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땡기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내가 부리는 알량한 허세는 바로 맵부심이다. 엄청 매운맛이 나는 소스는 나의 밥친구였고 무엇이든 찍어 먹었다. 학원 선생님들과 함께 떡볶이를 시킬 때면 꼭 두 그릇을 시킨다. 원장 선생님과 나는 스트레스가 쫙 풀리는 매운맛의 떡볶이를, 고양이 혀를 가진 선생님들은 초보맛을 시킨다. 떡볶이가 오면 비닐장갑을 끼고 김가루가 묻은 밥을 둥글게 뭉쳐 주먹밥을 만든다. 복숭아 주스는 초보맛을 드시는 선생님들께 선심 쓰듯이 양보하며 맵부심을 한번 날려준다. 탱글탱글한 비엔나소시지와 주먹밥을 한 입 먹는다. 빨간 국물에 주먹밥을 적셔서 어묵과 떡을 한 번에 올려먹는 것도 맛있다. 빨간 양념을 잔뜩 머금은 당면은 무지 매워서 먹고 나면 입술이 퉁퉁 불어 터진다. 내일의 여파는 잊고 정신없이 먹다 보면 다들 멍하니 말도 안 하고 씁-하 씁-하 소리만 남길뿐이다. 달달한 복숭아맛 주스를 마시며 입 안을 진정시킨다.
그러고 나면 떡볶이보다 더 매운 수다가 시작된다. 다들 입담이 좋아서 떡볶이도 깨갱하고 도망갈 만큼 화끈하고 재밌다. 연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난 연애를 책으로 배운 연찔이면서도 말은 가장 많이 한다. 30년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하신 분들과 7년 장기 연애를 한 선생님들 앞에서 주름잡았다. 어느 날 쉴 새 없이 떠들다가 백종원 씨 앞에서 요리에 대해 일장 연설하는 기분이 들었다. 부끄러웠다. 그 뒤로 귀는 쫑긋 눈은 반짝하며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연애는 매운 떡볶이처럼 불같이 해야 제 맛이라고 믿고 살았다. 잔잔한 연애는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꼈다. 나의 연애는 짧고 굵게 단타로 치고 빠졌다. 탈도 많고 후유증도 센 연애가 나에게 맞는걸까 생각했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연애관도 달라졌다. 연애를 안 해도 상관은 없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건강한 연애를 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매운 떡볶이를 매일 먹고살 수는 없다. 위장이 뒤틀리고 엉덩이에 불이 나니깐. 정말 정말 매운 게 땡길 때 마음먹고 한번 먹는 게 다인데 연애는 왜 그렇게 쉽게 마음을 먹었을까.
그래서 한동안은 매운맛 없이 슴슴하게 살았다. 인생이 재미없고 지루해서 그렇게 자극적인 맛이 땡겼나 싶어 좋아하는 일을 찾는데 집중했다. 그런 시간을 보낸 후에나 생각보다 매운맛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았다. 위장이 약해서 유산균과 양배추환은 떨어질 날이 없다. 사람들과 만나고 노는 걸 좋아하지만 대부분 집에서 조용히 공부하고 글 쓰는 것을 즐긴다. 아무런 자극이 없는 삼삼한 하루를 보내는 게 뿌듯하고 재밌다. 그러다 가끔은 특별하게 친구들을 만나고 소개팅도 했다. 가끔 매운맛을 맛보는 것은 재밌다. 그렇지만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 같은 일상을 살고 싶다. 꼭 이성이 아니어도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몸과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좋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동글동글 귀여운 주먹밥처럼 편안하고, 복숭아맛 주스처럼 달달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러다 보면 인생의 매운맛 앞에서도 쫄지 않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