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유정 Jan 02. 2023

퇴사할 용기와 퇴사해도 괜찮은 마음

스물여덟, 우리는 퇴사를 선택했습니다.


이직 아니고 그냥 퇴사


2022년 10 월 1일 자로 퇴사를 했다. 이직이 아니라 그냥 퇴사였다. 다음 근무처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퇴사라니. 나답지 않은 결정이었다. 공백기 없이 일했던 나, 커리어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나, 욕심 많은 나였기에, 날 잘 아는 친구들은 당시 내 결정을 의아해했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회사의 방향성이 입사할 당시에 들었던 것과 완전히 달라졌고, 그로 인해 원하지 않는 조직으로의 인사 발령이 예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퇴사는 정해진 답이었고 다만 시기의 문제였다. 회사에 남아 있다가 이직이 결정된 후에 퇴사하는 것과 우선 퇴사를 하고 천천히 재취업을 준비하는 것, 두 가지 옵션 중 나는 고민 끝에 후자를 택했다. 원하지 않는 팀으로 출근할 생각을 하니 정말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자랑스레 사직서를 올렸지만,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퇴사를 고민했던 일주일 동안 자주 패닉에 빠졌다. 퇴사하면 그동안 내가 해온 것들이 제로가 될까 봐,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취준생 시절의 악몽이 되풀이될까 봐 무서웠다. 주니어 때만큼은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었는데, 왜 하필 내게 이런 시련이 온 건지 억울하기도 했다. 인사 담당자분과 인사 팀장님, 우리 팀장님, 그리고 대표님까지 차례로 총 네 번의 면담을 거쳤다. 결정을 해놓고도 확신이 없었기에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퇴사'란 주제를 사이에 놓고 이야기하려니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래도 마지막엔 다들 '아직 어리니까 금방 더 좋은 회사에 갈 수 있을 거'라며 퇴사를 응원해 주셨다.


수차례의 면담과 주변의 상담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 건 아니었지만, 결정적으로 생각의 흐름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대체 스물여덟 살이 뭐가 어려?'에서, '나 정말 아직 어린가?'로, 그리고 '그래, 나 어리지!'로. 모르지 않았으나 나 스스로도 자주 의심했던 사실을 퇴사를 통해 다시 인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젊다는 것,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괜찮은 나이라는 것. '나이'에 대한 가치관 변화는 정서적으로 큰 안정감을 주었다. 30대가 되어도, 40대, 50대, 60대가 되어도 '늦은 때'라는 건 없는데, 하물며 20대는 뭐든 할 수 있는 나이 아닌가. 퇴사가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 예측할 순 없었지만, 덕분에 나는 늦지 않게 '젊음'을 각성할 수 있었다.



퇴사할 용기와 퇴사해도 괜찮은 마음

일단 퇴사를 하긴 했는데, 퇴사 이후의 삶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회사를 다닐 땐 출퇴근하느라 몸은 좀 힘들었을지언정 뭐라도 밥벌이를 한다는 생각에 마음만큼은 편했던 게 사실이다. 반면 회사를 관두니 몸은 편했지만 혼자만 정체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어차피 퇴사하고 푹 쉬는 거, 마음도 몸의 편안함과 비례하면 좋을 텐데 마인드 컨트롤은 늘 쉽지 않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던 건, 작년에 유독 퇴사한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 덕분이었다.


퇴사의 첫 스타트를 끊은 건 초등학생 때부터 친했던 16년 지기 H다. 그녀는 작년 초 퇴사하고 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업무 과중으로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았고, 추구하는 업무의 방향성과 기존의 회사가 맞지 않다고 느껴진 게 이유였다. 그녀의 퇴사는 순탄치 않았다. 회사는 사업을 최대한 마무리해달라는 명분을 앞세워 H를 놔주지 않았고, 두 달이나 근무를 연장하고서야 회사를 벗어날 수 있었다. 퇴사하고 여행을 떠난 그녀를 당시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행은 휴가를 써서 틈틈이 다녀오면 될 텐데, 퇴사씩이나? 취업 이후 당분간은 '더 나은 회사로의 이직' 외에 큰 변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므로 '퇴사'라는 키워드가 꽤나 쇼킹하게 들렸다. 더군다나 회사에선 그녀의 실력을 인정해 붙잡아 두고 싶어 했기에 아쉬운 기회처럼 보였다. 이제 와서 그 당시의 결정에 대해 다시 물으니, H는 스스로 새로운 도전을 해도 괜찮을 만큼 어리다고 생각했고, 일은 돌아와서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고 답했다.


