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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네 숙제냐, 내 숙제냐

그냥 빨리 끝내고 놀면 안 돼?

by 니트

내 어렸을 적과 비교하자면 정말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아들을 보면 가끔은 부러울 때가 있다. 어렸을 적 1년 내내 크리스마스만 기다려서 갖고 싶었던 레고 선물을 받으면 한 달을 넘게 만들었다 부쉈다 하곤 했다. 장난감이라는 게 수시로 살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 하나하나가 굉장히 소중하고 한 번 사면 그만큼 오래 갖고 놀았다. 지금으로 치면 키즈카페 같은 것도 그 당시엔 한두 종류 정도밖에 없었고, 비싼 가격에 잘 가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지금 아들의 방에는 레고만 해도 십여 종류에 각종 장난감이 잔뜩, 심지어 국내에서는 팔지 않아 해외 직구까지 해온 장난감도 있다. 주말이나 연휴만 되면 키즈카페, 캠핑, 호캉스, 아이들을 위한 각종 박물관 및 체험 시설들까지. 난 이런 것들 없이도 잘 놀았고 잘 컸는데, 가만 보고 있으면 괜히 상대적으로 내 어린 시절이 초라해지는 느낌까지 받을 지경이다.


하지만 놀이의 퀄리티가 올라간 대신, 놀이의 퀀티티 즉, 노는 시간은 내 어린 시절이 압도적 승리다. 아들의 하루 일과는 여느 성인못지않게 바쁘다. 아침에 일어나 준비하고 유치원에 갔다가 4시쯤 하원을 한다. 1시간 정도의 휴식 후에 영어 혹은 학습지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수학 학원에 가거나 수영학원에 간다. 학원에 가지 않는 날이라고 마냥 놀 수도 없다. 유치원에서는 매일 숙제가 주어지고, 학습지는 당연히 매일 열댓 장을 해야 한다. 거기에 학원 숙제라도 겹치는 날이면 10시 전에 잠들기까지 아주 빡빡하다.


"아빠, 이제 뭐 하고 놀까?"

"아들, 유치원 숙제랑 학습지 다했어?"

"아 또, 왜 그런 걸로 신경 써! (*아들에게 '신경 써'라는 표현은 '아 왜 그런 이야기를 해' 같은 표현이다)"

"시간 늦으면 이따 졸려서 더 하기 힘드니까 다 끝내놓고 놀자, 응?"

"... 티브이나 봐야겠다"

"아들!"


나라고 너에게 숙제부터 하라고 잔소리하고 싶을까. 넌 겨우 일곱 살인데. 난 일곱 살 때 겨우 학습지 정도하고 남은 시간은 잔뜩 놀았던 것 같은데. 조금 더 커서는 엄마에게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할 거 다 했어?"라는 말이었다. 그랬던 그 말을 매일 저녁마다 아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시대의 흐름이 그렇게 변했고, 난 자유분방하게 혹은 일곱 살인 너를 온전하게 믿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키우기에는 배포가 작고 비겁하다. 해줄 수 있는 만큼 해줘야, 나중에 커버린 너의 탓을 듣더라도 변명거리가 있을 테니까. 그게 나의 탓이 아니라 너의 탓일 여지가 있을 테니까.


저녁 8시. 유치원 숙제와 학습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오늘도 팽팽한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알아서 후딱후딱 빠르게 해치우고 놀았으면 좋겠는 아버지와 숙제만 앞에 두면 갑자기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고, 쉬가 마렵고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이 재밌어지는 아들의 줄다리기. 1라운드는 서로 탐색전을 펼친다. 알아서 차근히 잘해나가는 액션을 보이는 아들, 그 모습을 칭찬하며 응원해 주는 아빠. 그러다 어려워서 모르는 문제가 나오거나, 숙제시간이 10분여를 지나갈 때쯤 아들의 태세전환이 시작된다.


"아빠, 근데 있잖아 저번에 나 돈 얼마 모았더라? 지금 다시 세봐도 되나?"

"아 목말라, 아 더워.."

왼쪽 팔을 식탁 위에 쭉 뻗고 머리를 기대 반쯤 누운 채 글씨를 휘갈겨 쓰며 억지로 하기.

학습지에 의미 없는 선들을 쭉쭉 그어대며 시간 끌기.


빨리하고 끝내면 되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참을 인을 세 번씩 마음속에 새기며, 다정하게 물도 떠다 주고 에어컨도 틀어줘 본다. 자세를 고쳐 앉으라며 조언도 해주고, 절대로 읽지 않는 영어단어를 대신 읽어주며 '그래, 안 읽으면 듣기라도 해라'라는 마음으로 숙제 지도를 한다. 그러다 일부러 힘 없이 놓아버린 연필이 바닥에 떨어지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억눌러놨던 짜증이 확 솟아오른다.


