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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Nov 24. 2022

삶의 청사진

The blueprint of Life

"인생에 해답지가 있을까요?"


아침부터 유난히 귀찮은 일이 많이 몰려 들어와 투덜거리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J에게 대뜸 들려온 심각한 질문이었다.


"갑자기요?"


J는 그의 말을 듣고는 하라는 일은 안 하고 그런 한가로운 소리나 하고 있다니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되었나 싶었다. 하지만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무심코 툭 내뱉어버릴 뻔한 말을 집어삼켰다. 심심해서 괜히 실없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인가 생각했던 J가 모니터에서 고개를 돌리자 그는 사뭇 진지한 태도였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다는 듯이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요즘 왜 사는지 생각하고 있나 보네요?"


존재와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이제까지의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은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무방비한 상태에서 맞이한 심오하고 철학적인 질문에 J는 잠시 당황하는 듯했지만, 곧 그에게 대답했다.


"답은 없죠. 사람이 태어난 것에는 목적이 없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예상보다 시시한 답변에 무언가 충분한 대답이 되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보며 J는 말을 마저 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있지 않아요? 사람마다 무언가 저절로 찾게 되는 것이 있잖아요. 내가 꼭 이걸 하기 위해서 디자인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요."

"맞아요. 설계된 것 같아."

"저도 얼마 전에 이런저런 생각 하면서 복잡했었는데 '에라 모르겠다 떠나자' 고 생각하니까 순식간에 가벼워졌어요."

"뭔데요, 저도 같이 가요."

"글쎄요. 그러기엔 언제 출국할지, 어디로 갈지는 사실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편해졌어요. 저는 아마도 이렇게 설계된 사람인가 봐요.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지금은 그냥 책상 앞에 앉아서 일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기어이 원하는 미래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겠죠. 저는 이렇게 살아왔으니깐요. 앞으로도 그럴 생각에 벌써 신이 나네요."


J는 로열 커피인지 무슨 커피인지 모르겠는, 술이 들어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이제는 본인이 더 진지해져서는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사무실에서 J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똑같이 보통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보였지만 '커피는 마땅히 이래야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남몰래 위스키와 같은 독한 술을 섞어 마셨다. 그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완전 범죄를 저지르고는 혼자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그 사실은 그만이 알고 있는 J의 은밀한 비밀이었다. 글쎄, '자신이 떠나도록 설계된 것 같다'는 J의 말을 듣고 보니 아침마다 독주를 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꼭 옛날 대항해시대에 독한 술을 마시며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기나긴 항해를 견뎌냈던 뱃사람들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J는 그렇게 자신만의 항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J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비밀스럽게 어루어 만졌다.


"음... 그러니까 삶에 해답지는 없지만 각자 무엇으로 설계되어있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이지 않을까요?"

"본인의 설계도를 찾으면 되는 거군요..."

"그럼요. 정해진 해답은 없지만 저마다의 과제는 있는 것 같네요."

"그럼 그 설계도는 어떻게 찾죠?"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마요. 당신의 마음이 알려줄 테니까. 자연스럽게 저절로 알게 될 거예요. 본인 설계도의 일부를 발견하게 되면 이유는 몰라도 강하게 이끌리고 설렐 테니까요. 어둠 속에 한줄기 등불이 비추듯이... 그 답은 이미 본인이 가지고 있어요. 아직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뿐이죠. 가장 확실한 나침반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그래요?"


J는 어쩐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찾던 해답인지, 인류가 말하고 생각할 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여태까지 찾아 헤매던 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J는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때문인지 복잡해하는 그와는 달리 아무렇지도 않고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면 아침부터 들이켠 술이 들어간 커피의 힘이던가...  술은 잘하지 못하지만, 그는 왠지 이번만큼은 J의 신비한 커피의 힘을 빌려보고 싶어졌다.


"지금은 답답하더라도 시간이 해결해줄 거예요. 어차피 태어난 것에 특별한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는데,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바탕 놀다가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이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인쇄 방식이지만 여전히 우리가 미래를 이야기할 때 어떤 청사진을 그린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깨끗한 종이 위에 각자의 삶을 설계해나가고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거라고 믿어요."


꼭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청산유수처럼 말하던 J는 갑자기 무언가 놓친 듯한 눈빛으로 모니터에 하단 작업 창에 표시되어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회사원에게 허락된 약간의 점심시간이 분주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있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


J는 유쾌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멀뚱하게 서 있던 그를 이끌었다. 미래가 무엇인지,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어 사람은 불안에 떨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운명 앞에 나약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은 하루하루 시간을 쌓아 현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불투명해 보이고 모호한 미래 역시, 현재가 쌓여 서서히 그려진다. 우리는 미래를 반쯤은 알고 있는 셈이다.아니, 모두 알고 있다.




Now, Find yourself and design your universe.


Design Your Universe (A New Age Dawns - Part VI)


Ipsum te reperies
Potire mundorum
Potire omnis mu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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