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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경 Sep 15. 2023

텅 빈 항아리의 시간

-2023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내가 집을 떠난 건 5월이다.

생의 지도에 방향지시등이 꺼지고 엉망으로 헝클어진 털실 뭉치처럼 길이 보이지 않게 된 어느 지점에서 나는 손을 들었다. 포기가 좀 더 빨랐거나 늦었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파산을 신청하고 제발 파산이 승인되기를 간절하게 기다리던 비극적 간절함은 오히려 낭만적이었다. ‘모양이 별로 좋지 않은’ 무엇인가가 내 몸 어디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의사 앞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을 수 없었다. 하필 파산이 승인된 날이었고, 불화의 끝을 보던 가족과 화해했던 날이었고 하필 화창한 봄날이었다.

흐드러진 넝쿨 장미 몇 송이를 꺾어 들었다. 작고 단단한 가시에 찔렸지만 아프지 않았다. 핏방울이 듣는 손끝을 보며 고통의 감각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내가 원한 것은 단 하나, ‘삭제’ 키였다. 그 무엇보다 내가 나를 지우고 싶었다. 그것이 안 된다면 내가 알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싶었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잊기를 원했다. 아, 한 순간이라도 제발.


그래서 떠났다. 한 달간 머물 수 있게 된 지방 소도시의 집필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이었고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내가 이제껏 써왔던 글들은 나를 현실적으로 살게 해주지 못했는데 작가라는 명칭 하나는 나를 한 달 먹여주고 재워주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우스웠다. 

휑하리만큼 넓은 공간에 우직해 보이는 나무책상 하나만 놓인 방이었다. 커다란 창문으로 창밖의 녹음이 고스란히 눈으로 들어왔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키 큰 나무들이 우거져있는 울창한 숲, 짙거나 엷은 초록의 이름 모를 작은 나무들과 덤불숲, 잡풀이 제멋대로 뻗어있는 야생 그대로의 작은 들판이 창과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고요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책과 원고뭉치들을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제껏 짊어지고 살아왔던 모든 인생의 짐을 다 내려놓는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지켜야 할 규칙은 세 번의 식사 시간, 단 하나였다. 식사를 하지 않으면 표시를 해 놓으면 되었다. 먹을 수 있는 권리도 있지만 먹지 않을 자유도 있다. 누구와도 만나지 않을 자유, 말하지 않을 자유, 무엇보다 자신으로부터 닦달당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보일 듯 말 듯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그런데 이상했다. 갑자기 졸음이 걷잡을 수 없이 몰려왔다. 펼쳐보지도 않을 책과 들여다보지도 않을 원고뭉치를 발치께로 밀어놓고 무겁고 육중한 커튼을 쳤다. 방은 깊은 물속처럼 고요하고 어두워졌다. 가냘프기 짝이 없는 얄팍한 요에 누워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잠들었다. 죽음보다 깊은 잠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어스름 저녁과 깊은 밤과 새벽녘 잠시 눈을 떴다가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누군가 흐느끼는 것 같았다. 그게 나인지 아닌지 분명치 않았다. 누군가 책을 읽고 있었고, 누군가 빨간 펜으로 출판 교정지마다 전부 돼지꼬리를 그리고 있었다. 현실과 꿈이 구분되지 않은 채 한없이 깊은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커튼을 젖히자 햇살이 눈을 찔렀다. 오월이 가득한 창문 밖 풍경을 무연히 바라보다 다시 커튼을 쳤다. 그렇게 잠을 많이 잤는데도 졸음이 걷잡을 수 없이 몰려왔다. 창을 가득 메웠던 물오른 나무들과 산들거리는 바람과 잿빛 덤불 위에 앉아있던 새까지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식당 앞 메모지에 식사를 하지 않겠다는 표시를 하고 돌아올 때까지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방의 불마저 끄니 마치 밤처럼 어두워졌고, 그 어두움은 이내 아늑함으로 와닿았다. 만 하루 동안 그렇게 잠 속에 빠져들었다. 일상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졸음은 끝없이 몰려왔다. 나는 계속 잤다. 식사 시간 알람이 울리면 식당으로 내려가 조용히 밥을 먹었다. 식사를 하는 사람은 셋이기도 했고 넷이나 다섯이기도 했다. 간략하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면 새삼 한낮의 햇볕이 따갑게 등짝에 달라붙었다. 잘 손질이 된 드넓은 잔디밭에는 유아용 플라스틱 자전거가 홀로 햇살 아래 놀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가 커튼을 조금 젖히고 창밖을 바라보면서 담배를 피우고 잠을 자고, 식사 시간 알람이 울리면 식당으로 내려가 셋이나 넷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고 말없이 목례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담배를 피우고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자고.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하지만. 나의 생에서 가장 무의미해 보이는 한 달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후 깨닫게 된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발로 걷어차 버리고 싶었던 현실을, 혹은 운명을 부드러운 눈매로 볼 수 있게 되었고, 향방을 알 수 없는 갈림길들이 다 의미 있게 보였거니와 서른 번씩 마흔 번씩 이어진 호된 치료의 순간들조차 한낱 배앓이처럼 쉽게 넘어가게 되었으니. 게다가 어깨를 나란히 했던 문우들의 수상 소식에도 기쁘게 꽃다발을 챙기게 되었으니.

조르주 아감벤은 환상이 중단된 환멸의 시간만이 진리의 장소라 했다. 그것은 견딜 수 없이 공허한 우울증의 시간이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진리를 담을 수 있게 될 ‘텅 빈 항아리’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도저히 승복할 수 없었을 텐데 이제는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내처 잠을 잔 것뿐이었는데도 생의 이면은 가끔 개안을 경험하게 하는 것 같다. 그 구절에 밑줄을 치면서 생각했다. 현실이, 일상이 바로 환멸의 시간이며 견딜 수 없이 공허한 우울증의 시간이라는 것을 절감해야 비로소 진리를 담을 수 있는 ‘텅 빈 항아리’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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