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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Soom Jun 27. 2022

너에게 배운다

반려식물에게 배우는 사랑은


고양이가 식물을 가만두질 않아서, 집엔 해가 잘 들지 않아서, 마땅한 공간이 없어서...


이런 이유로 반려식물을 들이지 않아 왔다. 근데도 뭔가를 가꾸고 키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기어이 마음에 들어오는 식물들이 생기고 만다. 고민 끝에 바깥 복도에 아주 작은 나만의 화단을 만들었다. 화단이라기엔 굉장히 소소하고 투박하지만. 여기에는... 


싹을 틔워 옮겨 심은 스위트 바질, 

분갈이를 아직 못해준 작은 선인장, 

화분 째 굴러 떨어져서 망가진 다육이, 

샐러드 가게에서 얻어와 수경으로 뿌리를 낸 아보카도들,

귀여워서 지나칠 수 없었던 피쉬본.


이렇게 여섯 친구들이 자리하고 있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없어봐서 그것과는 비교해볼 수 없지만 식물을 키우는 것은 고난도의 돌봄이다. 반려동물들과 오랜 시간을 지내왔지만 반려식물은 정말이지 새로운 세계였다. 나의 동물 친구들이 가끔은 한국말을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의사 표현을 내가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전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식물은 더하면 더했다. 소리도 움직임도 나로서는 정확히 눈치챌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식물은 내가 만나온 그 어떤 것들과 호흡이 완전히 달랐다.

 



나는 천성이 느렸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급히 나와버렸지만 그래서 더 느린 사람이었다. 머리카락도 아주 느리게 자랐고 몸도 키도 느리게 자랐다. 규칙을 이해하는 것도 느렸고 적응을 하는 것도 느렸다. 빠른 년 생의 비애랄까. 그냥 원래 내 또래의 흐름대로 살았다면 좀 달랐을까. 어딜 가도 막내였고 어딜 가도 뒤쳐졌고 어딜 가도 깍두기였던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생각한다. 


'세상은 나에겐 너무 빨라. 내 속도를 존중해주면 좋겠다.' 


그런데 좋겠다... 하면서도, 느린 나를 가장 많이 다그친 건 나 스스로였다. 어느덧 빠른 세상의 시선을  내 눈에 장착하고서 나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느려도 괜찮은 걸까? 그래도 된다고 누군가 진심을 다해 기꺼이 말해준다면. 그 말이 내 마음을 오래 만져주어 언젠가는 나 스스로에게도 그 말을 해줄 수 있도록 배우게 된다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정말, 정말로 느린 채 내 속도를 믿고 살아가도 되는 것인지. 여전히 방황 중. 여전히 의심 중이다.


식물들은 정말 티를 안 낸다. 오래 두고 천천히 지켜보아야 조금 알 수 있다. 네가 목이 마르구나, 네가 충분하구나, 네가 여기서 조용히 잘 자라고 있었구나. 잘 살아내고 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 식물들을 보면 내 방황과 의심이 일시정지하곤 한다.




'아직 더 지나 봐야 알 수 있겠지, 내 사랑이 너희에게도 사랑으로 가닿았을지 말이야.'


너에게, 나의 식물들에게 배운다. 너의 속도를 그대로 알아주는 그것이 사랑이고 또한, 그대로 두고 가만히 지켜보는 게 사랑이라는 걸. 지나치게 물을 많이 줬는지, 바람과 볕이 모자라지는 않았는지, 충분한 공간에 뿌리를 뻗고 있었는지, 이런 너의 몸짓을 알려면 언젠가 너만의 속도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를 두고 가만히 지켜보아야 한다.


'나의 눈이 아니라 너의 눈으로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마음껏 아프지 않게 사랑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갖은 노력 끝에도 결코 나는 네가 될 수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널 바라보는 것 그 이상의 최선을 나는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선조차 나는 잘 해내지 못하는 사랑이 모자란 사람이다. 


'결국 늘 미안하겠지만 최선을 다해 조용히 지켜보기만 해 볼게.'


언젠가 조금 더 성숙하고 온전하게 사랑이란 걸 해낼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너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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