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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Jan 01. 2020

2019년에 읽은 책들

연말정산

2020년 새해 첫날이다. 새해를 맞기 전 한 해 동안 읽은 책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고질적인 게으름 탓에 역시나 해를 넘겨버리고 말았다. 연말 연휴 동안 하고 싶었던 책 읽기, 글쓰기, 코딩도 거의 손도 대지 못한 채 이렇게 내일 출근을 앞두고 있다 ㅠㅜ 내가 석사 논문 주제로 '계획 오류 - Planning Fallacy'를 선택했던 것은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연휴 내 밀린 숙제 중 하나라도 하려면 무엇일까 고민을 하다가, 2019년에 읽은 책을 정리하기로 했다. 나는 여유 시간의 가장 많은 부분을 읽고 쓰기에 할애하기 때문에, 읽은 책을 정리하며 스스로를 복기해보는 일은 꽤나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세어보니 총 26권을 읽었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몇 권을 더하면 대략 30권 정도를 읽은 것 같다. 독서 목록을 주제 별로 경제 및 투자, 정치, 국제 정세, 과학, 기타로 나눠 정리해보았다.



1. 경제 및 투자


2019년은 트레바리의 돈돈을 두 시즌 했기 때문에 단연 이 분야의 책이 가장 많다. 책 목록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하워드 막스로부터는 투자 행위 전반에 대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홍춘욱과 이찬근 님의 책은 교수님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의 태도로 읽었는데, 특히 이찬근 님의 책은 쉬우면서도 깊이를 놓치지 않는 훌륭한 책이었다. 비크람 만샤라마니로부터는 시장의 쏠림에 관한 여러 단면의 통찰을 배울 수 있었다. 마히르 데사이로부터는 삶의 모든 요소를 금융의 관점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시야를 얻었고, 이어서 삶의 모든 단면이 다 통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언제나 뼈를 때리는 나심 탈렙의 책으로부터는 불확실성에 대한 존중, 겸허함이라는 교훈을 다시금 새길 수 있었다. 워런 버핏의 책은 제대로 읽은 게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특히 8월의 무서운 폭락장에서 읽어서 온몸의 뼈가 도끼로 해체당하는 듯한 반성을 할 수 있었다. 영주 닐슨 님의 책은 내가 데이터 분석이라는 직업과 주식 투자라는 부업을 덕업일체 하려는 마음을 먹으며 읽은 것으로, 나의 덕업일체 의지에 자신감을 더해주었다. 이외 몇 권의 퀀트 책을 더 읽었으나 게을러서 아직 정리를 못한 것이 아쉽다.


이렇게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나, 실제 투자자로서 내가 한 행동을 복기하면 부끄러움과 반성이 남는다. 진지하게 투자를 한지 이제 만으로 2년, 한 해 동안 읽은 책들의 교훈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올해에는 더 성숙한 투자자가 될 수 있기를 다짐해본다.


책 목록


투자에 대한 생각 - 하워드 막스 독후감

투자와 마켓 사이클의 법칙 - 하워드 막스 독후감

환율의 미래 - 홍춘욱 독후감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 - 이찬근 독후감

붐버스톨로지 - 비크람 만샤라마니 독후감

금융의 모험 - 마히르 데사이 독후감

블랙 스완 - 나심 탈렙 독후감

호황 Vs 불황 - 군터 뒤크 독후감

워런 버핏 바이블 - 워런 버핏, 리처드 코너스 독후감

월스트리트 퀀트 투자의 법칙 - 영주 닐슨 독후감



2. 국제 정세


주식투자 수익률이 좋지 않은 원인의 하나가 미중 무역분쟁이어서 미중 패권 분쟁을 공부해보게 되었고, 이 생각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국제 정세로, 이어서 민주주의와 정치라는 주제로 연결되었다. 역시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레이쓰하이의 책은 중국 뽕이 찐하게 들어간 책으로, 미국을 세계 경제의 수탈자로 악마화하고 이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나는 주체로 중국을 묘사했다. 피터 나바로는 이와 정반대로, 세계질서의 수호자 미국과 이 질서를 위협하는 사악한 중국의 모습을 그려내며 경제 보복과 기술 패권 견제를 주장했다. 미중 무역분쟁이라는 현상 기저에 있는 근본적인 긴장관계다.


