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8 댓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올레 Apr 25. 2023

고도비만 러너의 10km 달리기

살이 한 15kg쯤 더 찌기 전에는 그래도 러닝을 꾸준히, 그리고 내 체중에 비해 잘했다.

물론 그때도 100kg은 넘었다.

20살 이후로 몸무게가 100kg이하로 내려가 본 적은 약 6년 전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매일 5km를 달려도 큰 무리가 없었고, 10km 마라톤도 거뜬히 완주했다.

물론 코로나가 한창 유행일 떄라 언택트마라톤이었기에 오프라인 마라톤보다는 기록이 훨씬 더 좋게 나왔다.

하지만 초등학생 이후 비만을 벗어나 본 적이 없던 내가 일명 '운동 좀 하는','날씬한' 사람들의 전유물 같았던 마라톤 완주에 해냈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에서 굉장히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이 때는 나도 이 속도 그대로 정상 몸무게까지 달릴 수 있을 줄만 알았다..지금 이렇게 찌기 전까지는!!

어느덧 세월을 보내며 이 떄부터 약 3~4년이 지난 지금, 간헐적단식을 병행하며 식단 위주의 다이어트를 통해 어느 정도 체중 감량을 한 나는 다시 도전했다. 10km 러닝, 그 찬란한 도전에..

누군가 그랬다. 옆 사람과 적당히 대화를 하며 가볍게 달리는 게 내 러닝 속도라고.

혼자 달렸지만 귀에서 흘러나오는 김이나 작사가의 라디오 팟캐스트를 들으며 보이지 않는 파트너와 대화를 하며 페이스를 이어갔다.

항상 내 러닝 루틴의 반환점이 되는 약 2.7km 지점, 왠지 기분이 상쾌했다. 평소보다 페이스를 낮춘 덕인지 몸이 풀려갈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약 4km 지점, 착각이었다. 갑자기 세자리수 몸무게를 가진 나의 육중한 몸을 지탱하는 두 무릎이 조금씩 아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뛸 수는 있었다. 러닝 코스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농심 과자공장에서 솔솔 풍겨오던 갓 튀긴 과자 냄새에 취해서 무아지경으로 달려나갔다.

반환점을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페이스가 확연히 느려졌다. 어느새 나를 지나쳐가는 다른 러너들이 많이 생겼다.

약 8km 지점,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정확히 말하면 억지로 착지법을 바꾸려다 무리한 것과 러닝화가 조금 작은 탓에 발이 불편했던 게 겹쳐 족저근막염 전조증상처럼 발 아치 부분이 너무나도 아팠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10km 완주를 1/5 앞둔 지점에서 포기라니, 누군가는 8km도 안 쉬고 뛰었으면 잘 뛴 거라고 하겠지만 나에겐 달랐다. 겨우 그 정도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고난 앞에서 포기하고 말 것인가 생각하면서 이를 악 물고 달렸다.

마지막 700m가 남은 지점, 나는 항상 지키는 러닝 루틴이 있다. 혹시'질풍가도'라는 노래를 아는가? 많은 사람들이 응원곡으로, 혹은 고음 종결곡이라는 느낌으로 많이 알고 있는데 이 노래는 내가 예전에 좋아하던 '쾌걸 근육맨 2세'라는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이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근육맨이 생각나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완주를 응원하는 느낌이 들고 용기백배가 된다. 이 날도 똑같았다. 야무지게 귀에 꽂아 넣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따다따따따..한번 더 나에게~질풍같은 용기를~~'이라는 노랫말이 온 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완주. 완주했다. 10km. 살이 너무 쪄서 안될 것 같던, 아파서 못할 것 같던 그 장거리 러닝을 해냈다.

사실 이러고는 발바닥이 아파 20분은 앉아있었고, 집에 가는 길에도 절뚝거리며 갔다. 물론 지금은 통증이 싹 나았기에 망정이지, 완전 무리를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