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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Oct 14. 2022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 육아를 하면서 풀타임 근무에 집안일까지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육아는 나를 조금씩 소멸시키다가 종국에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나를 갉아먹는 느낌이었다.      


그것보다 더 답답했던 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들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불편함과 부당함을 몸으로 체감하게 됐다.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거나, 괜히 목소리를 내서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 검열하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더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참게 되고, 안으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말하지 못해 책을 읽기도 했다. 책 속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속 시원하게 해주는 문장들이 가득했다. 책을 덮고 나면 다시 현실이었지만 그래도 순간의 시원함이 좋아서 책 속으로 빠져들기를 반복했다. 혼자 읽을 때는 읽고 내 안에만 담아두면 그만이었다. 혼자 쓸 때는 나만 보면 그만이었다. 


‘목요일 그녀’로 살면서 모임을 통해 사람들과 나누다 보니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 내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게 되자 해야 할 말보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두 아이의 불량 엄마로 기꺼이 살아갑니다. 

불편한 일들에 대해 눈치 보지 않고 이야기하려고 애씁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힘이 됩니다.     


위에 적은 문장은 블로그 프로필에 오랫동안 적어두었던 문장의 일부다. 예전에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칭찬받는 직원이 되고 싶었고, 사랑받는 아내,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좀 희생하더라도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했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더 명확해졌다. ‘내’가 아니면 ‘남’도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단단해지지 않고 남의 이야기에 휘둘리거나, 내 인생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사는 게 의미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여성이 분명하게 의사 표현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 이유 중 하나를 나는, 억울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당신이 '충분히 암시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은 요청들'을 쌓지 않기를 바란다.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하면 좋겠다. 우리는 통하니까, 저 사람은 똑똑하니까, 내가 선의로 대하면 나를 선의로 대해주리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막무가내로 베풀고 실망하지 말자.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가도, 말과 글을 분명히 하다 보면 어슴푸레 마음속에 있던 것이 또렷해진다.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다. 여성인 나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기기. 내 말을 들리게 만들자. 의심은 집어치우고.
- 『출근길의 주문』, 이다혜, 한겨레출판     


모임을 통해 만난 많은 여성들이 말을 하지 못해서 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우리 대부분은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서 살았다. 어른들 때문에, 혹은 상사들 때문에, 사회적 시선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참거나 혼자 삭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우리는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독서모임 ‘소심 2기’에서 <여성학>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독서활동으로 <내가 경험한 차별과 혐오>에 대해 글로 쓰는 시간을 가졌다. 기억 속에 있던 상황들을 복기하는 일은 처음엔 쉽지 않았다. 쓰고 말하는 동안 ‘그럼에도’ 꺼내 놓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한 번 말하고 나면 그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계속 말하고 싶어 진다. 그러려면 말할 수 있는 자리에 계속 나가야 한다.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나는 부캐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숨지 않고 드러낼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게 될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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