중국이 차기 패권국의 반열에 오른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이때부터 중국은 전 세계의 인플레이션을 수입하며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불과 몇 년 만에 G2라는 칭호를 얻는다. 이런 배경에서 2011년 멍크 디베잇은 국제 정세 분야의 저명한 연사 4인을 초청해 'Does the 21th Centry Belongs to China?'라는 제목으로 토론을 개최했다(Youtube 링크). 이 토론을 정리한 대담집이 아래 '21세기 패자는 중국인가'라는 책이었는데, 2011년 시점으로 돌아가 당시 사람들의 인식과 전문가들의 예상을 복기할 수 있었다. 이 토론은 헨리 키신저 측의 압승으로 끝난 듯 보였는데, 이 관심을 이어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와 '중국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헨리 키신저의 세계질서로부터는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일단 방대한 세계사를 밀도 있게 압축한 필력이 독보적이다. 기나긴 세계사의 수많은 사건들을 압축하면서도 의미 없이 생략되는 정보를 최소화하려는 듯 무게감을 놓치지 않는다. 덕분에 읽는 시간은 꽤 많이 걸렸다. 어떤 사람들은 제국주의자라고 욕하는 키신저 옹이지만, 그는 진정 20세기 후반 국제 정세와 외교의 산증인인 특급 레전드다. 이런 훌륭한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키신저를 깎아내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당신이 지적으로 오만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세계 질서를 읽고 요약하느라 에너지가 털려서인지 중국 이야기는 읽은 다음에 1/3 정도 요약하고 멈춰 있다. 올해 짬이 나면 다시 정리해야지.


실전 외교의 산증인인 키신저와 달리, 국제관계학 분야의 학자인 미어셰이머 교수는 강대국이 어째서 대립하고 공격할 수밖에 없는지를 자신의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으로 논증, 논증, 또 논증한다. 학자가 쓴 책이라 다소 무겁고 지루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강대국 간 패권 경쟁의 본질을 치밀하게 파고들어 현재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


책 목록


G2 전쟁 - 레이쓰하이 독후감

21세기 패자는 중국인가 - 헨리 키신저, 파리드 자카리아, 니얼 퍼거슨, 데이비드 리 독후감

웅크린 호랑이 - 피터 나바로 독후감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헨리 키신저 독후감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 존 미어셰이머 독후감



3. 정치


학부 시절 수강했던 방법론 수업에서 칼 포퍼를 만난 지 십 년이 더 되어, 마침내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읽었다. 원체 두껍고 밀도가 높은 책이라 어렵게 읽어 나갔지만, 읽는 내내 흐엉헝 포퍼형 ㅠㅠ 하는 감동의 쓰나미를 경험했다.


포퍼는 이 책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칼 마르크스를 '역사주의'라는 이름으로 나란히 줄 세워서 논파한다. 그는 이렇게 적어나간다. "이 세상에 확실한 진리나 결정된 미래 같은건 없다. 유토피아적 세계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는 사상들은 애초에 글러먹은 시도였고 예외 없이 인류 지성사의 해악이었다. 이런 해로운 생각들에 맞서 비판적 합리주의를 제안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다."


이어서 포퍼는 그가 과학계에 제안했던 반증 가능성, 비판적 합리주의의 원칙을 현실정치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포퍼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건 1938년, 히틀러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했을 때였다. 이때부터 5년에 걸쳐 책을 써내려 나가며 '유해한 생각들'과 맞서 싸웠다. 불굴의 투혼이 느껴진다. 흐어헝 포퍼형 ㅠㅜ


포퍼를 읽고, 한편으로 국제 정세에 관심을 가지며, 자연스럽게 현실 정치로 관심이 돌아왔다. 트레바리의 민주주잉이라는 클럽을 하며 천관율 기자님과 네 달 동안 독서 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천관율, 박상훈, 이철승 님의 책으로부터 최근까지 한국 정치가 고민해왔던 문제들, 지금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볼 수 있었다. 토니 주크와 로널드 드워킨의 책을 읽으면서는 정치 선진국의 학자들이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해온 고민들을 접할 수 있었다. 막말과 개싸움이 난무하는 저급한 민주주의가 아닌, 대화와 토론과 타협이 있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21세기에는 철학보다는 진화심리학의 조언이 민주주의에도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어떤 때는 개싸움을 하고 어떤 때대화를 하는 이유는 유전적으로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싸움을 줄이고 대화를 하게 하려는 시도의 올바른 첫 단추는, 인간 마음의 유전적 설계도를 이해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배틀그라운드는 올해 읽은 책 중 마지막 숙제 같은 느낌으로, 약간의 강제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해 읽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페미니즘을 잘 알지 못하고, 어떤 이데올로기의 추종자가 될 생각도 없지만, 페미니즘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의 해오지 않았으면서도 막연하게 두려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모든 인간은 차별받지 않고 존엄한 인격체로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는 인권 명제에 거역할 의도는 추호도 없으며,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이 명제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페미니즘의 이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책을 읽으며 낙태, 재생산권, 대리 임신, 성소수자 등 민감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토론을 통해서는 '일단 잘 듣는 일'의 중요함을 새삼 무겁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잘 모르는 주제가 있다면, 나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이를 고민하고 현실에서 부딪혀온 사람들의 의견은 일단 충분히 들어봐야 한다.


