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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Jan 01. 2024

오늘 해운대에는 붉은 해가 떴습니다

#부산 에서 외치는 해피뉴이어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 하루는 새해 첫날을 앞두고 아빠가 부산에서 해돋이를 봐야겠다며 어린 우리를 차에 욱여고 부산으로 향한 날이 있었다. 한참을 졸다가 도착한 부산에서 해돋이를 봤는지 구름에 가렸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유는 몰라도 자갈치 시장에서 점심을 먹었던 순간만은 생생히 남아있다. (그때부터 쩝쩝박사의 싹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제법 지나 팔자에도 없는 부산살이라며 글까지 써 내려가며 버티길 일 년. 한 바퀴를 꼬박 지나 새로운 한 해가 왔다. 몇 주 전부터 짬짬이 보내오는 안부인사 속 '새 해 다짐은 뭐냐'는 질문에 이제는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고 답했다. 매년 어김없이 다가오는 새 해에 장황한 목표나 대단한 소원 따위는 솔직히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비슷한 소원, 뭐 건강 행복 등을 으레 바라고 다이어트나 저축 얼마 따위의 목표를 되새기긴 했지만 크게 간절하기보다는 원래 쓰인 문장을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한번 복기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어린 날 부산 해돋이를 보러가던 그 때처럼, 등 떠밀리듯 새 해를 이곳 부산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2023년 12월 31일. 서울은 함박눈에 연말 분위기 물씬이라는 친구들의 연락을 뒤로한 채 조용한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대신 너무 우울하지 않게 세끼 다 챙겨 먹고 싶어 냉동식품이나 배달 따위는 덮어두고 정성스레 음식을 해 먹었다. 구석구석 그러나 과하지 않게 평소에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청소하고 실컷 잠도 자고 밀린 유튜브도 보며 난방 따스히 올린 방에서 옴싹옴싹 몸을 움직였다. 하룻 내 집에 머문 탓에 이른 시간에 잠이 오지 않아서 버티고 버티다 올해만 세 번째 부산에서 맞이하는 불꽃축제를 방구석 1열에서 조금 즐기 새벽녘에 잠들었나 보다.


갑분폭(갑자기 분위기 폭죽놀이)


2024년 1월 1일. 부산에 있는 거면 같이 해돋이나 보러 가자는 지인의 말에 해변가로 향했다. 해가 구름뒤에 떠오를 준비를 하는 모양인지 바깥이 제법 밝았다. 어디서 또 이렇게 모였는지 모를 인파가 제법 몰려 바닷가로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전국 사투리가 한데 뒤섞인 해운대 모래사장에 도착하자 삼삼오오 혹은 홀로 구름 뒤 곧 떠오를 올해의 첫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평선 따라 구름이 조금 깔린 탓인지 예상 일몰시간보다 20여분 지나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뜬다!'고 외치니 모두 약속한 것처럼 휴대폰을 들어 올해의 첫 순간을 담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네가 찍어서 올려줘~' 하고, 또 어느 누군가는 손 하트를 만들어 해돋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딱히 설레는 마음 없지만 누군가를 생각하는 다른 이들의 설렘을 보자니 날씨만큼 제법 따뜻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앞에 서있던 꼬마 부모님이 꼬마에게 하는 소리를 들었다.

- 소원 빌어야지, 얼른 소원 빌어야지!


새해 처음 뜨는, 사실 마주하면 너무 눈부셔서 볼 수 조차 없는, 커다란 노란빛에 무슨 소원들을 빌까. 저 해는 어떤 소원을 골라서 들어줄까. 얼마나 많은 간절함들이 이곳 해운대에 모여있을까. 멍 하니 잡생각 이어가다가 매년 적어왔던 건강과 행복 따위의 문장을 습관처럼 다시 새겼다. 그리고서는 옆자리에 있는 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였다.


짠!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풋츄핸접




작년 오늘 부산에 도착했다. MBTI 중 대문자 E라고 불리는 사람이지만 나의 E는 extrovert(외향형)이 아닌 exterior(그저 바깥ㅋㅋ)이라서 부산 구석구석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사실 생경한 이 도시에서 혹여나 외로움에 빠지지 않게 부지런히 돌아다녔고 틈나는대로 브런치에 남겼다. 어떤 글에서 본 문구인데 1인가구 외로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일 년간 때로는 좋아서, 때로는 의무감에 차곡차곡 써 내려간 기록을 돌아보니 이 도시의 곳곳에 추억이 제법 생긴 것도 같다. 팔자에도 없는 부산이라고 온 맘 다해 부산을 밀어냈지만 어쩌면 누구보다도 더 부산을 온전히 즐겼던 일 년이었다.


지인이 새 해에 부산에서 하고픈 게 있냐고 물었을 때, 굵직한 경험들은 제법 훑은 거 같아서 마음 다잡고 부산 구석구석을 다시금 뒤져보아야겠다고 대답했다. 어떤 순간은 그저 견뎌야 할 테지만 또 어떤 순간은 돌아 돌아 추억이 될지도 모다. 2024년 첫날을 부산에서 맞이하며 나는 크게 바라는 목표와 소망은 없지만 이 도시에게 자그맣게 바라본다. 잘 지내보자 부산!




혹시 부산에서 추천하고 싶은 음식이나 경험이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간 수박 겉핥기 열심히 했으니 진또배기도 알아가 봐야죠ㅎㅎ

아울러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한 해도 들숨에 건강 날숨의 행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대반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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