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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Nov 22. 2023

그쪽도 이바구를 아세요?

#부산도심속양조장 '가마뫼양조장' 방문기

지금은 까마득한 초등학생 시절, 잼민이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준 숙제가 하나 있었다. 무려 공장 견학해 보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삼삼오오 모여 지역 내 공장을 견학해 보고 보고서로 제출해야 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때 인근 동네에 큰 가공품 제조공장이 있었는데 반 친구들 대부분이 함께 그곳을 견학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잼민이는 크게 좌절하고 말았다.


서러움에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훌쩍훌쩍 거리는 찌질한 딸내미의 모습을 본 엄마는 그날 근처에 있는 공장에 쭉 전화를 돌려서 작은 두부공장에 방문허가를 받았다. 정말이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이 어렴풋이나마 떠오르는 건 큰 통에 담긴 몽글몽글 하얀 두부 때문도 아니요, 애 셋을 끌고 생전 처음 보는 공장에 연락해 불쑥 찾아가 이모저모를 직접 견학시킨 당찬 젊은 날의 엄마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애만 혼나쨔냐아!


그녀의 패기를 가장 쏙 빼닮은 딸내미는 무럭무럭 커서 (역시나 엄마를 닮아) 술꾼도시여자가 되었다. 그녀는 또 (이 역시...) 입맛이 매우 까다로웠는데, 부산까지 가서 나름 '단골술집'의 로망을 이루어보겠다며 매서운 미각으로 이집저집 열심히 먹고 마셔재낀 결과 얼마 만에 마음에 드는 술집을 찾았다. 그곳에서 사장님께 부산 지역 전통주라는 '우리이바구'(* 이바구: 이야기의 부산 사투리)를 추천받아 한 모금 마신 그 순간, 꼴깍, 그녀는 직감했다. 어쩐지 이 술에 집착하게 될 것이라고.


마음에 들었던 해운대 미포 '수블' 추천합니데이!


이윽고 어린 초딩의 손을 잡고 도심 속 두부공장을 찾아간 그녀의 엄마의 뒤를 따라 '우리술 이바구'를 만드는 도심 속 '가마뫼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보게 되는데...!!(얼쑤!)




서두가 길었지만 실화다. 단골(이 된) 술집에서 이름도 생소한 오양주라는 '우리 이바구'를 마신 순간 시큼하지만 과하지 않은 기분 좋은 단맛에 그 이름을 머릿속에 담아두었었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기억이 소환되어 구매처를 찾아보다 보니 이 술이 동구 좌천동에 위치한 '가마뫼 양조장'(혹은 전통주 상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지역 전통주라는 거다. 휴대폰만 있으면 뭐든지 새벽같이 배송받는 요즘 같은 때에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아 직접 가져가야 하는 술이라니, 더욱 구미가 당겨 양조장에 전화를 했다.


- 사장님 혹시 아무 때나 술을 구매할 수 있나요?

- 아니지예. 저도 일정이 있어서... 근데 맻병이나 사실라꼬?

- 저 혼자 먹게 세 병만 사려고요!

- 아 혼자예? 세 병이면 뭐 두고두고 마시고, 맞다 숙성하면 더 맛조아예 1년도 갑니더

- 아뇨 올해 안에 다 마실 거 같은데요

- (ㅋㅋㅋㅋㅋㅋㅋㅋ)..흠흠... 연락 함 주고 오이소


수화기 너머 빵 터지는 사장님의 허락을 받고 다음날 양조장 방문을 허락받았다. 찾아보니 이곳은 좌천동 지역주민이 힘을 모아 만든 작은 마을기업이란다. 좌천동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작은 양조장이다 보니, 매장에 상주할 수 없어 사전에 연락을 주고 방문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어쩐지 더욱 프라이빗한 느낌, 한껏 부푼 마음을 안고 양조장을 찾았다.




산복도로를 보면 아 부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날 좋은 날 찾은 가마뫼나들목(양조장)


동구 좌천동 산복도로를 굽이굽이 따라 달리다 보면 한쪽에는 세월이 물씬 느껴지는 작은 건물들이 아슬아슬 모여있고, 그 틈으로 좁다란 계단이 골목과 골목을 이어주고 있다. 다니는 차보다 지팡이 수가 더 많은 것만 같은 산복도로 중턱을 따라가다 보니 여기인가 싶은 평범한 외관의 양조장, '가마뫼나들목'이 나온다.


전화로 요청드린 세 병을 들고 룰루랄라 나오니 아주머니가 따라 나오셨다. 냉장보관만 잘하면 두고 마셔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어머니 걱정 마시라고 곰방 마시고 또 사러 오겠다고 너스레를 떨자 아주머니께서 웃으며 들어가셨다. 문을 걸어 잠 구는 걸 보니 아마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시는 동네 주민인 듯하였다.


병사진은 부끄러워서 집에 오자마자 찍어보았다ㅋㅋ


오양주가 무엇인고 하니 첫술에 덧술을 입혀 발효시키는 작업을 5번 반복하는, 말 그대로 다섯 번 숙성시킨 술이라고 한다. 국내산 찹쌀, 맵쌀, 진주 앉은뱅이밀 누룩과 물로만 만들 그런지 맛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첫 입은 상콤하니 산미가 올라오는데 신맛이 아닌 기분 좋은 산미라서 과일의 느낌이 살짝 맴돈다. 대신 향료가 들어가지 않아 쌀로만 낸 발효주의 산미에 가깝다(왜, 해창막걸리의 산미도 청포도의 향이 나지 않던가!) 와인처럼 호로록 음미하며 마시면 달큰한 맛이 따라온다. 본인은 단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단 맛이었다. 식전주로도 좋지만 부침개나 튀김같은 기름진 우리 요리에도 제법 어울렸다. 도수는 15도, 참이슬 후레시보다 아주 조금 순한 정도. 감미료 없는 술이라 다음 날 숙취도 얼마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단순한 재료가 긴 숙성기간(1년)을 만나 기교 없이 깔끔하고도 깊은 맛을 만들어냈다. 맛있다, 이 술!

 

더 할 나위 없이 맛있다, yes!


귀한 부산 술 세 병을 쟁여두고 귀한 손님을 만날 때 한 병씩 꺼내올 생각을 하니 제법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다 그 옛날 엄마 손 잡고 찾았던 두부공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파트 단지와 멀지 않은 뜻밖의 장소에 위치한 도심 속 작은 공장의 문을 열자 뿜어져 나오던 온기와 따뜻한 김, 커다란 통 속에 담긴 몽글몽글 하얀 두부 덩어리. 친구들과 공장 견학에 함께하지 못 서러움에 찔찔거리던 소심쟁이 초딩은 무럭무럭 자라 부산이라는 타지에 있는 도심 속 작은 양조장도 혼자 문 두드리는 씩씩한 어른이가 되었다!


- 엄마, 나 이렇게 잘 컸어! 그리고 여기 맛있는 술 세 병 샀어! 직접 마셔보고 양조장 찾아가서 사 온 거야!


어쩐지 맞지도 않은 등짝이

살짝궁 아려오는 건 왜일까!?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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