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일깨워준 소중한 사실
"양유정님, PCR 검사에서 '양성' 나오셨어요."
새벽부터 이어진 몸살 기운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오후 반차를 쓰고 곧장 퇴근했다. 병원에선 단순 감기일 거라고 했지만, 노파심에 해본 코로나19 자가검진키트에서 연달아 두 줄이 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PCR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에 오한과 식은땀, 극심한 인후통과 두통이 나를 집어삼켰다. 그래도 간절히 바랐다. 자가검진키트가 제발 오류이기를, 그냥 지독한 감기이기를. 내 간절함이 무색하게도 결국 공식적으로 PCR 검사 '양성' 결과를 통보받았다.
목은 따끔거리고, 몸은 더웠다가 추웠다가 난리인 와중에 우선 회사에 연락부터 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고는 하나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하고, 방역당국의 지침으로 인해 열흘간 회사에 갈 수 없음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 단톡방에 지금 바로 신속항원검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공유하라는 공지가 떴다. 나 때문에 모든 직원들이 일요일 아침부터 보건소 앞에 줄 서서 검사받는다고 생각하니 정말 죄송했다. 혹시라도 금요일에 같이 점심을 먹은 팀원들, 나와 가까이 앉은 동료가 나로 인해 감염되지 않았을까 우려됐다. 특히 내 옆 자리 동료는 집에 어린 아기도 있었기 때문에 더 걱정됐다. 회사 일이 처리되는 동안 잡아놨던 친구들과의 약속도 전부 취소했다. 이미 코로나로 인해 수없이 미뤘던 약속들이기에 정말 취소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2년간 마스크 열심히 쓰며 잘 피해 다녔던 코로나에 결국 감염되고 말았다는 사실도, 무증상도 많다던데 심하게 몰려오는 증상도 너무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그보다 죄스러움이 앞섰다. 어쨌든 너무 많은 곳에 피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통증 때문에 잠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동료들의 신속항원검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하루 종일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다행히 회사 직원들 모두 '음성'이라고 했다. 그제야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내 미안한 마음을 읽으셨는지 팀장님은 ‘절대 미안한 마음 갖지 말라’고 말씀해주셨다. 감염되고 싶어서 감염된 사람은 없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조금도 자책하지 말라고 말이다. 주말 아침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부지런 떨게 만든 내가 밉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동료분들도 오히려 안부를 묻는 연락을 주셨다. 회사 걱정은 말고 후유증 없이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응원도 해주셨다. 친구들은 약속을 파투낸 나를 죽과 홍삼, 과일 등의 선물로 혼쭐 내줬다. 이게 다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잘 먹고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말이다. 매일매일 증상의 정도를 물으며 걱정해주는 친구도 있었고, 코로나 증상 완화에 도움 되는 약 정보를 찾아주는 친구도 있었다. 평소에 전화를 잘 하지 않으시는 아빠도 수화기 너머 걱정스런 목소리를 들려주셨고, 엄마는 오늘까지도 보약을 지어야 한다고 난리셨다.
나 때문에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일주일 동안 같이 격리당한 남자친구도 정말 애써주었다. 매일 내 증상을 체크해주고 주변에 사는 지인을 수소문해 약을 구해줬다. 제때 밥과 약을 먹을 수 있게, 틈틈이 창문을 열어 환기시킬 수 있게 챙겨주었다. 말 그대로 내 보호자가 되어 병수발을 들어줬다. 덕분에 나는 마음 놓고(?) 아프기만 할 수 있었다.
아팠던 열흘 동안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는 배려와 사랑을 받았다.
새벽 4시쯤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들지 못해 아침까지 고통에 몸부림쳤을 땐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였는데, 이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려면 힘내서 밥 먹고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에 이렇게나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왜 바보같이 잊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주변 이들이 힘들고 아플 때 그들에게 난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앞으로 나아가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하진 않았을까? 난 과연 이만한 사랑을 받을 만한 친구, 동료였을까? 하고.
누워있기만 하느라 인생에서 일주일이 삭제됐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게 뭔지 짚고 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정신 승리하려 한다). 아프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것, 그러니 평소에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금보다 더 자주 가족들과 친구들, 주변 사람들을 들여다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넘치는 사랑을 받은 자가 마땅히 갚아야 할 몫이라는 것 등등…. 난 정말 행복한 빚쟁이다. 아직도 기침 때문에 고통스럽고 여전히 코로나가 원망스럽지만 이 소중한 사실들을 일깨워준 것 하나는 참 고맙다. 중요한 사실들을 자주 떠올리며 살고 싶다.
2022년 2월 15일
코로나19 감염 후 일상으로 돌아온 첫 날에 쓰는 일기
+추가 : 코로나로 인한 증상 및 도움되는 약은 블로그에 정리해두었습니다(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