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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i May 06. 2020

심장이 말했다 2.

독단적이고 변변찮은 단편소설

전편이어보기



“아, 그리고 피해자 신원 말인데요.”

“벌써 복구했대?”

“아뇨 그건 아닌데, 지문 딴 결과 나오면 신원확인 가능하다고, 5분 안에 전화 준답니다.”

"그럼 선영이 시켜서 용의자 몸 수색하게 하고, 넌 구속영장부터 신청해. "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 법원에서 반려하지 않을까요?”

“임마, 시체 일부를 유기했잖아! 증거인멸 우려 있다 하고 넣어 당장!”

“아, 알겠습니다.”


인택은 선영에게 용의자를 맡기고 자리로 돌아와 초조하게 전화를 기다렸다. 손가락이 탁탁거리며 책상을 두드렸다. 소리가 점점 빨라지면서 두뇌회전도 빨라졌다. 이윽고 인택의 시선이 제형이 건넨 서류에 점철되었다. 여자의 신원과 가족관계에 관한 서류였다. 


인택은 서류를 집어 다시 꼼꼼히 읽어보았다. 딸과 남편의 이름 옆 ‘사망’이라 적힌 두 글자가 유독 눈에 거슬렸다. 인택은 남편 이름으로 사건사고기록을 조회해 해보기로 했다. 사망년도와 생년월일과 일치하는 자는 한 명, 사인은 단순자살이었다. 인택은 등골이 찌릿했다. 


'만약 자살로 위장한 타살이라면...?'


인택은 딸의 이름으로도 사건을 조회하기로 했다. 남편의 사망시점과 5년이라는 공백은 있었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오전부터 말썽이던 와이파이 때문인지, 이번엔 로딩 시간이 좀 걸렸다. 


“야 제형아! 오전 인터넷 기사 부르라고 했냐, 안했냐!”


인택은 제형에게 소리를 꽥 지르며, 손으론 남편의 자살 사건을 처리했던 관할경찰서 전화번호를 눌렀다.


"네 여기 ##경찰서 조인택 형사 인데요. 아 네, 수고하십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지구에서 살인사건이 났는데- 아, 예 야근이죠, 뭐. 아무튼 그 용의자 가족관계를 보니까 남편분이 7년 전 자살한 걸로 나오던데, 그쪽 관할이었네요? 그래서 혹시 이상한 점 없었나 여쭤보려고...  네, 용의자 등본 상 거주지가 그 쪽이에요. 예, 딸도 한분 계셨는데 현재는 사망하셨고-"


그때 멈췄던 화면이 바뀌면서 딸의 이름으로 조회된 결과가 나왔다. 인택은 움찔했다. 


"...부친 사망 6달 전에 성폭력 피해자로 조서 작성한 기록이 있네요."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탄식은 안타까움이 물씬 풍겼다.


"아이고~ B양 사건 말하시는 거구나..."


그제야 머리를 쾅! 치고 들어오는 기억이 있었다. 세간에 화제가 된 사건이었다. 7년 전 13세 초등학생을 강간한 30대 남자가 최종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었다. 당시 B양은 메신저 오픈채팅에서 범인을 만났다. 남자는 B양의 환심을 사기 위해 게임관련 이야기부터 학교생활에 대한 고민까지 들어주며 B양을 정서적으로 길들였고, 결국 B양에게 생일 선물을 주겠다며 오프라인에서 만나 강간까지 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남자에게 미성년자의제강간의 죄가 물어지지는 않았다. 그날은 B양이 13세의 생일로 부터 2일이 지난 시점이었고 재판부는 B양이 범인에게 반항으로 볼만한 강력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며 성관계에 동의한 것으로 본 것이었다. 


"그때 범인이 3심에서 최종 무죄판결 받고나서 아버님께서 스스로 세상을 저버리셨어요. 그날 친구랑 생일 파티하러 나간다는 거 '알겠다'고 한 게 계속 남으셨나봐요. 아버님 잘못도 아니고 사실 죽일 놈은 따로 있는데... 참 그렇죠. 모녀 두 분이서 아둥바둥 사셨어요. 빚 때문에 이사도 못가시고 계속 불안해 하시길래 저희 쪽에서도 특히 신경 써서 순찰해드리고요. 그런데 이게 아무래도 동네가 작다보니... 소문이... 결국 따님은 이년 전쯤인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당시 인계한 병원 이름 알려드릴까요?"


