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은 데이터 분석가다. 내가 하는 일은 대용량 데이터를 수집, 정제, 분석, 모델링하는 프로그래밍 코드를 작성해 로우 데이터를 숫자와 차트로 만들고, 사람이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논리로 표현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일련의 과정을 자동화한다. 이렇게 표현하면 엄청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사무직이 엑셀과 수작업으로 하는 일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에 불과하다.
내 부업은 주식 투자자다. 진지하게 주식 투자를 해온 지 만으로 2년, 유명한 투자 대가들의 양서를 읽고, 증권가 애널리스트 님들이 작성한 수많은 리포트를 읽고, 투자 스터디도 하는 등 개인적으로는 꽤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익률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좋지 않다. 내 투자 수익률이 좋지 않은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2년째 지속 중인 미중 무역 분쟁에 따른 한국 주식 시장의 수익률 저조가 그 한 가지 이유일 수 있다. 아래는 지난 5년 코스피 차트다. 지난 2년을 놓고 보면 코스피 지수는 2018년 1월 고점 2,608을 기록 후, 2019년 8월 저점 1,891까지 하락, 다시 반등해 2020년 1월 10일 2,206을 기록하고 있다.
위 차트에서 확인할 수 있듯 지난 2년 간 한국 주식시장은 매우 우울했다. 한편 어떤 이들은 한국 말고 해외로 눈을 돌리라고 한다. 솔깃한 얘기다. 나의 경우 미국, 브라질, 중국, 인도 시장에 분산 적립 투자한 연금 계좌 3개 중 DC, 개인퇴직연금의 3년 누적 수익률도 각각 약 40%, 30%를 달성했다. 인도 인프라 펀드에 크게 베팅한 IRP 계좌의 3년 누적 수익률은 약 5%로, 절대수익률 +% 구간이다. 아래는 순서대로 미국, 중국, 브라질, 인도 주식 시장의 5년 차트다. 대충 생각해도 이것들을 섞어서 평균 내면 코스피 몰빵에 비해 훨씬 괜찮은 수익을 얻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대목에서 레이 달리오나 김성일 님과 같이 글로벌 분산 포트폴리오의 강력함을 설파하는 분들의 주장이 사뭇 솔깃하게 들린다. 백날 기업 분석하느라 에너지 쏟지 말고, 체계적인 분산과 리밸런싱 원칙만 설정해서 잘 실천하기만 해도 마음 편히 알파(시장 대비 초과 수익)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이니 말이다. 꽤나 솔깃한 얘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개인 투자자의 직접 투자는 알파를 창출하기 어려운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볼 수 있겠다. 개인투자자의 90% 이상이 돈을 잃고 나가는 한국 주식 시장에서도, 간혹 특출난 투자자들의 성공담이 회자된다.
알파 창출은 포기하기 어려운 달콤한 꿈이다. 누구나 투자 수익을 극대화해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어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근로소득자로 산다는 것은, 정년까지 돈과 시간을 바꾸는 시스템의 족쇄를 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이 족쇄를 풀어헤치는 것을 몇 년 더 앞당길 수 있다면, 알파 창출은 포기하기 어려운 달콤한 유혹이다. 비록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수많은 개인투자자는 돈을 잃고도 매번 다시 시장에 들어간다. 주식뿐 아니라 부동산, 암호화폐 등 모든 자산 시장이 다 마찬가지다. 나 또한 아직 알파 창출의 꿈을 포기하기 어려운 듯하다.
나는 아직 게임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 2020년을 맞아 투자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를 줘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한국 주식시장에서 내가 경험한 실패와 패인을 스스로 복기한 결론은, 내가 이기기 어려운 게임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나 스스로 핸디캡을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한 투자 전략과 방법론은 흔히 '기본적 분석'이라고 하는 방법이다. 기업의 내용, 가치, 질을 한땀한땀 분석해 적정 가치보다 싸면 사고 비싸면 파는 방법이다. 워런 버핏, 필립 피셔, 피터 린치 같은 전설들이 사용한 방법이며, 대부분의 액티브 펀드 매니저와 개인 투자자도 여전히 이 방법을 사용한다.
내가 이 방법을 이용한 투자를 이기기 어려운 게임이라고 적은 이유는 1) 시장에 비해 비교 우위를 지닐 수 있는 나만의 분야가 없고 2) 분석에 사용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은 자신이 시장에 비해 비교 우위를 지닐 수 있는 영역을 Circle of Competence 라고 했으며, 이 영역 안에 있는 대상에만 투자하라고 말한 바 있다. 개인 투자자가 이 조언을 실천에 옮긴다면, 자신이 잘 아는 산업과 기업에만 투자하라는 얘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 내가 몸담고 있는 게임 산업에 투자할 자신이 없으며, 투자한 적도 없다. 내가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서 업계의 생리를 기민하게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내 직무에 해당하는 데이터 산업의 경우 AI, 5G, 클라우드 등이 시장의 관련 테마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고, 딱히 내가 남들에 비해 비교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정보나 지식에 접근할 능력도 없다.
