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전기차 콘셉트카 ‘이니시움’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성공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당장의 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었지만, 현대자동차는 1998년 수소전기차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오로지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신념으로 시작된 도전이었다. 이 같은 신념에서 시작된 담대한 도전은 세계 최초의 수소전기차와 대형 수소전기트럭을 양산하는 등 현대차가 수소 사회에서 ‘퍼스트 무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지난 27년간 끊임없이 수소전기차 기술을 개발해 온 현대차가 지금까지 쌓아온 수소에 대한 올곧은 신념의 결실을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10월 31일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진행된 수소전기차 콘셉트카 공개 행사 ‘Clearly Committed: 올곧은 신념’이다. 콘셉트카의 이름은 미래를 더욱 풍요롭게 일궈 나가길 바라는 염원과 수소 사회를 본격적으로 여는 선봉장의 의미를 담아 라틴어로 ‘시작’을 뜻하는 ‘이니시움(INITIUM)’이라고 명명됐다. 이니시움의 가장 큰 특징은 내년 공개될 수소전기차의 디자인과 기술적 특징에 대한 단초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이번 행사에는 현대차의 수소 기술 개발 헤리티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도 함께 마련됐다. 1998년 수소전기차 개발 전담팀을 꾸렸던 시절의 사진과 기록, 도면부터 수소전기차 전용 모델로 개발한 넥쏘에 대한 자료까지, 올곧은 신념으로 지켜온 27년의 역사가 풍성한 전시물과 함께 공개됐다. 현대차 대표이사 장재훈 사장은 다음과 같은 환영사로 국내·외 자동차 미디어를 맞이했다.
“현대차의 수소 개발 역사 27년은 올곧은 신념, 담대한 도전, 뚝심 있는 결단의 시간이었습니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으며,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 양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풍부하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공평한 에너지입니다. 현대차는 기술의 진보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오늘 소개할 콘셉트카에 담긴 미래를 비롯해, 앞으로 현대차의 온 역량과 마음을 다해 누구나, 모든 것에, 어디에나 수소가 쓰이는 세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콘셉트카는 향후에 선보일 신차의 디자인 또는 신기술의 특징을 담아 사전에 선보이는 모델이다. 이니시움에도 내년에 공개될 수소전기차의 디자인과 기술적인 특장점이 담겨 있다. 이니시움의 디자인 소개는 현대제네시스글로벌디자인담당 이상엽 부사장이 맡았다. 이상엽 부사장은 “7년 만에 새로운 수소전기차의 디자인을 준비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고객의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신념을 갖고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집중했습니다”라며 이니시움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니시움의 디자인에는 도시와 아웃도어를 넘나드는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돼 더욱 SUV다운 특성을 강조하는 견고함과 세련미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이상엽 부사장은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인 수소의 순수함과 에너지로써의 강인한 면모를 동시에 표현하고자 새롭게 개발한 디자인 아이덴티티 ‘아트 오브 스틸(Art of Steel)’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이니시움은 수소의 순수하면서도 강인한 본성을 품을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이 2가지 특성을 자동차의 오랜 소재인 ‘철(Steel)’에서 찾았고, 소재의 본성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제조 단계부터 고민했습니다. 철의 탄성을 그래로 살려 형태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것이 바로 ‘아트 오브 스틸’이며, 이는 이니시움에서 느낄 수 있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의 기원입니다.”
이상엽 부사장의 설명처럼 이니시움의 디자인은 순수하면서도 강인하고 견고한 기운이 물씬했다. 철이라는 소재의 물성을 디자인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 차체 전반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두툼한 범퍼, 펜더의 볼륨감, 웅장한 21인치 휠, 도어의 그루브한 패턴은 강인한 SUV의 느낌을 더했고, 지붕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루프랙은 도시와 아웃도어를 넘나드는 활용성을 강조했다.
이니시움에 깃든 수소전기차의 정체성은 컷-리스 기술로 매끈하게 마감된 램프 디자인에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현대차의 수소 밸류체인 사업 브랜드인 HTWO 심볼을 재해석하고, 모스부호로 ‘H’를 뜻하는 4개의 점을 앞뒤 램프와 외장 곳곳에 활용해 이니시움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완성했다.
이를 통해 미래 지향적이고 하이테크한 인상을 구현하는 동시에 현대차의 정체성을 강조할 수 있었다. 아울러 27년간 이어진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헤리티지를 모던하게 해석한 브릴리언트 골드 매트(Brilliant Gold Matte) 컬러로 차체를 감싸 금속의 영속성과 에너지를 심도 있게 표현한 것도 눈여겨볼 특징이다.
