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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경 Aug 26. 2023

1978, 신촌 재즈 클럽 야누스

-그땐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럼 강허달림의 노래라도...

오늘 독서회에서 하루키 때문에 재즈 이야기가 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늘 채택한 도서는 바로 내가 강력추천한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잡문이라 하루키 마니아가 아니고서는 시간 들여 읽을 가치가 있을까 생각도 들지만 이런 책이든 저런 책이든 무슨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므로 아주 불필요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어쨌든 덕택에 저, 아름다운 강허달림도 알게 되었고, 미안해요, 도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독서회에서 문득 옛날 기억이 떠올라 한 대목 들려주었다.

나의 카오스적인 젊은 시절, 신촌의 시장골목에 있던 재즈카페 야누스에 대한 추억을.    


 



1978, 신촌 재즈 클럽 야누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글 좀 쓴다는 또래 아이들과 찾아간 재즈카페 야누스는, 참으로 재즈스럽게(?) 우중충한 시장골목에 자리 잡은 이층이었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오르면 그다지 넓지 않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 나왔는데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요즘 내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 <누추>에 딱 어울리는 그런 장소가 바로 한국 재즈를 태동시킨 야누스였다.       

1978년 즈음이었는데(지금 검색해 보니 신촌의 야누스가 문을 연 게 바로 1978년이라고 하니 나는 완전 선두주자였던 셈이다) 토요일이던가 하여튼 햇볕이 우라지게 환하던 그날 오후, 야누스의 낡은 의자에 허무하기 짝이 없는 몸을 기댔다.

동행했던 친구 역시 문학의 열망으로 나보다는 몇 배 더 카오스적인 삶을 영위하던 때였으므로 당연 퇴폐와 허무가 그득한 눈동자로 술과 담배에 쩐 헝겊인형처럼 헐렁한 몸을 의자에 누이고 있었다. 조악하게 프린트된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대략 서너 곡 정도?      


야누스의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역시 누추하기 짝이 없는 차림새의 서너 연주자들이 무대랄 것도 없이 그냥 앞 쪽에 서서 그들만의 재즈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때 들었던 콘트라베이스의 충격적인 저음이 그 후로도 종종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둥둥거린다.



몇 년 전이던가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서 김영후가 연주하던 베이스도 선연하게 떠오른다. 김영후 베이스 연주에(실은 연주보다도 연주하는 그 모습에) 완전 미쳐버린 황홀했던 그때, 나는 죽을 것처럼 행복했었다. 김영후는 지금 어디에서 그 멋진 모습으로 베이스를 튕기고 있을까... 아,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얼마나 광활하고 깊은가 말이다....      


https://youtu.be/z0q2RWnnvUk?si=1XTmxrsvpwiOXoOc

(그러구러 찾아보니 한국재즈의 새 얼굴로 빛나고 있는 방송이... 감사해요, 김영후. 계속 곁에 있어주세요^^)



야누스에서 들은 연주는 한 곡이 대략 들어도 십 분은 훨 넘는 길고 지루한 곡들이었다. 나는 하품을 참으면서, 밤새 노니느라 자꾸 내려오는 눈꺼풀을 올리려 애쓰면서 겨우겨우 재즈를 듣고 있었다. 그날 라이브로 듣는 재즈는 좀 묘하기는 했다. 굉장한 자유가 그곳에 숨어있다... 이것은 첫 느낌.     


불행이라는 단어와 슬픔이라는 단어와 퇴폐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곡이었고, 데시벨이 극대화된 소음 수준의 연주는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도저히 잠이 들 수는 없게 만들었다. 시끄러웠고, 그것은 절규에 가까웠고, 그 절규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서러움 같기도 했다.     


한없이 초라한 연주자들의 연주 실력은 모르지만, 마약에 쩐 인간들처럼 완전 음악에 빠진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다. 마치 삶을, 자신의 인생을, 재즈에 팔아먹은 듯한 모습은 경건했다. 그랬다. 그들은 신처럼 재즈를 숭배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가난하고 고달픈 재즈연주자들은 흠뻑 땀에 젖은 채 길고도 지루한 곡을 제 흥에 겨워 미친 듯이 연주하더니만, 이윽고, 겨우 끝이 나자, 대여섯 명 앉아 있는 객석을 향해 인사를 하고 서로의 등을 투덕이며 허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이 기웃거리는 곳은 바로 시장의 허름한 순댓국집이거나 돼지껍데기를 파는 노점 식당, 뭐 그런 곳이었다. 허리춤에 손을 넣고, 뒤늦은 점심이거나 이른 저녁(분명하게 말하건대 싸구려 막소주도 끼어있을 그들의 가볍고도 무거운 식사)을 위하여 좀 더 싼 시장 골목의 식당을 찾아 구부정하게 걷는 그들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모습을 멀찌감치 지켜보았던 젊은 우리들의 가슴에 <슬픈 예술가의 초상>을 여지없이 보여준 그들이.... 지금 한국 재즈계를 일군 제일주자들이었다는 사실은 요즘에사 알게 되었고, 신촌 야누스의 계통을 이어받아 럭셔리한 서초동 어디쯤에 재즈카페 야누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조금 전, 검색해서 알게 되었다....      


신촌 야누스 시절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만 스무 살이었던 칸나의 지난날들도 오롯이 떠오른다.... 신촌... 그곳에는 지금 미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고은(하지만 당시에는 아우라가 장난 아니었다)이 드나든다는 카페 사포를 자주 들렀다. 사포. 고대 그리스의 여류시인 Sappho.     


추억에 사로잡혀 줄줄 써놓은 이하, 글을 다시 읽어보고 놀라 자빠져서 자기 검열에 의하여 삭제시켰다.

너무 깊게 파면 상처와 고통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는, 젊은 날의 초상이었다.


 




강허달림의 미안해요, 는 열 번을 연이어 들어도 질리지 않더라.


https://youtu.be/wsDdzlrLnM0?si=9OcWZyLOAI6432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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