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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한 해설자 Dec 18. 2024

모두까기 인형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상처받기 전에 내가 먼저 상처를 준다.


바쁜 일상 속 출 퇴근길, 잠들기 전 “모두까기 인형"을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https://youtu.be/vFb00jkq9cc


늘 기분 나쁜 말만 골라서 하는, 골드미스라 자칭하는 동료가 있다. “어머 자기 요즘 살쪘다”, “패션이 좀 올드하네”, “피부관리 좀 받아야겠다” 등 외모를 깎아내리는 말은 일상이고, “머리 좀 자르지 요즘 누가 이렇게 긴 머리를 해”라고 하다가 정작 그 상대가 머리를 자르고 오면 “머리 긴 게 나은데 왜 잘랐어”라고 말을 바꾼다.


누군가의 자녀가 공부를 잘한다고 하면 “요즘은 공부 잘해도 아무 쓸모없어” 하다가, 다른 사람의 자녀가 공부를 못 한다고 하면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공부 잘하는 게 기본이지” 라며 일관성이나 기준 따위는 전혀 없이 늘 트집을 잡고 남을 깎아내리기만 한다.


그러다가도 누가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본인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데도 "난 결혼 같은 건 안 해. 요즘 사람들은 이해 못 하겠네. 왜 결혼에 얽매여 사는지!!!” 라며 감전된 사람처럼 파르르르르 떨며 목소리를 높인다.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마도 결혼을 너무 하고 싶어서겠지 싶다.




나는 그녀와 알고 지낸 지 10여 년 정도 됐는데, 원래부터 저랬던 것은 아니다. 다소 예민하긴 했으나 남을 깎아내리거나 비꼬는 모습은 별로 없었고, 나름의 열정도 있었다. 상사로서 카리스마를 발휘하려는 것이 과할 때도 있었지만, 이 정도로 트집을 잡거나 감정을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진 않았었다.


그녀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3~4년 전부터였다. 당시 인생을 걸 만한 큰 프로젝트를 맡았지만 생각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이 계기였던 것 같고, 마침 그 무렵에 오래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도 크게 한몫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그녀는 사소한 일에도 사람들을 비난하고, 말끝마다 사람들의 약점을 꼬집어 상처를 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녀의 ‘모두까기’ 성향은 점점 심해졌고, 특히 외모나 개인적인 부분을 트집 잡으며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마치 “상처받기 전에 내가 먼저 상처를 준다”는 식으로, 먼저 상대방의 결점을 공격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가 쌓아 올린 방어벽은 결국 주변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벽이 되고 말았다. 자신을 보호하는 장벽 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방어심리가 만들어낸 장벽 뒤에 남은 건 커져만 가는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이 남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 나도 언젠가 그런 방어적인 태도로 사람을 대했거나,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나는 저렇게 가시 돋친 말로 남을 공격하진 못하지만, 지나치게 방어적이 될 때가 있다. 주로 무관심이나 침묵을 선택하긴 하지만, 그런 태도 역시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고 나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방어보다는 공감과 이해로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소심한 내게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그 벽을 조금이라도 낮춰 보려고 한다. 공감의 한 발을 내딛는 일은 어쩌면, 나를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어 줄지도 모르니까.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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