방송 쪽 일을 하던 대학 친구 J는 잘 나가는 OTT의 웹예능을 마지막으로 업계에서의 탈출을 선언(?)했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허구한 날 밤을 새야 하는 방송국 특유의 업무 방식이 J와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분야로의 취업을 준비 중이다. J를 원하는 프로그램이 많았고, 경력과 재능이 뒷받침되는 상황이었기에 그녀의 결정이 신기했다. 나를 인정해주는 분야를 과감하게 내려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J는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인생에 몇 번의 실패가 더 기다리고 있다면 이왕이면 빨리, 그러니까 20대에 하는 게 다시 일어나기에 유리하니까 말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 영업직으로 취업했던 동생 M은 첫 취업 후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 퇴사하고 어학연수를 앞두고 있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직무가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참 좋아하는 친구인데 회사에선 말도 잘 안 하고, 성과 보고가 있는 월요일 아침이면 스트레스로 인해 구토 증세까지 나타났다고 들었다. 건강이 우선이라는 건 알지만 힘들게 취업한 회사에서 퇴사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관두면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 것처럼 느껴질까 봐 이를 악물고 견딘 거겠지 싶어, 마음이 아프다. 다행히 퇴사 이후 다시 만난 그녀는 전보다 훨씬 희망차 보였다. 뭐든 해낼 것 같은,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되찾은 듯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엔 직장 내 괴롭힘으로 괴로워하던 대학 친구 J가 퇴사했다. 그녀의 상사는 주말에도 사적으로 연락을 해댔고, J가 이를 받아주지 않자 업무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금 더 버티면 경력은 채울 수 있었을 테지만 마음이 더 다치면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터. 그렇게 되기 전에 J는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빠른 퇴사를 택했다. 많은 직장인들이, '일 때문에 힘든 건 참을 수 있어도 사람 때문에 힘든 건 견디기 어렵다'는 말에 공감하곤 한다. 특히 J의 경우처럼 권위를 악용해 부당한 압력을 가하는 상사가 있다면, 지체할 여지없이 퇴사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다들 퇴사를 선택하기까지 무수한 갈등을 했을 것이다. 회사에 남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지,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몇 개월 정도를 버틸 수 있을지, 괜찮은 회사로 다시 취업할 수 있을지 등 생각하고 고려할 게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대안도 '퇴사' 만큼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토록 퇴사를 두려워했던 나도 결국 퇴사했고, 줄줄이 이어지는 주변의 퇴사 소식에 용기를 얻었으며, 퇴사 후 불안해하지 않고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회사는 수단일 뿐이니까


그렇다고 누구나 퇴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당장 주어진 휴식기를 허투루 쓰지 않으려 한다. 금전적인 이유로,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퇴사와 휴식이 간절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들도 분명 많을 테니까. 어려서, 젊어서, 그동안 모아둔 돈이 있어서, 조급해하지 않고 충분히 쉴 수 있게 기다려주는 가족이 있어서, '퇴사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지.


작년에 퇴사한 친구들은 충분한 휴식기를 거치고 다시 각자의 방식으로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단언컨대 퇴사 이후의 삶이 마냥 좋고 편하다고 하는 이는 없었고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퇴사를 후회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나 자신' 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직업을 갖고 경제 활동을 하는 게 중요한 건 맞지만,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한다는 맹목적인 생각은 많이 내려놓았다. 회사는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 될 순 있어도, 그 자체가 목적 혹은 꿈이 될 수는 없으므로.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퇴사'라는 선택지를 배제하고 고민하느라 늘 최선의 답에 이르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퇴사 후 만 3개월이 지난 오늘, 다음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퇴사하던 그날로 거슬러 올라가봤다. 혹시 몰라 틈틈이 비워둬 얼마 남지 않은 짐과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품에 안고 회사 밖으로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차피 퇴사한 거, 반드시 이 선택을 옳은 선택으로 만들어야지.'라는. 삼십 대를 앞두고 뜻밖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나와 내 친구들이, 퇴사 후 얻은 힌트를 바탕으로 2023년엔 의미 있는 삶의 지표를 찾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부터 마음을 아끼는 사람이 됐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