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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n 24. 2024

인사이드 아웃 2 | 거울의 저주

보고 나서 쓰다.


한동안 인사이드 아웃 2 스포를 피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뭔가 알록달록한 것만 보이면 눈을 가늘게 뜨고 빨리 넘겨버리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해서 일주일 정도 열심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이번 주말 비로소 그 모임에서 탈퇴하게 된 것이다.


랜스 슬래시블레이드 Lance Slashblade


뜻밖에도 내가 가장 공감이 갔던 캐릭터는 랜스(Lance)였다. 랜스는 2차원 평면에서 무공을 익혔기 때문인지 3D 공간에 오자 맥을 못 추고 엉뚱한 곳으로 굴러간다. 세상이 너무 복잡해져 버린 것이다. 모든 게 정교하게 모델링된 세상에서 혼자서만 90년대 폴리곤 그래픽에, 안티 일리아싱도 제대로 안되어 있는 채로 존재하는 중이다. (심지어 구를 때도 혼자서만 10프레임/s 정도로 딱딱 끊기는 느낌이 든다.)



거울의 저주


랜스가 3차원 세상에서 엉뚱하게 굴러다니는 모습이 좀 안쓰럽기도 하고 나 같기도 했다.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뜻밖의 일은 항상 일어난다. 그것들은 갑자기 내 삶을 흐트러뜨려 놓는다. 마음이 어질러지는 일을 막으려고 부정적인 것은 일단 치워둔다. 나쁜 기억은 중요치 않다고 억누르거나 회피하고, 좀 안 맞는다 싶은 사람은 별다른 노력 없이 단절한다. 그러면 나와 비슷한 것들 속에서 약간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가지치기를 하면 자기 모습만 무수히 반사되는 거울의 방에 갇히게 된다. 기쁨이가 안 좋은 기억을 골라 멀리 쓰레기장으로 날려버리고 난 뒤 만들어진 자아가, 불안이(anxiety)의 손짓 한 번에 뽑혀버리는 건 이런 취약해진 자아에 대한 은유였다. 거울의 저주랄까.



슬픔은 인생을
좀 더 천천히 가도록 만든다.

영화 속 라일리는 모든 색깔의 기억을 수용하고 나서야 불안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 무엇도 버릴 수 없다는 것. 불안은 인생을 계획적으로 걷도록 만들고, 슬픔은 인생을 좀 더 천천히 가도록 만든다. 슬픔이 진을 빼놓지 않는다면 장례식 다음날 바로 일을 하러 갔다가 마음이 고장날 것이다. 


마지막에 햇살을 본 라일리의 마음에 기쁨이가 불려 온다. 이렇게 복잡한 세상이고 불안에 취약한 인간이지만, 햇살 한 점에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조금 멋진 위안이 된다. ☀︎




주말에 뭐 볼까? 보고 나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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