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촛불>이란 글을 쓰면서 언제부터 그렇게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한때는 나도 쌀쌀맞고 차가운 사람이었다. 그 관계를 끝내고 나니 후회가 컸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먼저 상처를 줬고 차갑고 도도한 내 모습이 쿨하다고 착각했다. 그게 나와 맞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쯤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이라는 시를 읽게 되었다.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이 시를 읽고 ‘그래, 나도 연탄처럼 후회 없이 온몸으로 사랑해 보자’라고 다짐했다. 온몸을 뜨겁게 태우는 연탄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만큼은 촛불처럼 밝혀보자며 관계를 맺어 왔다.
촛농이 뚝뚝 흐르는 것도 슬픈데 아직까지도 연탄처럼 재가 되는 건 두렵다.
그렇다면 뜨거움과 차가움의 사이인 따듯하게 대하면 되지 않을까?
나름 경험해 보고 머리를 굴러서 나온 생각이지만
이번에는 이것 또한 정답이 아니었다. 감을 잡을만하면 멀어지는 게 감질난다. 누가 오답노트광인 아니랄까 봐 관계에는 정답이 없는데 또 정답을 찾으려 했다. ‘어쩌면 나는 따듯하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뜨거워서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아니면 따듯함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관계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하면서 상대의 적당한 온도를 알아가고 나의 적당한 온도를 아는 과정 같다.
날 춥게 하거나 뜨거워서 견디기 힘든 이와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될거고 나와 온도가 비슷한 이와는 함께 하게 될 거다. 그러면서 나의 온도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올 테니 잘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너무 맞추려 하지 말자. 맞추는 것도 능사가 아님을 배웠다.
살다 보면 연탄재를 함부로 차는 이를 만날 수 있다. 연탄의 소중함을 모르는 이에게 연탄이 되어주지 않으면 된다. 원하지 않은 걸 주고 서운해하지 말아야겠다.
상황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 그땐 좋았지만 지금은 아닐 수 있고 그땐 별로였지만 지금은 좋아진 사이도 있기에 마음을 넉넉하게 먹자.
날은 따듯하게 풀리고 있지만 내 마음은 아직 조금 쌀쌀하다. 이럴 때는 나를 사랑하는 이들과 온기를 나누며 나의 적정온도를 맞춰가면 된다. 그런 이들이 없대도 괜찮다. 따듯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 글을 쓰며 마음을 녹이자.
사랑의 온도를 높이는 법은 어렵지 않다.
그렇게 스스로 알아주고 안아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