아마도 과거 버핏이 COC를 얘기한 90년대에 비하면, 현재의 지구는 정보혁명이 세상 모든 것을 연결시킨 결과 누군가가 특정 정보의 비교 우위를 가지는 것이 어려워진 상황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정보를 토대로 남들보다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얼마간 지닐 수 있겠지만, 데이터 산업이라는 거대한 세계의 톱니바퀴 하나인 내가, 전업으로 투자 분석을 하는 여의도 애널리스트와 펀드 매니저 분들에 비해 더 나은 통찰을 얻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얘기다. 이 논리를 조금 더 밀고 나가면, 나는 투자 전략에 사용할 수 있는 COC를 보유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물며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경우에는 오죽하랴. 부업 투자자인 나는 분석과 투자 집행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정보를 찾아 읽고 판단하고 투자를 집행하는 경우,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이 일에 사용하는 사람들(기관 투자자, 전업 투자자)에 비해 내가 우월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난센스이지 않은가. 물론 피터 린치와 같은 대가들은 '기관과 다르게 행동하라'고 조언한 바 있다. 그러나 개인 투자자가 기관과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은 사실상 기관들이 소외시킨 중소형주 발굴에 집중하는 것인데, 이 또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따라서 자신이 COC를 지니지 못한 분야라면 '기관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 또한 승산이 높지 않을 것이다. 이 논리를 더 밀고 나가면, 나는 기본적 분석으로 알파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지금은 버핏과 린치가 활동했던 20세기 후반에 비해 많은 것이 변했다. 그들의 교훈 중 많은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달라진 세상을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모든 것이 항상 변하는 세상에 불변의 진리란 없다. 버크셔 헤서웨이도 마침내 아마존에 투자하지 않았던가.
요즘 세상의 가장 큰 변화는 데이터와 AI다. 이 대목에서, 나의 주업이 바로 데이터 분석이므로, 나의 덕업일체는 바야흐로 시대의 대세와도 같은 것이다. 나의 덕업일체는 '주업으로 데이터 분석을 하면서 어째서 부업으로 하는 투자에는 그 방법을 써먹지 않는가? 주업과 부업을 일치시키지 않으면 둘 중 하나에 자신이 없다는 것인가?'라는, 일종의 실존적 질문에 답하는 행위이다. 또 한편으로는, '계량화, 체계화, 자동화된 투자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행위는, 데이터 분석을 직업으로 가진 내가 보유한 COC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서 기본적 분석을 바탕으로한 투자에서 계량 투자로 전향한다는 것은, 나에게 조금 더 승산이 높은 게임을 하겠다는 얘기가 된다.
오래 해오던 생각들을 정리하며 쏟아내는 통에 서설이 너무 길었다. 아래는 짧은 책 소개.
강환국 님의 책은 최근 읽은 몇 권의 퀀트 책 중 단연 최고였다. 저자는 어릴 적부터 해외생활을 하며 주식 투자에 눈을 뜨고 투자자로서의 경력만 10년이 넘었고, 또한 뛰어난 지력의 소유자로 수많은 국내외 투자 대가들의 책과 논문들을 섭렵하셨다. 여지껏 내가 듣고 봐 온 한국 투자자 중 '최고'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 중 하나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이 공부해온 계량 투자의 정수를 손쉽게 풀어 설명하는 동시에, 바로 실천할 수 있는 퀀트 전략들의 엑기스를 뽑아서제시한다. 한 번 읽고 치우기엔 너무 아까운 주옥 같은 책이다. 투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요즘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DC 연금 계좌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니, 책의 초반에 나오는 ETF를 조합한 듀얼 모멘텀 같은 전략은 바로 실행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스터디에 가져갈 발제문
1. 기본적 분석에 기초한 투자와 퀀트 투자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인공지능 투자자 퀀트' 책을 읽어보면, 과거 액티브 펀드 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은 퀀트를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천시하는 경향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 태도에 깔린 생각과 논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런 태도와 비판은 합리적인 생각에 바탕한 것이었을까요? 또 지금은 유효한 것일까요?
2. 기본적 분석과 퀀트는 양립 가능할까요? 서로의 방법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 가능할까요? 각자 최근 유행하는 Quantametal (Quantitative + Fundamental)에 대한 자료를 찾아 읽고 공유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눠 봅시다.
3. 저자는 책에서 수십 가지 퀀트 전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각자 가장 마음에 든 전략을 하나씩 얘기하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생각을 나눠봅시다.
4. 계량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5. (DC 연금 계좌가 있는 분이라면) 자기 계좌에 어떤 상품이 있는지 찾아보고 누적 수익률을 공유해봅시다.
6. ETF를 이용한 듀얼 모멘텀 전략을 시작해 봅시다. DC 계좌가 있는 분은 그걸로 시작하고, 없는 분들은 증권사 계좌가 필요합니다. 계좌가 없는 분들은 계좌 개설을 해오세요. 1년 뒤 기대 수익률과 금액을 계산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