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커피 한 잔만 사줘라

그게 그렇게 아깝냐...

by 니트

아들은 요즘 부쩍 '돈'에 흥미가 생겼다. 한 달 전에는 은행에 견학을 가선, 본인 통장에 입금이라는 것도 해보고 왔다. 이자 개념도 약간은 어설프지만 배워온 것 같다.


"어차피 은행에 돈 맡기면, 조금 지나서 다시 얼마얼마 붙여서 주거든?"


'어차피'로 시작해서 '~든'으로 끝나는 퉁명스러운 의문문 형식의 문장이 상당히 거슬리지만 일단 참고 넘어가본다. 특별히 기분나쁘게 한 말이 없는데 왜 이런 식의 문장을 전개하는걸까. 후, 다음에 지도해봐야지.


하루에 돈을 최소 세번씩은 센다. 여행가서 쓰다 남은 외국 돈들까지 어디서 다 모아와서는 본인 지갑이랍시고 만들어놓은 하얀 봉투에 빼곡히 넣어뒀다. 심지어 환율 개념까지 이해해서는 계속 베트남돈 1만동이 지금 얼마냐고 물어본다. 할아버지에게 받은 쌀집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며 공책에 원단위까지 착실히 적어본다.

393,147원


"아들, 근데 돈 아까도 셌는데 왜 또 다시 세는거야?"

"이게 자꾸 변하거든? 구글한테 물어봐봐. 1달러가 1395원이었다가, 조금 내려갔다가 막 그래."

"그럼 대충 1400원으로 해서 계산해두면 되잖아. 그걸 왜 자꾸 다시 계산하는데?"

"나 이거 정확하게 해야한단말야. 백만원 모아야 해"

"백만원 모아서 뭐하려고?"

"백만원 모아서 핸드폰 사려고"

"핸드폰 사서 뭐하려고? 어차피 핸드폰 사봤자 아들 하고 싶을때마다 핸드폰 막 마음대로 못 해. 그리고 백만원 모아서 가봤자 어차피 아들한테 사장님이 핸드폰 안팔아 너무 어려서"


아, 어차피는 나한테 배웠나. 허무주의의 씨앗 같은 이 단어는 진짜 내가 가르쳤던건가. 하루에 세번도 넘게, 본인 TV 볼 시간도 줄여가며 희망에 부풀어 매일 돈을 세는 아이에게, 내가 그 씨앗을 심은 범인이었나. 이번이 아니라 그 전에도 말한 적이 있겠지. 앞으로 말하기 전에 '어차피'라는 단어는 최대한 걸러내기로 한다.


"아들, 근데 돈 많이 모았으니까 아빠랑 카페 나갔다 올까? 아들이 모은 돈으로 아빠 커피 한 잔 사주고, 아들도 먹고 싶은 거 하나 사먹고. 어때?"

"이 돈으로? 음.. 안 돼"

"왜 안돼~ 돈 많이 모았잖아~ 아빠랑 나갔다 오자~"

"그럼 아빠 돈으로 사먹고 오자!"

"물론 아빠 돈으로 사먹고 올 수 있는데, 아들이 모은 돈으로 아들이 아빠 커피도 사주고, 아들 먹고 싶은 것도 사먹고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안 돼! 나 이거 더 모아야 해"

"음, 근데 아들. 돈은 사실 쓸 때 가치가 있는거야. 이렇게 모아서 쌓아두면 이건 그냥 종이고 금속일 뿐이야. 돈을 갖고 내가 원하는 걸 사서 그걸 소비할 때 돈이 가치가 생기는거지. 아빠는 아들이 아빠 마시고 싶은 커피 사주고, 그거 시원하게 마시면 기분이 엄청 좋을 것 같은데?"

"그.. 커피 뭐 그거 많이 마시면 몸에 안좋거든? 왜 맨날 커피 그런거 막 마시는데!"


사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아니, 거의 40만원에 달하는 돈이 있는데 비싸봐야 5천원도 안하는 커피 한 잔을 아빠에게 사줄 생각이 이리 없다니. 사주기 싫어서 커피 과다 복용의 유해함에 대해 역설하다니. 상당히 서운함이 밀려온다. 것보다도, 돈을 저축가치에 편향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소비 할 때의 가치와 그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졌다.


"아빠가 커피를 마시면 시원하고 맛있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주말 아침에 아들이 모은 돈으로 커피사러 같이 나가면 그렇게 시간보내는게 또 되게 즐겁고 좋지 않을까? 아빠는 오히려 그게 더 좋을 것 같은데? 그게 돈을 써서 얻게 되는 가치 중의 하나야. 아빠는 아들이 그걸 이해하면 좋겠어서 말해주는거야"

"음.. 음... 커피 그거 얼마정도 하는데?"

"(오?) 커피 비싸봐야 5천원 안해!"

"그럼 아빠가 나한테 만원 주면 내가 그걸로 아빠 커피 사주고, 나 간식 사먹을게"

"... 그게 뭐야. 그럼 그냥 아빠가 직접 사먹지. 아들이 모은 돈에서 사줘야 아빠한테 의미가 있는거지"

"아냐.. 그럼 나는 간식 안먹어도 돼"


커피 가격을 물어 볼때만 해도 소비의 가치에 대해 이해하고 아빠에게 5천원 정도야 쓸 마음이 생겼구나 했는데, 다음 멘트가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아니, 너는 아빠한테 고작 5천원도 못쓴다고? 심지어 본인이 그렇게 좋아하는 간식 사먹는것도 포기할 정도라고? 야, 내가 너 키우는데 얼마가 드는데 지금. 진짜 너무하는거 아니냐?' 따위의 말들이 떠올랐지만,


그래, 너가 정말로 그런 마음이어서 지금 그러는게 아니지. 아직 잘 모르니까. 돈이라는게 어떤거고, 어떻게 모아서 어떻게 쓸 때 그 가치가 있는건지 잘 알지 못하니까 그런거지. 라고 이해하기로 했으나, 이해와 별개로 상당한 서운함은 마음에 남아서, 보란듯이 나가서 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내의 라떼만 당당히 사들고 들어왔다. 내 돈으로.












"엄마, 아빠랑 발 사이즈가 어떻게 되더라?"

"엄마는 245고 아빠는 275 왜?"

"아니, 그 저번에 아빠가 운동화 불편해한다며. 요즘에 막 편해서 사람들 많이 사 신는 브랜드 있어. 사줄테니까 아빠랑 신어봐"

"아유 됐어, 너네 아빠 막 발등 불편하다고 엄청 까탈부려. 엄마가 알아서 사줄게"

"아냐, 엄마네로 바로 배송 보낼테니까 잘 신어봐. 진짜 좋대. 장인어른 장모님도 처남이 사주고나서 이것만 신고 다니시더라"

"그래? 알겠어. 고마워 아들. 너무 또 비싼거 사는거 아냐?"

"아냐 괜찮아. 아빠랑 잘 신어"


KakaoTalk_20250809_012630780.jpg


keyword
수, 금, 일 연재
이전 01화갑자기, 아들 육아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