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나랑은 말하자면은 그렇고 그런 사이니까
아기가 태어났다. 세상이 봄, 사랑, 벚꽃을 한창 노래하던 때에.
양수가 모자라서 얼른 꺼내줘야 하는 (거의) 이른둥이에다 역아, 그래서 제왕절개를 해야 했다. 예정된 수술일 전날에 커다란 가방을 가지고 입원했다. 창밖으로 커다란 벚나무들이 보이는 병실이었다. 제왕절개라 ‘출산 굴욕 3종 세트’로 유명한 내진, 관장, 제모 중에서는 제모만 하면 되었다. 그나마도 점잖게 제모 크림을 바르는 방식이었다. 아랫배와 성기가 연결되는 부위에 제모 크림을 바르고 10분 기다렸다가 씻어내니 그 부위의 털이 우수수 빠졌다. 어, 이거 신기하잖아? 이후로도 각종 검사를 하고 혈압을 재며 분주했다.
수술은 이튿날 정오였다. 드라마에서 보던 애틋함이나 긴박함 같은 건 없었다. 수술실로 가는 침대 위에 누운 내게 남편이 악수를 청했다.
“수술 잘 받고 와.”
상큼한 배웅 장면을 지켜보던 의료진이 타박했다.
“수술실 앞까지 안 따라가실 거예요?”
드라마 밖에는 수술실 앞 의자에 앉아 초조해하면서 기도하다가 아기를 보고 눈물 글썽이는 남편도 없는 걸까.
이동용 침대에 누운 채로 수술실로 옮겨졌다. 척추에 하반신 마취 주사를 놓았다. 치과에서 잇몸에 마취할 때와 비슷한 느낌. 통증이 없을 뿐 아예 감각이 없는 건 아니어서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내 다시 꿰매는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잇몸을 마취해도 내가 무슨 짓을 당하고 있는지는 아니까요. 배 안에서 아기를 들어내는 손길에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두근두근. 잠시 후, 울음소리가 들렸다. 내 속에서 나온 무언가가 살아있고 심지어 울기까지 하는 건 기이하고 찬연한 경험이었다. 아, 살아있구나.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다. 내 배가 지금 열려있든 말든.
짧은 감격의 순간이 끝나고 제법 긴 바느질의 순간, 배 위로 오가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들으며 시침질, 홈질, 박음질 따위를 생각했다. 지금 내 자궁과 근육과 피부를 꿰매는 중이겠지. 봉제 인형이 된 것 같았다. 배를 닫고 회복실로 나와 드디어 자보려고 했더니, 이제 수술 끝났으니 깨어나라고 하셨다. 저기. 잔 적이 없는데요. 그러고 보니 꿰맬 때 졸렸는데, 너무 필사적으로 졸음을 참았어. 열까지 셀 테니 이제 자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단 말이에요.
봉제 인형의 시간보다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리고 직립보행에는 배 근육이 필요하다. 앉는 데에도, 옆으로 돌아눕는 데에도 필요하다. 동작 하나하나가 어찌나 오래 걸리는지, 어째서 쉬운 게 하나도 없는지 내가 신생아가 된 것만 같았다. 움직일 때마다 꿰맨 자리가 뜨거웠다. 팔뚝에 주렁주렁 주사액이 꽂혔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펜타닐(마약입니다)도 포함된 진통제였다. 어딘지 보이지도 않는 아래쪽 어딘가에는 소변줄이 꽂혔다. 남편은 병실에서 먹고 자며 수발을 들었다. 퇴원하는 날까지도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다들 이런 상태로 퇴원하냐고 교수님께 여쭸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째서 병원 퇴원 후에 다시 산후조리원에 입원하는 루트가 유행인지 납득했다.
퇴원일 전날, 처음으로 니큐에 아기를 보러 갔다. 손에다 잔뜩 소독을 하고 일회용 옷까지 입고 나서야 아기를 볼 수 있었다. 수술 중에 울음소리만 들었던, 2.6kg으로 태어난(고맙게도 예상 무게보다 무거워 니큐에 오래 있지 않아도 되었다) 아기가 거기 있었다.
보는 순간, 알았다. 이제부터 모든 날 모든 순간 나는 엄마로 살겠구나. 다른 모든 관계는 바뀔 수 있어도 내가 너의 엄마라는 사실만은 결코 바꿀 수 없겠구나.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난 너를 사랑해. 나의 곁에 있을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