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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Soom Mar 10. 2022

그래 내가 나무 할게

돌아와서 쉬어 줘


부모님이 계신 시골집에 내려가면 그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엄마가 어떤 가수에게 푹 빠져서 청소년들의 아이돌 덕질 못지않은 덕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체 이러한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궁금해질 만큼 엄마는 가수 덕질에 진심을 보여주고 있다.


긴 연휴를 맞아 집에 내려갔던 그 무렵에, 엄마가 좋아하는 그 가수가 새 앨범을 냈다. 밤에 엄마 옆에 나란히 누워 그 가수의 신보를 함께 들었다. 엄마의 취향은 존중하지만 사실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사뭇 진지하게 신보에 실린 곡들을 하나하나 같이 들으며 짧은 평을 해주었다. 이 노랜 이게 좋네, 저 노랜 저게 좋네. 마치 게시물에 댓글을 달아 주듯이 몇 마디 덧붙이는 것이 엄마의 취향을 제대로 존중해주는 일인 것 같아 나름의 노력을 해보았다.


밤이 깊고, 몽롱해진 채 누워서 엄마 등을 끌어안았다. 때마침 그 가수는 



그대는 새, 나는 나무 

 ... 

나는 그대의 보금자리

언제나 힘이 들 때 찾아오세요

나는 그대의 보금자리

언제나 보고플 때 찾아오세요



하는 노랫말을 부르고 있었다.


가만히 듣던 나는 내 발목에 새겨놓은 두 마리의 새 모양 타투를 생각하며 무심결에 엄마에게 말했다.


- 나는 새 할게, 엄마가 나무 해.


그랬더니 엄마는 노래를 조금 더 듣다가


- 그러면 내가 못 쉬잖아. 


하는 거다. 그러면서,


- 내가 나무 하면 새가 와서 쉬는 건데, 그럼 내가 못 쉬잖아.


덧붙였다.


아직 겨울이었고, 바닥에 깔린 전기장판은 뜨끈했다. 끌어안은 엄마의 등도, 닿아있던 손 끝도 모두 그렇게 뜨끈했다. 미안함도 고마움도 아닌, 이름 없는 감정이 차오르는 내 마음속도 뜨끈했다. 뜨끈함이 지나쳐서였을까, 그 감각은 눈물이 되어 누운 내 얼굴의 모양을 타고 흘렀다. 잠시 숨죽였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 ... 그래 내가 나무 할게. 


아무도 더 말이 없었다. 다만 가수는 열심히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나의 날갯짓만 생각하면서 몸에 새겼던 새 두 마리가 조금은 미워졌다. 늘 나는 훨훨 자유롭게 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바람에 가지가 전부 흔들려서 힘든 날에도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는 누군가가 없었더라면 나는 감히 새가 되어 날고 싶다는 낭만적인 꿈을 품을 수가 없었을 텐데.


그렇게 한 자리에서 나의 꿈이 해맑을 수 있도록 지켜주었던 당신의 단단한 뿌리를 이제야 바라본다. 작아지고 약해진 당신의 몸을 더 깊게 끌어안는다. 여전히 둘 다 말이 없다. 조용히 마음으로만 말한다.


'엄마, 이제 내가 나무가 되어 볼게. 훨훨 날아다니고서 언제든 돌아와서 쉬어 줘.'


언젠가 이 마음을 직접 들려주지 못한 이 밤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더 깊게 엄마의 품에 파고들었다.




조명섭 - 그대는 새 나는 나무


https://youtu.be/VnwZpUXoe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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