책 목록


열린 사회와 그 적들 - 칼 포퍼 독후감

정치의 발견 - 박상훈 독후감

천관율의 줌아웃 - 천관율 독후감

불평등의 세대 - 이철승 독후감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 토니 주크 독후감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 로널드 드워킨 독후감

배틀그라운드 - 성과 재생산 포럼 독후감



4. 과학


석사 과정에서 사회심리학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은 지 햇수로 8년 만에, 대중로 내 전공 심리학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만 여기서 읽은 책들의 수준이 거의 전공서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 함정. 심리학, 뇌과학, 인지과학의 지식들은 아직 요약되고 일반화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고, 이 사실은 십 년 전 내가 전공 공부를 하던 당시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나의 책 읽는 마음가짐은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주제는 올해 2020년에 더 집중적으로 읽어나갈 것이다. 퀀트 투자를 본격적으로 해볼 요량이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트레바리를 한 시즌 쉬기로 했는데, 신경과학 책을 읽는 사설 독서모임을 하게 되어 사실상 시간을 더 확보하는 효과는 없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술과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겠구나. 한편 개인적으로 가장 읽고 싶은 책은 2005년 초판이 발행되고 2019년 12월에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 '진화심리학 핸드북'인데, 아마 같이 읽을 사람이 없어 혼자서 읽어야 할 것 같다. 술과 잠을 더 줄여야겠다...


책 목록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스티븐 핑커 독후감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 라마찬드란 독후감



5. 기타


가볍게 읽었던 책 몇 권. 차드 멩 탄의 책을 읽고는 사내 명상 동호회 활동을 하게 되었고, 시간이 나는 대로 하루에도 몇 분씩 실천하려는 참이다. 새해의 기운을 받아 명상도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 김창준 님의 책은 친한 사우 님의 책상에 있는 것을 보고 가져다 읽었는데, 애자일의 개념과 실천에 대한 내용이다. 읽으면서 레이 달리오가 '원칙'에 적은 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역시 좋은 생각들은 서로 통하는 법이다.


책 목록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 차드 멩 탄 독후감

함께 자라기, 애자일로 가는 길 - 김창준 독후감



6. 그 외 개인사



여행기 출간


한편 2017년 히말라야를 다녀와서 쓴 글이 전자책으로 출간되는 사건이 있었다. 내 생에 첫 출판물이다. 다만 과거 음악 할 때 냈던 음반들과 마찬가지로 흥행과는 거리가 멀다. 역시 난 흥행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것인가. 아무렴 어떤가, 일단 시작했다는데 의의를 두자.

추석엔 히말라야를 가자 링크



컨퍼런스 참관


RUCK 2019와 네이버 DEVIEW 2019를 다녀왔다. RUCK 2019는 참관기를 정리했고 발표자님 한 분이 친히 댓글도 달아주셨다(링크). 네이버 DEVIEW는 아직까지 정리를 못한 것을 보니 아마 평생 못할 것 같다.



홍콩 대만 여행


국제 정세와 민주주의를 고민하다가, 추석 연휴 때 충동적으로 홍콩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다구간 항공권 글 링크). 지하철에서 본 홍콩 사람들의 불안한 표정, 구룡 항 선착장에서 마스크를 하고 우산을 든 채 전단지를 나눠주던 어느 시위대 여성의 눈빛, 대만에서 (아마도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건너왔다던 대학생 커플과의 짧은 대화, 이런 기억들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사진과 메모를 잔뜩 남겨왔지만 아직 정리를 못했다. 역시 정리를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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