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4박 5일
서초동에 있으면 자꾸 다른 곳 생각이 난다, 고 썼던 것 같다. 상암동에 있어도 그게 남들 쉬는 날 출근이라면 자꾸 다른 곳 생각이 난다.
"덴샤 노 나까데 나니까 논데모 이이데스까."(열차 안에서 뭔가 마셔도 됩니까)
나리타 공항에 내려 열차 플랫폼에 닿자마자 방언처럼 일어가 나왔다. 최근 서울에서 음료를 들고 버스 탑승을 못하게 하는 것처럼 이곳에선 맥주+기차 조합을 막는 규범이 있을까봐. "다이죠부데스(괜찮아요)"를 듣자마자 아사히 캔 두개를 사서 하나는 a를 줬다.
숙소는 호텔 에미트 시부야. a가 시부야에 호텔을 잡았다길래 명동 한복판에서 숙박하는 느낌인 건가 싶었는데 아주 한적한 시부야 뒷골목에 있었다. 더블에 가까운 싱글 침대 두개가 있고(이 대목에서 a는 원래 1 더블베드 룸인 것을 무리하게 2 싱글베드 룸(으로 가장한 2 더블베드 룸)으로 바꾸느라 방이 이렇게 좁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 탓에 캐리어 두 개를 펼 자리가 부족했다. 역시 일본 호텔은 방이 좁다.
첫날 신주쿠에서 스시를 먹었지만 신주쿠도 스시도 평범했다. 신주쿠는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일대를 3개 쯤 합쳐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놀랍게도 또 홍대만큼 더러웠다. 일본이라고 관광객+취객 이길까.
지유가오카, 다이칸야마, 아사쿠사, 도쿄타워(...) 등 도쿄 초행길이라면 갈 법한 곳들로 남은 일정을 채웠다.
기억에 남을 만한 건 지유가오카의 paul ce cin과 다이칸야마의 the room.
the room은 그러니까 a가 그때까지만 해도 일하고 있던 모 방송국의 한 기자가 일러줘서 찾아간 곳인데, 라이브 클럽이라 했다. 적당히 밴드가 있고 좌석이 있고 그런 걸 생각하고 2천엔씩을 지불하고 문을 열었는데 텅 빈 홀에서 크고 둥글게 앉아 댄스 배틀을 벌이고 있는 댄서들과 댄서로 착각할 만큼 자연스럽게 그 원에 섞여 흥을 표출하고 있는 관중들이 있었다.
"2천엔이 대수냐 나가자"는 내 눈빛을 a가 애써 못 본체 하고 급기야 맥주까지 두 잔 시켜서 댄서들이 가방을 올려 둔, 그 안에 단 하나 있던 테이블에 버둥버둥 올라가 앉았다.
망한 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엉덩이를 붙이고 나니 마음도 좀 평정심을 찾고, '자유로운 춤'이라고밖에 이름을 붙일 수 없을 것 같은 일본인들의 그 배틀이라는 게 묘하게 점점 빠져들게 하는 구석도 있어서 종국에는 매우 즐거워져서 나오게 됐던 기억.
좀 지치고 a와도 데면데면해진 상태에서 올라간 도쿄타워가 기대보다 또 조금 좋았고.
도쿄는 처음이었는데 '서울 같다, 그런데 미세먼지가 없네'라는 게 총평. 점점 서울에서 못 먹을 것도 못 볼 것도 없어지다보니 와 역시 도쿄 신세계, 별천지 이런 마음이 들게 하는 건 없었고. (그럼에도 도쿄는 한달에 한번씩 가래도 너무 좋아 새로워, 라 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으니 아마 나랑 잘 안 맞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여행 떠나기 직전 금요일 급격히 찾아온 오한과 몸살과 장염 등등으로 여행 내내 꾸준히 우울했던 기억이 크다.
여행은 주로 혼자 간다. 적당한 포기와 조율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성정 탓에 다툼이 불보듯 뻔해서. 그나마 이런 근본 없는 갑질을 참을 인자 새기며 넘겨준 남자친구들만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왔다.
그런데 이 여행은 친구 a와 함께였다. a와 맥주를 마시다 취기에 그만 비행기표 두 개를 덜컥 예약해버린 게 계기였다.
중간중간 약간의 짜증과 툴툴거림과 데면데면함과 침묵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밤에는 맥주를 나눠마시며 다시금 막역해져서 잠들었다. 돌아와선 이 정도면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