디자인에 이어 이니시움의 기술적인 특장점을 소개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설명을 맡은 차량개발2담당 정진환 전무는 이니시움의 주요 개발 목표를 ‘주행 가능 거리와 향상된 동력 성능’, ‘패밀리카에 적합한 여유로운 실내 및 적재 공간’, ‘수소전기차만의 차별화된 편의 및 안전 사양’으로 요약했다.
정진환 전무는 효율을 향상한 PE 시스템, 저장 밀도가 증대된 수소 탱크,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이 가미된 수소전기차 전용 휠과 구름저항이 적은 타이어 등을 적용하여 세계 최고 수준인 650km(북미 기준 408마일) 이상의 주행 가능 거리를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연료전지시스템과 배터리의 성능을 개선해 모터 출력을 최고 150kW까지 끌어올렸고(넥쏘는 113kW), 이를 통해 8초 이내의 발진 가속 성능(0→ 100km/h)과 6초 이내의 추월 가속 성능(80km/h→ 120km/h)을 달성했다고 소개했다.
실내 및 적재 공간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정진환 전무는 “다리와 머리 위 공간을 넓히고 시트 리클라이닝 각도를 늘려 이니시움의 2열 거주 공간을 크게 개선했으며, 뒷문이 열리는 각도를 조정해 승하차 편의성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트렁크는 골프백을 최대 4개까지 실을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해졌다. 넥쏘 대비 리어 오버행을 늘이고 트렁크 공간의 디자인을 개선한 덕분이다.
이니시움에는 수소전기차 이용 경험에 최적화된 편의 사양 및 수소전기차 특화 안전 사양도 새롭게 적용됐다. 장거리 이동 시 경유할 충전소 정보를 알려주고 이에 최적화된 경로를 찾아주는 수소전기차 루트 플래너가 대표적이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통해 충전소 운영 상태, 대기 차량, 충전 가능 여부 등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스마트한 기능이다.
차의 전력을 외부 전자 기기로 보낼 수 있는 V2L 사양도 적용됐다. 정진환 전무는 “완충된 이니시움 1대가 생성하는 전기는 서울시 일반 가정이 한 달간 사용하는 전력의 1/3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특히 실외 단자는 220V 가정용 콘센트를 직접 연결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이니시움은 충돌 시 탑승자의 생존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전방 다중골격 구조를 적용하는 한편 B필러 구조를 보강하고 총 9개의 에어백을 장착해 글로벌 최고 수준의 충돌 안전 성능을 확보했다. 아울러 실내 카메라를 활용한 운전자 모니터링 기능(ICC), 고속도로 주행 보조(HDA 2) 등 최신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기술을 대폭 적용해 다양한 상황에서의 안전성도 확보했다.
이날 행사에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개발 역사를 알차게 보여주는 수소 헤리티지 존도 마련됐다. 전동화에너지솔루션담당 김창환 전무, 현대차 수소 기술 개발의 1세대 주역인 수소연료전지시스템개발담당 최서호 상무가 수소연료전지개발센터 FC시스템설계1팀에서 근무 중인 1998년생 이지현 연구원과 수소전기차 개발사를 돌아보는 헤리티지 토크 세션이 진행되기도 했다. 여기서 나온 풍성한 이야기를 곁들여 헤리티지 존을 둘러보니 한층 깊이 있는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지난 1998년, 청정에너지인 수소에 주목한 현대차는 수소 연구개발 전담팀을 꾸리고 꾸리고 머큐리(Mercury)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2000년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달탐사선 아폴로 11호에 탑재된 연료전지시스템의 공급사 UTC Power와 수소전기차를 공동 개발하는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공동으로 개발한 첫 번째 시험차 머큐리 1은 2001년 글로벌 친환경차 경주 대회(미쉐린 챌린지 비벤덤)에 출전해 수상하는 등 세계 무대에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개발을 당당히 알렸다. 행사장에는 머큐리 I의 후속 모델인 머큐리 II 시험차가 깔끔한 모습으로 복원돼 있었다.
최서호 상무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소개했다.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이후 6개월 안에 수소전기차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연구원 7명이 미국에 가서 밤낮으로 시험차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완성된 차가 바로 2000년 국내 최초로 선보인 싼타페 기반의 ‘머큐리 I 수소전기차’였다.
두 패널은 UTC Power와 파트너십을 진행하는 동시에 수소연료전지스택 독자 개발 프로젝트인 폴라리스(Polaris) 프로젝트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연료전지 내부는 습도가 높아야 컨덕티비티, 즉 수소이온의 움직임이 최적화됩니다. 당시 UTC Power의 스택은 내부 가습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냉간 시동에 취약했던 것도 문제였고요. 그래서 현대차만의 기술로 외부 가습 방식을 적용한 스택을 개발하기 시작했죠. 당시에는 항온 항습 시설이 없어서 가습기를 틀고 3일이 넘게 스택을 쌓고는 했습니다.”
