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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Soom Sep 24. 2022

가을 토요일 아침, 너와

좋아하는 마음을 구구절절


전철 창을 통해 가을이 쏟아진다. 토요일 아침, 복잡한 역들을 조금 지나면 외대 앞 역까지 가는 전철 안은 한가로워진다. 그 한가로움과 터덜대는 전철 소리에 몸을 맡기면 졸음이 밀려온다. 꾸벅 졸다 보니 창밖의 이미 온 가을이 반짝이며 잠을 깨운다. 주말 아침, 이불속에 두고 온 나의 영혼이 순식간에 제 몸을 되찾는다. 아! 가아아을! 좋다. 아니 사실 난,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도 부지런 떨고 가을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즐겁고도 좋은 것은 나에게 좋은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또 만남의 시간도 일주일 중 겨우 하루, 그 하루 중 겨우 한 시간에 불과하다. 그치만 우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눈을 맞추고 웃는다. 나는 그런 눈 맞춤에서 많은 것을 얻는다. 어떤 소중한 것을. 나는 우리가 만난 이 계절, 가을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도 겨울이 오기 전, 우리는 작별할 테고 그래서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해져 버린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일대일 책 친구 봉사를 통해 만난 나의 짝꿍과 나누는 이 한 시간이.


아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을 열고 두런두런 말을 나누다 보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내 일상 중 가장 속도가 빠른 시간이 아닐까 할 만큼. 그러면서 나는 '좋아하는 마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엔 지인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 요새 뭐가 재밌어요?


나는 답했다.


- 가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저녁식사, 달리고서 자전거로 돌아오기, 수영을 하려는 계획, 새로운 걸 배우려는 계획.




지금의 나는 애써 나를 아끼고 사랑하려 하지 않으면, 애써 삶을 사랑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나락으로 넘어지기 쉬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똑같은 일상의 권태와 그럼에도 반복되는 외로움, 그런 마음들에 지쳐버렸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뭔가가 내 마음을 반짝이게 하는 순간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그냥 수영이 재밌는 게 아니라, 수영을 다시 배울까 말까 어느 수영장을 가지? 하는 고민과 계획의 과정이 재밌다고 말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마음, 그 감정 하나가 나를 꽤나 오래 작동시켰지만 이젠 좀 더 세밀하고 구체적인, 나만의 내밀한 좋아함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꾸 구구절절 말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가을 토요일 아침, 너와 만나는 시간이 좋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만나는 동안 너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와 눈 맞춤하는 그 순간이 너무 짜릿하다. 그 눈동자를 생각하며 전철에 몸을 싣고 계절의 달라짐을 확인하는 시간도 좋다. 그래서 이제는 (겨울만큼은 아니지만) 가을을, 가을 토요일의 아침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아침, 나의 도서관 친구를 만나면서 정말로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디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지 알아간다. 그래서  내가 자꾸자꾸  세세하게 나의 좋아함을 말할  있으면 한다. 구구절절, 티엠아이, 티엠티가 되겠지만.. 삶을 사랑하는 이유가 구체적일수록 다음 발걸음을 도모할  지혜가  거라 믿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엔 애쓰지 않아도 삶이, 내가 사랑스러워서 씩씩해진 마음이 되리라 믿는다.




좋아해 - 요조

https://youtu.be/yurE_cNAa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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