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아들 육아 일기

잊혀질게 아쉬워서

by 니트

서른이 넘어서야 받아들인 사실인데, 나는 기억력이 별로 좋은 편이 아니다. 학창시절에 암기과목 백점이야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공부 잘한다는 축에 항상 끼어있었으며 나름 대학도 성공적으로 진학했기에, 단 한번도 내 기억력이 나쁜편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야 내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라는걸 깨달았다. 아내와 십여년을 함께 지내며 여러 이야기를 하다보니, 나라는 사람은 '주로 기억하고 싶은 것' 위주로 기억하고, 그 바운더리 밖의 것이라면 꽤 많은 것들을 금방 잊어버리는 편이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삶이 불편한게 아니라, 오히려 한정된 기억의 저장공간을 적극 활용하여 속 편히 살아가는, 그런 재능이 있더랬다.


어쩌면 복 받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고 아름다운것보다는 안좋은 것들이, 더 자극적인 것들이 사방에 넘실거리는 세상이기에, 너무 많은 것들을 기억하며 살아가기에는 꽤 벅찰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래도 나라는 사람은, 어렸을 적의 사색과 감정을 소중히 했던 사람이고, 그게 아쉬워 사진과 글을 써보기도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지나가고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꽤 큰 편인 사람.


래퍼 넉살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얼마 전 유튜브에서 그런 말을 하더라. 음악을 준비하는 일이 지친다고. 앨범 준비를 위해서는 내 안에 깊이 들어가야하는데, 그게 굉장히 지치고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드는 일이라 힘들고 지친다고. 난 그와 같은 아티스트도 아니지만 그 말이 이해되고 공감했다. 어떤 형태로든 나의 생각과 감정을 유형의 것으로 치환하는 일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과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일이니까. 혈혈단신 대학생 시절에는 젊음과 사랑, 로망 같은 것들 덕분에 사색에서 창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꽤 즐거웠던것 같다.


취직, 결혼, 출산과 육아라는 현실에 본격적으로 진입해선, 처음 겪는 일들과 어려움, 처음 느끼는 행복, 그런 온갖 것들의 파고속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간 같은 건 사치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글 같은 건 쓸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그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다.


그러다 문득, 아들이 말이 잘 통하고 말을 잘 안듣는 일곱살이 되어서야, 갑자기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아쉬워졌고 붙잡고 싶어졌다. 육아일기를 써볼까 라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아니다.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는 SNS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일이니, 나도 해봐야지 라는 마음을 먹어본적도 몇 번 있다. 그런데 '글쓰기'라는 것이 내게는 무언가 내 안을 꼭 깊이 들여다봐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을 먹다말곤 매번 외면하기만 했다. 사색할만큼 잔잔한 감정, 어쩌면 약간은 우울한 그것의 수면 아래로 들어가기에는, 가족과의 하루하루가 행복했고, 늘어만 가는 아들의 재롱에 웃음꽃 피지 않은 날이 더 적었다.


올해로 일곱살이 된 아들은 클 수록 늘어난 재롱만큼, 그 언변도 날로 화려해져 간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주제의 대화와 때론 심도 있는 대화가 꽤 오랜시간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미운 네살, 미친 일곱살' 중 후자의 단계에 위치하여 인성 교육에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요즘. 우리의 대화를 글로 남겨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형태는 어쩌면 여타 수 많은 육아 일기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내가 갖고 있던 글쓰기의 무겁고 어두운 색깔을 지우고, 너와의 대화를 소재로 삼아,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가는 소중한 지금을 글로나마 남겨보려한다. 너 혹은 나의 성장 일기가 될 지, 이 글 들을 누가 어떤식으로 읽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너를 향한 마음이 찬찬히 남아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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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