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될까?
어김없이 이번 달도 찾아온 마법의 날.
태명을 '피피'로 지어서일까.
오라는 피피는 안 오고 매달 피만 나오는 사태.
(태명은 보통 임신 후 짓는데, 우리는 벌써 지어놨다. 마음만 급해서.)
월경이 시작되면 이젠 슬프다거나 속상한 마음보단 괘씸한 마음이 더 크다.
'피피야, 너 이렇게 늑장 부리다가 엄마 폐경하면 어떡할래.
아이고, 폐경하면 귀찮은 생리 안 해서 좋겠네~'
괜히 생기지도 않은 아이에게 속으로 핀잔을 줘본다.
이 와중에 엽산 한 통을 비웠다.
작년 처음 임신 준비를 시작하면서 먹기 시작한 엽산인데 영양제 꾸준히 챙겨 먹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 한 통을 다 먹는데 일 년 하고도 3개월이 걸렸다.
사실 이 한 통을 비우기 전엔 임신이 될 줄 알았다.
처참히 빈 병이 되어 분리수거되는 엽산병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엽산 다 먹었어."
"한 통 다 먹을 동안 피피는 안 오고 뭐 했대?"
"몰라, 엽산 먹고 살만 찔 판이야."
물론 엽산 먹고 살이 찔 리도 없고 꼭 임신이 아니어도 엽산을 먹으면 건강에 좋지만, 심통 난 내 기분은 '쓸데없이' 먹은 기분이다.
그 좋아하는 커피 마시는 것도 조심한 지 일 년이 넘었다.
우리나라는 임신 준비 중에 조심할 게 왜 이렇게 많은지.
술, 담배는 당연히, 율무 차도 안돼, 히비스커스 차도 안 좋아, 간에 좋은 밀크씨슬도 안 좋아, 뛰지도 마, 쪼그려 앉지도 마.
이런 얘기들을 너무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듣고 나면 괜히 마음에 걸려서 못하게 된다.
커피도 그중 한 가지.
나름 배란일 전부터 월경하기까지는 No커피 기간이다.
그러다 월경이 시작되면 '에라, 내 맘대로 할 거다'란 마음으로 일주일쯤은 신나게 커피를 마신다.
그래봤자 하루 한 잔.
어쩌다 커피가 내 인생의 죄의식의 음료가 되었나.
별로 챙겨 먹고 싶지 않은 엽산과 먹고 싶은데 참아야 하는 커피.
사실 엽산을 전혀 안 먹어도, 마음껏 커피를 마셔도 임신이 되고 안 되고에 중요한 요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렇지 않나?
엽산이 뭐라고, 커피가 뭐라고.
소위 임신은 하늘의 뜻이지 않나.
엽산이나 커피의 뜻이 아니고.
그걸 알면서도 알게 모르게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뭘까.
쿨하지 못한 나.
언젠가는 올, 아니 영영 안 올지도 모르는 피피에게,
엄마는 간이 콩딱지 만해서 네가 오기 전까진 아무래도 계속 이렇게 살지 싶어.
그러니 다음 달엔 올는지, 내년엔 올는지 미리 얘기라도 좀 해주렴.
엄마, 커피 좀 마음껏 마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