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중 고등학생 때 백일장에 나가면 장려상이라도 꼭 받았고, 경쟁률이 높았던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실기에서도 한 번에 합격했고, 졸업반 땐 동기들이 받고 싶어 했던 대학 문예지에서 상도 받았다. '나 좀 잘 쓰나 봐. 곧 등단할 수 있겠는데?' 생각했다.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예지나 신춘문예 공모에서 십 년간 꾸준히 낙선하면서 차츰 나의 재능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이구나 깨달을 때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육아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쓰는 삶과 멀어졌다. 불쑥불쑥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보다 우선으로 해야 할 일들이 언제나 많았다.
읽는 일은 쓰지 못하는 나에 대한 위로였다. 소설을 쓰지 못하는 대신 소설을 읽었고, 좋은 독자로 읽으면서 사는 삶도 나쁘지 않겠다고 위안을 삼았다. 위안이었지 만족은 아니었다. 늘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목요일 그녀로 독서모임을 하면서 내가 추천하는 책을 읽고 좋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책을 추천해달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독서모임에서 듣는 말 중, 들을 때마다 좋은 건 “목요일 그녀님이 추천해 주신 책은 다 좋아요.”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해요”라는 말이다. 책을 쓰지는 못했지만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좋았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글은 늘 지지부진이었지만 누군가가 쓴 글을 읽고 어색한 표현이나 더 좋은 방향을 제시해주는 일들이 재미있었다. 한 기수를 마치고 “와, 이렇게 피드백을 정성스럽게 주시다니요. 저 다음 모임도 무조건 해요.” 하고 말씀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놀랐다.
글을 쓰는 재능은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습작의 시간, 독서의 시간이 다른 ‘재능’을 찾게 해 주었다.
자신이 뭘 잘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우리는 자주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한다.
‘내가 잘하고 있나.’ ‘내가 이걸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인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면 좋은데, 눈에 띄게 성과가 보이면 참 좋을 텐데 그게 마음처럼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건 지금까지 내가 나를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더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거다.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지 당신 안에는 무한한 재능이 감춰져 있을지도 모른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그동안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던 본인의 재능이 보일 수도 있다. 혹은 ‘이게 뭐 재능씩이나 되겠어.’ 하고 넘겼던 일이 지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 일 수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일도 중요하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더 나아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게 당신에 딱 맞는 일일 지도 모른다.
수미 작가의 『애매한 재능』을 읽다가 밑줄을 쭉쭉 그은 문장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가기만 한다면, 분명 길이 보일 거라고 믿어요. 내일이 오늘보다 좀 더 지독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을 것이다. 가능성이 있든 없든, 애매하든 모호하든, 내가 원하는 풍경으로 계속 걸어가는 것.
- 수미, 『애매한 재능』, 어떤책
꽁꽁 숨겨두었던 당신의 재능을 발견해 내면 좋겠다. 그리고 그 발견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본인의 것으로 꼭 붙잡아 두기를 바란다. 그게 씨앗이 되어 스스로를 얼마큼 커다랗게 키워낼지 아무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