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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왕 Jan 30. 2023

우리말 영상을, 자막을 켜고 보는 사람들

[12화] 生Z세대 2000년대생의 디지털 사고방식 1편

최근 평소와 같이,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다가 불현듯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 지금 한국 영화를 보는데, 왜 자막을 켜고 보고 있지?
한국 영화를 보면서, 한글 자막을 키고 보는 사람들 (*출처: ≪헤어질 결심≫넷플릭스 Preview 中)

이제 넷플릭스와 같은 OTT(Over The Top) 서비스를 이용한 지도 어언 7년이 넘어가는 입장에서,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전 분명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당연히(!) 한글 자막을 켜지 않은 채 콘텐츠 감상을 했습니다. 40년 넘게 한국을 살면서 평생을 써온 한국어를 굳이 자막의 도움을 받아서 이해할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어느 시점부터, 저는 한국 영화를 볼 때조차 [한글 자막]을 ON 상태로 기본적으로 맞춰놓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일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지난달에는 와이프와 저녁에 넷플릭스에 있는 국내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의식적으로) 자막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시청을 해보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죠.


문제는 이러한 영상 시청 습관의 변화가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일본 이나다 도요시의 저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원제 : 映畵を早送りで觀る人たち)는 빨리 감기 형태로 OTT속 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는 일본의 Z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봐야 할 작품이 너무나도 많고, 그에 반해 이를 시청할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영상 자체를 1.5배 속으로 보고, 대화가 없고 움직임이 부족한 장면을 10초를 건너뛰는 시청 습관이 일본의 Z세대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가 이 저자가 관찰한 핵심입니다.


저도 현재 2000년대생을 포함한 전 세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 시청 양식을 설문 조사할 예정이지만,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기 전에 세울 수 있는 기초 가설은 “생Z세대(Real Z Generation)에 해당하는 2000년대생에 가까울수록, 1.5배와 같은 고배속 영상 시청과 빨리 감기에 익숙할 것이다” 일 것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1.25배나 1.5배 기능을 활용하는 사람들에겐 “자국어 자막 ON”이 기본 모드가 되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참고로 저는 (연구 목적 외에) 유튜브를 그리 자주 시청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넷플릭스의 경우도 주로 (그리 스마트하지 않은) TV로 시청하기 때문에, 고배속 기능을 자주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TV앱에 1.5배속 기능이 없기 때문임) 하지만, 그런 저 같은 사람마저도 [자국어 자막] 없이는 자국 영상을 보기 힘들어진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자막을 꼭 집어서 이야기하자면, 저 같은 세대는 예전에 오히려 <자막을 더 불편해하는> 시대에 살기도 했습니다.


[세로 자막]을 기억하시는 분 있으시죠? 20세기만 하더라도, 영화관에서 외화가 상영될 때면 지금처럼 하단에 가로로 자막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측에 세로로 자막이 나오곤 했습니다. 당시 우측 끝에 나오는 자막은 영화 시청에 대한 집중을 흐트러뜨리는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 자막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국내 영화만을 고집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1996년에 방송 보도를 보면, 저 같은 70-80년대생 청년들을, 예전에 신문 등에서 세로 형태로 쓰인 한자를 읽었던 기존의 [한자 세대]를 대비하여 [한글세대]라고 지칭하고 있네요. 당시 가로 읽기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세로 자막은 쥐약이다 뭐 이런 말이었겠죠.


꼭 [세로 자막]이 아니더라도, 20세기 후반까지 기존 세대에게는 [자막] 그 자체가 익숙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1990년도 중후반까지는 TV에서도 자막 삽입은 익숙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내 TV프로그램이 본격적인 자막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95년 MBC 김영희 PD가 제작한 <TV 파크>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영희 PD가 밝힌 바에 따르면, 자막을 프로그램에 넣은 다음에 전국에서 “우리가 청각 장애인이냐?“와 같은 항의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 mbc <무한도전>이나 sbs <X맨을 찾아라> 같은 프로그램에 자막을 맛깔나게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자막이 영상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죠.

하지만 지금 2020년대에 들어와서, 자막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영상 콘텐츠의 맛을 살리는 수준이 아니라,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변모했습니다.


2022년 7월에 개봉한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의 경우는 극장용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한국어 대사에 자막을 입혀 화제가 되기도 했죠. 영화 초중반에는 와키자카(변요한 분)를 비롯한 왜군의 일본어 대사에만 자막이 적용되지만, 후반부 전투장면에서는 이순신(박해일)을 비롯한 조선 수군의 대사에도 자막이 등장한 것이죠. 한산을 만든 김한민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전쟁의 밀도감을 높이기 위한 결단이었다"라고 말하며, 전투 장면의 효과음과 배경음악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대사도 잘 전달하기 위한 방책으로 자막을 삽입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산>의 김한민 감독의 말, 즉 “결단이었다 “라는 말을 한 번 곱씹어 생각해 보면,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영상에 한글 자막을 입히는 일“을 검토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통상적으로 자막이 삽입되면 영상에 대한 몰입감이 일부분 깨지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앞으로 <국내 영화>에서 한글 자막이 들어가는 일이 더 많아질까요? 아니면 부득이 한 상황에서만 진행이 될까요?


저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어 대사를 음성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말이 청각 장애를 겪는 분이 늘어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디지털적 소통과 사고방식”이 익숙한 세대가 주류가 되는 시점에는 이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돼버리고야 말 것입니다.


영상 콘텐츠 안의 음성 대사, 즉 소리는 연속적인 신호를 의미하는 아날로그(analogue/analog)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아날로그 신호는 외부 노이즈 등으로 인하여 전송에서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즉, 애초에 알아먹기 힘들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디지털(digital)은 아날로그와 같은 연속적 신호가 아닌, 특정한 최소 단위를 갖는 이산적(離散的) 수치를 이용해 처리하는 방법 혹은 그 표현 방식을 말하는 것으로, 이 디지털의 세상에서 그러한 딱딱 떨어지는 소통과 사고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러한 아날로그적 소통의 한계를 드러내거나, 그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보통 주류 언론에서는 [한국 영상 콘텐츠에 한글 자막]을 입히는 일들을 “시청각장애자를 위한 배리어프리 콘텐츠의 일환으로 시작된 일이 비장애자에도 호응을 얻었다 “라는 정도로 언급이 되지만, 실상은 지금의 시대의 디지털 세대 사람들은 점차 “자막 없이 영화를 볼 수 없게 되었다”가 된 것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린 사례는 그저 하나의 시청 트렌드의 변화 일수도 있지만, 그보다 세대와 시대의 소통 방식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디지털적 사고‘와 ’아날로그적 사고‘를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서, 최근에 이슈가 되었었던 젊은 세대의 “콜 포비아” 현상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생각을 전달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제 브런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참고 자료]

1.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원제 : 映畵を早送りで觀る人たち) (이나다 도요시의 저/ 황미숙 역) (2022/ 현대지성)

2. 영화관, 세로읽기 한글 자막 사용해 관객 불편 강요 (mbc news) (1996.09.01)

3.  “이젠 한국 드라마도 한글 자막 없인 못보겠어” 새 표준 됐다“ (한겨레) (2022.09.26)

4. “한국말인데 하나도 안 들려, 자막 없어?” 60대 아버지 ‘넷플릭스’만 보는 이유“ (해럴드경제) (2022.09.17)

5. '한글 자막' 늘리는 OTT...제작 어디까지 왔나? (블로터) (2022.07.24)

6. '한산'에도 한국어 자막…"현장감·대사전달력 모두 잡았다" (연합뉴스)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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