"아들, 내가 일부러 연필 떨어트리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얼른 직접 주워. 그리고 똑바로 앉아서 해. 지금 이게 내 숙제야? 너 숙제지. 그렇게 하기 싫으면 그냥 하지 말고 가. 내가 안 하고 가도 된다고 했지. 지금 네가 한다고 해서 여기 앉아서 내가 옆에서 도와주는 거 아냐?"


고작 연필 하나 떨어트렸을 뿐인데, 순식간에 말로 몇 대를 맞아버린다. 다른 변명으로 막을 틈도 없이 무섭고 속상한 말들이 와장창 쏟아져 내린다. 굳어버린 표정과 엄해진 목소리 때문에 결국에는 서러운 눈물이 맺혀선 숙제 위에 눈물을 뚝뚝 떨어트린다. 그깟 숙제 때문에 일곱 살 아이의 눈물을 쏙 빼고 나서야 겨우 이렇게 밖에 자녀를 지도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들어찬다. 우리는 이런 걸 몇 번을 더 해야 더 이상 이런 씨름을 안 할 수 있을까.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내가 방법을 모르는 거지.



아들을 키우면서 새로 가장 많이 보게 된 유튜브 채널이 있다. 최민준의 아들연구소. 최근에 본 내용 중 하나가 떠올랐다. 아이가 무언가 열정을 가지고 하려면 그걸 해보려는 '각'이 나와야 한다고. 그 '각'이 나오려면 '작은 성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들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봤다. 아들에게 숙제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어른인 나는 '해야만 하는 일'이 갖는 의무적 성격에 대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옆에서 지키고 감시하면 어쩔 수 없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들이 이를 자발적으로 열정 있게 하기를 기대했다. 나는 살면서 얼마나 자주 '해야만 하는 일'을 '열정적이고 자발적으로' 했었나. 그걸 일곱 살, 아니 만 5세에게 기대한다면 그건 기대하는 사람이 이상한 게 아닐까.



어느 날 유치원에서 장난감을 받아와서는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해줬던 게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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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수업에서 어떤 어떤 걸 잘하면 피쉬를 받아. 그리고 그 피쉬가 5개 받으면 버블이 1개가 돼. 그리고 그 버블을 5개 모으면 트레져를 받는데, 그 트레져를 받아서 오늘 이 장난감 받았어!"

"오 그래? 엄청 멋진데? 그럼 이제 아들은 버블이 몇 개야?"

"이번에 받아서 버블은 이제 없고 피쉬만 3개 있는데, 내일 또 가서 잘하면 피쉬 받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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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제 유치원에 버블 몇 개 모았어? 5개 다 모아가?"

"응! 오늘 친구 2명도 버블 5개 모아서 나랑 같이 트레져받는 날이야!"

"우와 엄청 좋겠네~ 가서 멋진 트레져 받아와~"

-


유치원에서는 이미 그 '작은 성공'의 메커니즘을 구현해 뒀다. 아이들에게 수시로 작은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그걸 피쉬 스티커로 제공했으며, 그 성공이 반복되면 큰 보상이 주어진다는 기대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실제로 저 이야기를 할 때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고, 그 시스템에 대해 상당히 재밌어하며 이야기했었다. 그래서 '숙제 완료' = '작은 성공'의 구조를 설계해주기로 했다.


"아들, 이리 와봐~ 앞으로는 매일 숙제랑 학습지를 다 하고 책 한 권씩 읽으면 아빠가 매일 하트 스티커를 한 장씩 줄게. 그리고 그 하트가 7개 모이면 아빠가 이천 원을 줄게"

"우와, 이천 원? 그럼 7개를 두 번 모으면 한 번 더 줘?"

"당연하지, 그리고 이 이천 원은 아들이 노력해서 직접 번 거니까 쓰고 싶은 아무 데나 써도 괜찮아. 원래 먹으면 안 되는 젤리나 초콜릿을 사 먹어도 되고, 프링글스를 사 먹어도 돼"

"우와! 진짜? 아무거나 먹고 싶은 거 골라서 사 먹어도 돼?"

"응, 이건 아들이 그냥 어른한테 받은 게 아니고 직접 노력해서 받은 돈이니까. 그러니까 아들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써도 괜찮아"

"오케이!! 그럼 일단 나 오늘 학습지부터 끝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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