"아...아 네..."


인택은 얼떨결에 병원 이름과 번호를 받아 적고 전화를 끊었다. 인택은 병원에 전화를 걸기 전, 인터넷에 B양 사건을 검색해보았다. 검색 기간은 사건 발생일인 7년 전을 기준으로 1년을 잡았다. 대부분은 범인의 무죄에 분노하는 글이었지만 '애초에 오픈챗에서 남자하고 왜 말을 함?' '여자애가 반항했으면 남자 무죄 안 받았음' '여자가 발랑까진거지' 와같이 피해자를 모욕하는 글도 종종 보였다. 


한참 스크롤을 내리는데, 드라마갤러리에 올라온 [B양 사건 범인새끼 정의구현 당함] 이라는 게시글이 눈에 들어왔다. 폭발적인 조회 수와 천개가 넘는 댓글을 기록한 글이었다. 인택은 망설임 없이 글을 클릭했다.


‘삭제된 게시글입니다.’


“에이씨.”


인택은 작성자의 닉네임으로 검색기간을 최근까지로 넓혀 재검색했다. 대부분 드라마리뷰 글이었고 그마저도 최근 활동은 뜸해보였다. 인택은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운이 좋게도 5번째 페이지에서 관련 글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약 2년 전의 글이었지만 제목은 7년 전의 것과 조금 달랐다. 


[B양 사건 보고 느낌. 좃같은 세상]

:너네 B양 사건 기억함? 정의 구현 당했다고 쓴 거 5-6년 전인 거 같은데. 김응철 그 새끼 그렇게 죽을 날 받고 살다가 얼마 전에 수술 성공하고 x나 건강하게 퇴원했다함. X새끼. 역시 신은 없음. 


부가적인 정보가 있길 바랐지만, 댓글도 없고 조회수도 20 언저리였다. 하지만 인택은 직감이 주는 전율에 온 몸이 짜릿할 지경이었다. 바로 앞에서 들리는 전화소리도 못들을 정도로.


제형은 전화를 돌려받아 짧게 통화를 끝내고는, 인택의 어깨를 톡톡쳤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왜 전화를 안 받으세요. 피해자 신상 나왔답니다. 42세고 이름은-”

“김응철이지?”

“미리 연락 받으셨어요?”

“야, 이거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이다."

"원한이요?"

"너 7년 전 B양 사건 기억하지? 그때 피해자가 김연숙씨 딸이었고, 범인이 김응철였어.”

“네?! 확실한거에요? 수사경력자료 검색했을 때는 아무것도 안 나왔는데...”

“7년 전에 무죄 판결났으니까. 삭제되고도 남았지. 나 잠깐 어디 좀 다녀와야겠다.”

“어디 가시게요?”

“너는 여기 있다가 영장발부 되면 피의자 구치소에 수감 시켜놔. 심문은 내가 마저 할게, 알겠지?”

“네...”

“그리고 내가 링크 하나 보내줄 테니까 법원에 IP추적 허가신청도 받아놓고.”

“요즘에 함부로 안해줘요! 이유는 뭐라고 써요!!”

“대충 꾸며, 새끼야!”


인택은 소리치는 제형을 뒤로 하고 #병원으로 급히 차를 몰았다. 운전 중에도 정리되지 않는 정보들이 머릿속을 주구난방으로 헤집었다. 인택은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진 동안 빠르게 타임라인을 정리해나갔다. 


‘김연숙은 김응철에 대한 살인죄를 의심받고 있다. 피의자 김연숙씨의 딸 B양은 7년전 김응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으나 무죄로 풀려났다. 김연숙씨의 배우자는 이때 자살했다. 피의자와 B양은 이 사건 이후 김응철을 다시 만날까 매우 불안해했다. 