머큐리 프로젝트는 UTC Power의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하고 현대차가 동력 및 차량 구동 관련된 제어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대로는 수소전기차의 양산까지 실현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현대차는 독자 개발의 뜻을 품고 폴라리스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했다. 폴라리스 프로젝트는 2004년 독자 개발한 스택을 최초로 탑재한 폴라리스 I 수소전기차를 완성하는 결실로 이어졌다.
수소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 개발을 전담하는 환경기술연구소(마북연구소)가 2005년에 설립되면서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개발도 탄력을 받았다. 현대차 첫 고유 엔진인 알파 엔진이 탄생한 바로 그 자리에서 수소전기차 양산의 꿈이 여물었다. 폴라리스 시험차는 2007년 미쉐린 챌린지 비벤덤에서 수상했고, 2008년과 2009년에는 북미를 종횡으로 완주하는 로드 투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등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기술력을 널리 알렸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하고, 미래차 패러다임이 배터리 전기차로 전환되는 등 수소전기차 개발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현대차의 연구개발 의지는 멈추지 않았다. 김창환 전무의 이야기다.
“국내에 연료전지 부품 생태계가 만들어진 상황에서 연구를 멈출 수는 없었고, 수소 에너지의 혜택을 누리게 될 미래 세대를 위한다는 신념으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대량생산 체제를 결정한 후, 현대차만의 독자 기술로 대량생산에 적합한 금속분리판 스택을 개발하는 등 연구를 이어갔죠. 그렇게 개발한 끝에 완성한 모델이 바로 ‘투싼ix Fuel Cell’이었습니다. 당시 유일하게 수소전기차 실증 사업이 이뤄지던 곳이 유럽이었는데, 연구원들이 직접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1,000여 대를 판매했죠.”
제조가 까다로웠던 흑연분리판과 달리 금속분리판은 프레스 공법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어서 양산차에 훨씬 적합했다. 아울러 수소와 공기가 만나 전기를 생성한 뒤 물로 배출되는 유로도 훨씬 정교하게 설계돼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의 성능도 좋아졌다. 폴라리스 프로젝트 때부터 꾸준히 다듬고 개선한 제어 기술의 역량도 높아졌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세계 최초의 양산형 수소전기차 투싼ix Fuel Cell이 완성됐다.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를 양산하는 데 성공한 현대차는 2018년 수소전기차 전용 모델 ‘넥쏘(NEXO)’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수소전기차 대중화의 시작을 알렸다. 넥쏘는 현대차의 2세대 수소연료전지시스템과 저장 및 내구 성능을 강화한 수소 탱크뿐만 아니라 각종 첨단 기술이 집약된 상징적인 모델이었다.
현대차의 수소 기술력은 글로벌 무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투싼ix Fuel Cell의 100kW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이 2014년 미국 자동차 매체 워즈오토(Wards Auto)가 선정한 ‘2015 세계 10대 엔진’에 선정된 데 이어, 2018년에는 넥쏘의 113kW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이 다시 한번 ‘2019 워즈오토 세계 10대 엔진’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울러 유럽 신차 안전성 평가 프로그램인 유로 NCAP에서 최고 안전 등급을 획득하는 등 우수한 상품성을 인정받았다.
미래 세대를 위한다는 올곧은 신념으로 수소전기차 개발에 집중해 온 현대차의 행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20년에는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사업 브랜드 HTWO를 설립했으며, 장거리 물류 트럭과 시내버스에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을 탑재한 수소전기 상용차를 선보이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대형 수소전기 트럭인 엑시언트 수소전기 트럭은 유럽과 미국에서 탈탄소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도심용 일렉시티 수소전기버스와 장거리용 유니버스 수소전기버스가 운행 중이다.
한편, 올해 초에는 미국에서 개최된 CES에서 수소의 생산부터 저장, 운송, 활용의 모든 밸류체인에 적용할 수 있는 맞춤형 솔루션 HTWO Grid를 공개했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로템,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등 현대자동차그룹의 모든 역량을 모아 수소 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진심이라는 것을 다시금 입증한 것이다. 이날 행사장에도 수소 생산부터 활용까지 모든 과정을 아우른 HTWO Grid 모형을 함께 전시해 현대차의 수소 비전을 명확히 알렸다.
이니시움은 지난 27년간 지속돼 온 현대차의 올곧은 신념이 담긴 결실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넥쏘가 수소전기차 대중화의 효시였다면, 이니시움은 수소 사회를 여는 선봉장이 되겠다는 현대차의 선언이다. 이니시움에서 선보인 디자인과 새로운 기술은 내년에 공개될 수소전기차로 온전히 이어질 예정이다. 새로운 수소전기차, 그리고 현대차가 중심이 되어 세계 각지에서 구축 중인 수소 사회 인프라와 함께 시작될 본격적인 수소 사회를 기대해보자.
사진. 조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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