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더비니 Jul 25. 2021

연극 <완벽한 타인>


엄마, 나 배신 당했어


배신감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낀 건 6살 때였다. 친구와 집 앞 놀이터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설레는 마음으로 놀이터로 달려나갔지만 친구는 없었다. 6살의 기준이긴 하나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친구는 나오지 나오지 않았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배신 당했어.” 엄마는 한참을 깔깔 웃곤 말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워 온 거야? 
근데 있지, 
앞으로 친구들이 많아질수록
그런 일들은 더 많아질 거야.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날도 더 많아질거고.



누군가에게 실망했을 때, 더 이상 관계를 맺지 않을 때, '등을 돌렸다'라는 표현을 쓴다. 배신背信의 배도 등 배背를 쓴다. 서로를 믿는 관계여야만 눈이나 입을 맞추고, 가슴이나 배로 서로를 안아줄 수 있기 때문인 걸까. 어떤 상황에서 사람은 '등을 돌린다'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 걸까. 왜 마주보던 이와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걸까.



연극 <완벽한 타인>은 파올로 제노베세 감독의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를 원작으로 한 희곡이다. 국내에는 유해진, 염정아, 조진웅, 이서진 등의 배우들이 연기한 리메이크 영화가 있다. 한 집에 모인 친구들이 특별한 게임을 한다. 게임의 룰은 저녁을 먹는 동안 휴대폰에 울리는 모든 메시지와 전화 내용을 공유하는 것.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 찰리 채플린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 그저 견고하고 완벽했던 타인의 세계가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눈 앞에서 펼쳐지는 무대는 영화보다 더 희극적이었다. 암전을 허용하지 않는 잔인한 연출 탓에 극중 인물들은 잠깐이라도 도망갈 구석이 없다. 당황과 창피, 수치와 분노 같은 어지러운 감정들이 여과 없이 명료하게 식탁 위를 지배한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다급하고 묵직한 비밀이 벗겨질 때마다, 우습게도 객석에서는 연달아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한참을 웃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야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이 넘실대기 시작한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어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고 응원하는 힘으로 삶을 살아낸다. 동시에 불투명한 신뢰와 껍데기만 있는 사랑, 마음 없는 응원들도 분명 공존할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왠지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6살의 나나, 지금의 나나 여전히 소중한 누군가에게 배신감 같은 건 느끼고 싶진 않은데. 언젠가는 이 순수한 희망이 분명 다치고 말 거라는 이 이야기가, 아직도 어리고 여린 마음을 한없이 외롭게 만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아지기 위한 투쟁, 갈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