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뿐이었던 시간들을 뒤로하면 Y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Y라고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삶을 대가로 수취한 권태란 너무도 달콤한 것이었다. 죽음은—고통이라기보단 끝없는 행복일 것이다, 적어도 Y는 그렇게 믿었다. 달리 말하자면, Y는 죽어가고 있었다.
몇 달 전 샀던 섬유유연제가 문득 생각이 난 건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향이 좋아 샀던 제품. 사놓고 한 번을 뜯지 않았던. 궁금했다. 그래서 Y는 아주 오랜만에 빨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향이,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주—눈물나게 좋았다.
Y는 실은 살고 싶었다. 다시금 고통스럽고 싶어졌다. 고작 섬유유연제 때문에?
예. 고작 섬유유연제 때문에.
2021. 04.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