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 자, 이제 시작이야

신생아 돌보기 타이쿤 데모 버전 체험기

by 시애

문득 정신을 차리니, 산후조리원 안에서 신생아 돌보기 타이쿤 데모 버전 플레이 중이었다. 화장실이 딸린 각자의 방 안에서 대기하다가 신생아실에서 “수유하시겠어요?”라고 전화가 오면 “네, 갑니다.” 하고 대답하고는 종종걸음으로 아기를 데리러 갔다. 신생아실 옆에는 수유실과 수유실 소파에 앉아 젖가슴을 풀어헤치고 젖을 먹이는 엄마들이 있었다. 그 틈에서 아기를 깨워가며 젖을 먹였다. 세 시간에 한 번씩 수유하시라는 전화가 왔다. 수유실의 라디오는 밤새 켜져 있었다. 아기는 작은 입을 있는 힘껏 벌린 채 격정적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젖꼭지를 찾아서 ‘크왕’하고 물었다. 경이로웠다. ‘젖 먹던 힘’이라는 흔한 수사를 비로소 이해했다. 아기는 온 생애를 걸고 젖을 찾는구나. 최선을 다하는 법밖에 몰라서 온몸으로 젖을 빠는구나.



경이로움과는 별개로, 젖을 먹이는 일은 아픈 일이었다. 먹이는 동안에는 작은 입에 깨물린 유두가 아팠고, 먹인 후에는 남은 젖을 유축기로 짜내는 과정이 아팠다. 먹이거나 짜내지 않으면 젖이 들어차 단단해진 젖가슴이 아팠다. 저 혼자 유두로 흘러나온 젖이 부지불식간에 옷을 적시는 건 덤이었다. 거기에 더해 나는 젖을 먹이거나 유축을 하고 나면 눈앞이 흐릿했다. 조리개가 고장 난 카메라가 된 것 같았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는 내 말을 듣고 조리원 원장님이 혀를 찼다.

“젖이 원래 하얀 피라. 아기한테 다 빼주고 나믄 산모는 빈껍데기뿐이고.”



모유의 성분은 쉽게 말해 적혈구가 걸러진 혈액이다(젖먹이와 흡혈귀는 비슷한 걸 먹는 셈이다). 젖가슴 두 쪽에 자궁에서 나오는 ‘오로’까지 더해 세 군데에서 수시로 피를 흘리는 몸이 되었다. 매일 세 곳의 패드를 갈았고, 자꾸만 목이 말랐고,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 챙겨간 책을 읽는 건 포기했다. 하루 세 번 밥, 하루 세 번 간식을 열심히 먹어도 몸무게는 자꾸 줄어들었다.






모유 수유 시간과 별개로 매일 두 시간씩 ‘모자동실’ 시간이었다. 두 시간 동안 고시원 같은 내 몫의 방에 아기와 둘이 있었다. 날마다 새로운 이벤트와 그에 따른 미션이 주어졌다. 풀어헤친 속싸개를 다시 싸라, 엉덩이를 씻기고 푸짐하게 똥 싼 기저귀를 갈아라, 갑자기 울기 시작한 이유를 알아내라 같은. 내가 당황한 채로 미션을 대강 수행하고 나면 다른 방에서 다른 미션이 시작되었으므로 모자동실 시간 내내 복도에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 방에서 나는지 모를 “응애!(아기는 정말 글자 그대로 또박또박 ‘응, 애’라고 운다)” 소리를 거듭 들으며 나만 이 모양인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다.



모자동실 시간을 위해 아기를 안고 내 방으로 가는 짧은 시간, 아기는 날마다 ‘오!’하는 입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이 아기가 기분 좋을 때 보여주는 배냇짓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어설픈 손길에 불편하다고 매일 “응애!”하고 울음이 터지면서도 나와 같이 있을 시간이 좋았던 걸까. 내가 미션을 하나씩 수행하는 동안 작고 이르게 태어난 아기는 ‘오!’와 “응애!”를 오가며 볼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봄날, 벚꽃, 그리고 너와 함께 했던 산후조리원. 내게는 산후조리원에서의 두 주가 '조리원 천국'과 '유축 지옥', 그 무엇도 아니었다. 아기와 내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시간이었다. 모자동실 시간과 수유 시간 동안 어설프게나마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리고, 우는 걸 어르는 법을 익혔다. 수틀리면 언제든 안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신생아 전문가들이 계셔서 덜 무서웠다.



어벙한 얼굴로 종일 젖먹이를 안고 젖을 흘리며 어느새 내게서도 젖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기는 나를 맛있는 냄새가 나는 인간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비로소 엄마가 되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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