하지만 그는 이때 이미 건강상의 이유로 거동이 불편했던 것으로 추정. 그렇게 5년이 흘렀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년 전 B양은 차사고로 사망했다. 비슷한 시기에 김응철은 병이 나았고. 다시 일 년이 지난 후 피의자 김연숙씨는 6개월 정도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됐는데, 퇴원하자마자 김응철를 찾아가 잔인하게 살해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B양의 사망으로 복수심에 불타 김응철을 죽이려했다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 일 년 동안 기회는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더구나 퇴원을 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모든 것을 알고 있던 것 마냥 쉽게 김응철을 찾아가 죽였다는 것도 이상했다. 


인택은 병원에서 이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길 바라며 병원 지하주차장 차를 세웠다. 응급실로 올라온 인택은 의료진에게 신분을 밝히고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당시 B양이 자동차 사고로 여기 응급실로 이송되었다고 하는데, 맞나요?”

“네. TA로 인한 브레인 데스 의심상태로 입원했네요. 위원회에서 최종 뇌사판정도 받았고요.”

“단순 교통사고 였구요?”

“음... 아니에요. 운전자가 과속을 하긴 했지만 당시 환자분께서 직접 차에 뛰어들었다고 써있네요. 자살시도인거죠.”

“운전자가 그렇게 주장하던가요?”


“물론 운전자도 그렇게 말했지만, 옆에 계시던 보호자님께서도 울면서 그렇게 말하셨어요. 제가 그날 당직이라 기억이 나요. 보통은 운전자 멱살을 잡고 내 딸 죽였네 하며 통곡하는게 보통인데, 침착하게 운전자 분 말이 맞다 인정하셔서... 좀 신기했죠. 그래서 아마 경찰 쪽에서도 운전자 과속한 부분에 대한 과실 책임만 묻고, 일이 그렇게 커지진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보호자인 어머님이 침착해 보이셨다고요?”

“네. 아주요. 따님께서 TA였지만 장기 보전이 잘 되어있으셔서, 저희쪽에서 장기기증도 제안 드렸는데, 그것도 큰 잡음 없이 수락하셨어요. 뭐랄까... 이 모든 상황에 준비가 돼있으셨던 것 처럼...? 아무튼 좀 이상한 기억이었죠.”


“혹시 김응철씨에 대한 의료기록도 있나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검색을 해보더니 기록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어 보였다. 돌아와 차석에 앉은 인택은 선뜻 시동을 걸지 못했다. 풀리지 않는 실마리가 있었다. 이대로 서로 돌아가 피의자의 입만 바라본다고, 꾹 닫힌 그녀의 입이 열릴 리 없었다. 인택은 제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님, 그렇지 않아도 전화 드리려고 했어요. 법원에서 구속영장이랑 IP추적  둘 다 허가했고, 피의자는 구치소에 따로 수감해놨습니다. 선영이가 확인했는데 걸친 옷 외에 따로 소지품은 따로 없답니다. 피의자 옷은 감식 반으로 보냈고요.”


“그래, 잘했어. 그리고 ip추적하면 가정집 말고, 물류회사나 요양원, 교통공사, 병원 뭐 이런 곳이  나올거야. 그럼 전화해서 해당사이트 작성자 누구냐고 묻지말고 B양 수사건 때문에 그런다고 수사협조 좀 부탁드린다고 해, 알겠지?”

“예? 그건 어떻게 아시고요?”


“글 시간대가 새벽시간으로 비슷하게 반복되더라고. 야간교대를 하거나 그와 비슷한 직장 컴퓨터로 올렸을 거야. 괜히 사이트 언급했다가 특정하지 못한다는 거 알고 입닫으면, cctv 확인이다 뭐다 일 더 복잡해지니까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라고. 알겠어?”

“B양 수사라고 하면 자기 이야기인줄 알까요?”

“백퍼. 김응철에 대해 언론에서 풀리지 않은 정보를 아는 것 같았어. 뭔가 있는 거지.”


인택은 전화를 끊기 전, 피의자가 6개월간 입원했다던 정신병원 주소를 받아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지하주차장에서 정신병동까지는 정확히 40분이 걸렸다. 인택은 지체없이 시동을 걸었다. 인택만큼이나 몸이 달은 차는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빠르게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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