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아요-라는 질문에 그는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사실 사는 데 이유란 건 없었으니까. 그에게 사는 것이란 그저 숨을 쉬는 행위, 자연스러운 생리의 흐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당연했기에-- 오히려 더 의심스럽다는 게 문제였다. 왜 사냐는 지랄맞은 물음 때문에 이제는 숨소리 마저 지랄맞을 지경이다. 나는 왜 살까에 대하여. 한참을 고민 끝에 그는, 당연한 것을 전력으로 거부해 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열과 성을 다해 죽어보자고, 삶을 한 번 박탈해보자고, 결론내렸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그는, 가만히 누워서 지긋이 목을 졸라보는 중이다. 숨 쉬는 것이 조금 버겁지만, 고통스럽지는 않다. 무의식적으로 힘을 조절하고 있는 거겠지... ... 그제서야 비로소 그는,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여보시오, 왜 사냐고요? 제 손이 아직은 제 목을 조르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우.
2021. 0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