 내가 다 알아서 '엄마'라는 단어를 아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가 무엇인지는 안다. '1'도 그런 것이다. 그렇게 '2'를 배우고 '3'을 배우다 여기까지 온 것이다. 수학까지.


그런데 우리 중생 모두는 법력이 부족하여, 색즉시공 공즉시색임을 알지 못하고 '1'을 '1'로만 알고, 숫자가 수학 그 자체인 것으로 알고 살아가니 어찌 답답한 노릇 아니겠나.


나무를 그러모아 배를 만들었다 해서 ‘배’가 ‘나무’가 아니듯, 숫자를 그러모아 만든 것이 곧장 수학은 아니다. 숫자는 강을 건너게 도와줄 배요 방편이다.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


우리는 수학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엑셀 작업을 도맡고, 국어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협의록 작성을 담당하고, 음악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축제를 지휘한다.


마치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차출되어 연병장에 축구 라인을 그리는 병사 같달까. 안 배운 사람 보다야 더 곧은 선을 그릴 수는 있겠으나,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갖게 된다.


수학도 그러하다. 숫자로 표현됐다는 이유만으로, +과 x가 문장에 있다 하여 모두 수학이라 불린다. 숫자의 덧셈과 곱셈- 즉, 계산이 수학에 없어선 안 될 부분이기는 하지만 계산이 수학의 '정신'은 아니다. 수학의 정신은 무언가를 수로 ‘나타내는 과정’에 있다.


수로 나타내는 과정이 수학이기에, 과정의 결과물을 읽을 필요도 생긴다. 혼자 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읽는 것. 그 읽음의 과정 전체를 사람들은 '계산'이라 이름 붙인다.


계산은 글을 쓰고 읽음에 필요한 맞춤법과 같은 것이다. 문장의 길고 짧음이 맞춤법에 달려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문항의 풀이가 모두 '계산'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글 쓰는 이가 맞춤법을 잘 알아야 하듯, 수학을 하기 위해서는 계산이 필수불가결하다.


너무 철학적인 포장 아니냐고?

아니다. 사실이 그냥 그러한 것이다.



-


계산을 마치지 않으면 우리는 데이터가 어떤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계산을 거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빅데이터'가 대체 무슨 소용이겠는가? 계산하지 않는 통계가 무슨 의미며, 계산되지 않는 지갑사정은 어디에 쓸모 있겠는가?


다만, 계산을 다룸에 있어서 소수점까지 계산을 요하는 문제 상황이 아니라면, 적어도 '수학' 시간에서 만큼은 직접 계산을 마쳐야 한다 생각한다.


'수'가 무언가를 기호로 표현하기 위함이라면, 그래서 누군가 표현해 놓은 수식을 '읽을'줄도 알아야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그 기호를 다룰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계산의 번다함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계산‘을 하지 않고선 수식을 읽어갈 방도가 없다. 부릅 노려보기만 하여 해결되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던가. 말을 할 수 있는 아이가 글을 읽고 쓰기 위해서 가나다를 먼저 띠어야 하는 것과 뭐가 다를 것 없다.


AI에게 무엇이든 대신 소리 내어 읽어달라 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진 모르겠으나, 우선 나는 아이에게 직접 읽으라 권하고 싶다.


공부할 때 고달픈 것을 꺼려서는 안 된다.

맞춤법 검사기를 쓰는 건 나중 일이다.



-


다른 분야에서 '수'는 '수치'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수학에서만큼은 '수'는 '무언가'다.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무언가를 수라는 기호로 작문하고, 기호 간의 관계를 읽어가는 것이 수학이다.


어쩌면 수학은 수식을 마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거슬러 오르기 위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플라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데아를 알기 위해서는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그의 말을 이해한다.


동의... 까지는 아니지만.



-


하두 '수학시간 계산기' 얘기를 듣다 보니 수학 아닌 곳에서는 다들 계산기를 쓰는가 싶어, 실제 전공 과학 분야를 공부해보기도 했다.


한동안 취미 삼아 우리나라의 'KCOW'나 유튜브에 등록된 MIT, YALE 대학교의 물리학 강의들을 따라 공부해 보았다. 참, 요즘 세상에 좋아져서 석학들의 강의를 방에서 공짜로 볼 수 있다니. 학이시습하기 좋은 시절이다.


결과는? 실제 대학교 물리학 시간에는 오히려 계산기를 드는 일이 드물었다. 여러 과정을 따라 물리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MIT의 '월터 르윈(Walter Lewin)' 교수님의 'MIT Physics' 시리즈가 아주 재밌었다. 그 노교수께서도 손수 계산을 하시어 물리학의 여러 법칙을 강의하시더라.


칠판을 보자. 물리학 수업인지, 수학 수업인지 알기 어렵다. 숱한 계산 중에도 분필을 사용할 뿐이다. 교탁에도 계산기는 없다. 계산기는 아주 가끔 등장한다. 출처 : 8.01x - MIT Physics 1 : Classical Mechanics. (Youtube. Walter Lewin).


-


어쩌면 기본이 되는 학문에서는 계산이 어떤 '과정'이고, 공학과 같은 응용 분야에서는 계산을 어떤 '부산물'이라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계산이 누군가에게는 부산물일 수 있다. 그러나 계산기를 쓰고 싶다 하여 무작정 숫자를 눌러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계산 결과를 얻기 위해선 데이터들을 적절하게 덧셈과 곱셈으로 조립해야 한다.


각 데이터들의 선후 관계를 알고, 계산식으로 엮는 것이 먼저다. 데이터들의 암묵적인 관계를 읽어내는, 소위 ‘데이터 문해력’은 수학 공부를 통해 길러진다. 일급 공학자들도 철저한 수학 수련을 거치는 이유다.


계산기를 잘 쓰려면

우선 계산을 잘해야 하고,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

알아야 한다.



-


'수학시간 계산기' 문제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해보려 한다. 되도록 입시나 수능 이야기를 피하며 썼더니 말이 뭉뚱그려진 느낌이다. 나의 공부가 부족한 탓이다.


읽는 독자들을 멈칫하게 할, 그런 독자들을 생각하면 글을 쓰는 나도 멈칫하게 되는 그 '수식'을 쓰지 않으려 노력하였으나 허전함이 남는다. 수식의 허전함은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숱한 '수학 문제집'과의 추억으로 메워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요즘 동기부여 영상의 주인공들은 왜 '부자'가 많은지 모르겠으나, 어느 '자수성가' 사업가는 한 영상에서 이렇게 말하더라.


"대부분의 기술들(Skills)을 배우기에는 20시간이면 충분하다."


이 말을 듣고 곰곰이 따져보니, 내가 본격적으로 수학 공부를 시작한 것이 18살이더라. 그 이전으로는 경호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공부의 대부분을 운동에 바쳤다. 국영수 공부는 꼴찌를 면할 정도만 따라갔다.


그 후로, 18살 이후로, 나는 아직도 수학을 연습한다. 그 ‘자수성가’ 부자 말에 따르면 나는 숱한 계산 속에서 인생을 허비했거나, 수학은 기술이 아닌 무언가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세상만사 다 그렇겠지만, 필요한 것만 골라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학에서 ’ 계산‘만을 쏙 뽑아버릴 수는 없다. 계산이 모두 사라진, 또는 무언가에게 일임해 버린 수학이란 발상은 그 생각만으로 무척이나 향긋하다. 그러나 향기로운 레몬나무 열매는 달지 않다.


전부 취하거나 모두 버리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과후 수업 - 감성의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