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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Soom Jan 21. 2022

마음의 구멍

내 마음의 생김새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고 하는데.


그런가? 솔직히 평생 타인으로 살아볼 일이 없으니 모를 일이다. 가끔은 나만 빼고 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만 같은데, 정말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결핍이 있을까?


위로하는 에세이나 마음을 공부하는 심리학 서적이 인기를 얻는 걸 보면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맘이 적잖이 팍팍하고 외롭고 그런가 보다 짐작만 해본다. 으레 결핍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들 말하니까, 그래 다 비슷한가 보다 짐작만 해보는 거다.


지금껏 내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이 결핍감을 나는 '구멍'의 감각으로 경험했다.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구멍이 난 듯 시린 바람이 든다. 뭔가를 붓고 부어도 결국 솔솔솔 빠져나가는 듯한 헛헛함. 그런 느낌이 오래 나를 따라다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걸 어떻게든 메워보려 여러 시도를 했던 것이 곧 내 삶의 여정이었던 것 같다.


가슴 뛰는 큰 꿈을 가지기도 하고,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고, 애인을 만나 품을 내어주고,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고, 낭만적인 이유를 앞세워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좋았다.


나 스스로를 꽉 차도록 사랑하는 충만함을 느껴보기도 했고, 홀로 침잠할 때 고요히 떠오르는 고독이 무엇인지 아주 약간은 맛보기도 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던 내가 관계 속에서 호되게 배운 점도 많았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지, 그 신뢰가 사람을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도 온몸으로 배웠다.


그렇게 나는 나의 구멍을 잘 메우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잘 자라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어떤 짓거리를 해도 어떤 순간에 나는 쉽게 외로워졌다.


예고도 없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이쪽저쪽 정신없이 내팽개쳐지다가 픽하고 나가떨어졌다.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우정을 나눠도, 크고 작은 것들을 가져와서 경험으로 채워 넣어도 결국에는 흔들거리다 못해 무너지는 날들이 찾아오곤 했다.


지금까지 나를 잘 알게 되었다고 믿었는데, 나를 잘 돌보고 채워주고 있다고 믿었는데.


무너지는 건 언제나 한 순간이다.




너는 나무 같아.

언니는 외유내강이네요.

너 가만 보면 오뚝이 같더라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종종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임을 신뢰해주는 마음들 틈에서 나는 나를 신뢰하는 법을 터득해나갔다.


그렇지만 마음의 구멍으로 찬 바람이 들이치는 날에는 어김없이 주고받았던 말과 마음을 의심했다.

금세 스스로에 대한 신뢰는 물거품이 되고 그런 날이면 나는 곧잘 울었다.


아니야, 난 너무 약해.

무너질 것 같아. 다시 일어날 수 없을까 봐 두려워.

네가 보는 나는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내 마음의 구멍이 찬바람에 너덜거려 소란스럽던 

어느 날 밤,


그 밤엔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의 구멍이 마음보다 더 커져서 몸 한가운데가 뻥 뚫려버린 느낌이었다. 공허함에 사로잡힌 나는 무기력하게 눈을 감고 신음하는 수밖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잠자코 눈을 감고 헤아려보니 

내 삶은 잘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아직 젊었고, 건강했고, 적어도 밥은 챙겨 먹을 수 있는 푼돈은 늘 있었다. 내 생각보다 더 내 머리는 명석했고 덕분에 쓰임이 있는 편이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연락하면 닿을 곳에 있었으며, 그들 모두 아프지 않고 무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음의 구멍, 그 시린 감각은 왜 지워지지 않는 걸까. 내가 욕심이 많은 사람인 걸까, 아니면 이미 가진 소중한 것의 의미를 잘 모르는 걸까.


누군가는 많이 가진 자의 우울을 사치라고도 말하던데.(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충분히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지금껏 열심히 나를 알아주고, 위해주려 애를 썼는데...


왜 내 마음은 어김없이 추워지는 걸까.

넌 뭐가 그렇게 부족하니?




눈을 감은 채 구멍의 감각을 더듬어보았다.

마음의 구멍, 그 안과 주변으로 내가 밀어 넣었던 모든 것을 하나 씩 돌이켜보며 응시한다.


무엇이라도 넣어서 채워지길 바랐던 내 마음의 자리는 지저분했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멋져 보이길 바라는 마음,

보다 단단해지길 바라는 마음.



이런 소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좋은 사람들과 적당한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의 나.


하지만 이런 소망들이 분명 삶의 동기가 되어주는 소중한 마음들임에도 결국 내 마음의 구멍에 알맞지는 않았다. 맞지 않아 오히려 마음의 구멍이 있는 자리를 덧나게 하고 있었다.


성취하기를, 이루기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들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에 잠시 반짝이다가 곧 모래알처럼 스르르 흘러 흩어졌다. 


성취는 곧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이룬 한 순간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러니 마음의 구멍 자리로 지저분하게 흩어진 소망했던 마음의 조각들은 오히려 구멍 난 자리의 감각을 선명하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사실  구멍은 채워져야 하는 구멍이 아니었다. 채워서 없애야  자리가 아니었다.


구멍은 그냥 구멍일 뿐이었다.


날 때부터 왼쪽 뺨에 점이 있는 아이처럼, 등허리에 까만 얼룩무늬가 있는 우리 집 고양이처럼, 그런 것처럼 마음의 구멍이 난 자리는 애써 가려야 할 자리가 아니었다.


그저 구멍 난 자리가 있는 그대로가 내 마음의 생김새였다.




그래서 구멍은 그대로 비워두기로 했다.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 애쓸 때 오히려 구멍 난 자리의 감각이 도드라질 뿐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이 자리를 '결핍'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모자라거나 부족한 자리가 아니라 그냥 나의 생김새이니까. 


그렇게 구멍 난 자리에게서 '결핍'이라는 이름을 거둬들이고 나니 숨이 좀 쉬어졌다.


그럼에도 나의 무의식은 참 무섭게 내 안의 구멍 난 자리를 어떻게든 채우려 하겠지. 그리고 나는 눈치챌 새도 없이 무언가를 쏟아붓고 있겠지. 하지만 이제는 그런 순간들이 찾아올 때 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내 구멍의 자리를 응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어떤 것도 내 마음의 구멍을 채울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황량한 외로움의 시간 속에서 많이 울었지만, 이제는 그 어떤 것도 내 마음의 구멍을 채울 수 없다는 그 사실이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완성해주고 있음을 안다.



마음이 좀 더 든든해졌다.






Track3 - 이소라

https://www.youtube.com/watch?v=F2TtkAF4--w

출처: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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