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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Mar 26. 2023

면접관에서 면접자가 되었다.

-인사팀 과장이었습니다.

 작년 3월 31일, 이날은 내가 마지막으로 출근을 했던 날이다.

 14년간 몸 담았던 애증의 첫 직장을 그만두고 온 그날, 엄마와 짜장면을 사 먹고 벚꽃 구경을 갔었다.

 실컷 쉬어보면 다시 일이 하고 싶어지는 때가 올 거라며 그때가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엄마의 위로와 쌀쌀한 바람에 흩날리던 분홍 벚꽃잎들이 불안감보다는 기대감으로 백수 생활을 시작하게 만들어 주었다.


 '놀아 본 놈이 놀 줄 안다고... 이놈의 노예근성'

 휴식 기간이 6개월을 넘어서자 공허함과 불안감이 짙어졌다. 부정적 감정들은 수백 가지의 잡념들을 생산해 내며 밤잠 설치는 날들이 점점 늘어났다.

 생산적인 일이 필요했다. '소일거리의 정도의 경제 활동을 시작해 볼까?' 싶어 처음엔 가볍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다 돈에 대한 욕심이 커진 건지, 일에 대한 욕심이 생긴 건지 올해 1월부터 이력서와 경력기술서, 자기소개서를 정성껏 준비하며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에 들어갔다.




 노무, 인사, 채용, 급여, 총무 나의 경력 기술서는 화려했다. 그중에 가장 화려한 직무는 바로 '노무'였다.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최근 3년간 각종 소송과 신고, 노동청 압수수색 대응, 노동청 불시점검 대응을 총괄 수행한 이력은 헤드헌터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경력이었는지 꽤 많은 '이직 제안'도  들어왔다.

 그들은 직책은 팀장급으로, 직전 연봉의 최대 20% 정도 인상을 제안했고, 이전 직장보다 더 큰 규모의 중견기업들이라 그런지 복지 수준도 대기업급이었다.

 

 나를 가장 빛나게 해주는 경력이 '노무'이지만, 지금과 같이 시들게 만든 결정적 원인이 '노무'였기에 사실 더 이상 그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여, 제안은 너무나 감사하지만 원치 않는 직무라는 이유로 제안들을 모두 거절했다.

 인사팀원의 가벼운 실수가 회사의 약점이 될 수 있었던 수많은 분쟁 속에서 느낀 '끊임없는 내 탓'과'사람에 대한 무서움'을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에 3~4개의 회사에 입사지원을 하면서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연봉 인상'이었다.

 이전 직장에서 퇴사 전 '팀장 승진'을 제안받을 정도로 책임감 있게 일을 잘했었기에 동일 업종의 다른 회사들보다 연봉이 높은 편이었다. 출퇴근 유류비와 휴대폰비도 지원받았다.

 처음에는 내가 이렇게 받아도 되나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대가 없는 보상은 절대 있을 수 없다.'

 '회사는 절대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다.'

 '회사는 자신들이 불리한 계약은 절대 하지 않는 냉정한 곳이다.'


 그래서 이전 직장 수준의 연봉을 받을 수 없을 걸 알면서도 소규모 기업들 위주로 입사지원을 시작했다.

 친구들과 지인들은 경력이 아깝다며 굳이 연봉을 낮춰가며 이직하려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공감과 이해를 얻지 못한 나의 판단에 확신이 조금씩 사라질 무렵, 20인 규모의 화장품 회사에서 면접을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우리 회사에 입사지원하신 ooo 씨 맞으시죠? 이번 주 목요일 오전 10시에 면접 가능하신가요?"

 면접 일정을 안내하는 여직원의 목소리에서 인사팀 과장이었던 내가 생각나 괜히 아련해졌다.

 서류전형에 통과한 기쁨보다는 이제는 내가 면접을 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에 괜스레 울적하고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면접 관련 정보를 제공하던 입장에서 제공받는 입장이 된 그 순간, 정말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 났다.


 비 예보가 있더니 정말 아침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꼭 중요한 날에는 비가 왔다.


 면접용 정장을 오랜만에 꺼내 입고 떨리기도, 반쯤 포기하기도 한 복잡한 마음으로 면접장을 향했다.

 면접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해 조용한 면접장에서 혼자 우두커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회사 접견실에서 떨고 있던 수많은 면접자들이 떠올랐다. 긴장을 풀어주고자 한두 마디 농담을 던져도 제대로 웃지도 못하던 그들이 이해가 되었다. 역시 철드는 일에는 역지사지 만한 게 없다.

 



 웃는 표정이든 경직된 표정이든 온화한 말투든 딱딱한 말투든 다정한 눈빛이든 째려보는 눈빛이든 표정과 말투에 상관없이 면접관들이 하는 모든 질문은 다 긴장될 뿐이었다.

 면접관일 때에는 다정한 말투와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며 최대한 배려를 가득 담아 면접자들에게 질문했었는데, 면접자가 되어보니 '다 소용없는 짓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전 직장 연봉까지 맞춰줄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상했던 질문이 예상대로 나왔다.

 "그 부분은 감안하고 지원하였습니다. 1년 정도 쉬다 보니 일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어, 다시 시작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습니다. 회사 내규에 따르겠으나, 많이 주시면 더 감사히 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긴장을 풀어보고자 뻔하지만 나름 농담반 진담반 골고루 섞어 선택한 대답이었다.


 "먼저 월급을 더 주고 싶은 일 잘하는 직원이 되어야 하겠죠?"

  농담 섞어 던진 말에 죽자고 덤비는 참 냉정한 말이다 싶다가도 '하긴 회사가 이런 곳이었지.'라며 바로 수긍했다.


 "수고하셨고요. 합격여부는 다음 주 월요일에 연락드리도록 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긴장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면접장을 빠져나오는 나를 면접장으로 안내했던 여직원이 따라 나왔다.  


 "수고하셨어요. 혹시 택시 불러 드릴까요?"

 일반 버스가 다니지 않는 외곽에 위치한 회사였기에 내가 집으로 돌아갈 일이 신경 쓰이는 듯 물었다. 퇴사 후 바로 차를 처분해서 택시를 타고 왔다는 내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아니요, 걷는 걸 좋아해서 좀 걷다가 알아서 가면 돼요. 신경 쓰지 마세요. 감사해요."

 처음 보는 나를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그녀에게 고마움과 따뜻함이 느껴지면서, '이 회사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겠다.'라는 마음속으로 긍정의 한줄평을 남겼다.




 회사를 빠져나와 30분을 걸었다. 비는 그쳤는데 바람이 세게 불어댔다. 얇은 봄 정장을 입었지만 생각이 많아진 터라 추운지도 몰랐다.

 면접관이었던 내가 방금 면접을 끝냈다는 사실이 걷는 내내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첫 직장에 애정이 많았다. 마지막엔 분노와 울분, 짜증이 가득한 일들 뿐이었지만 좋았던 일도, 성취감을 느꼈던 일도 많았던 곳이었다.

 재직 중에도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았는지 이직 제안 연락을 몇 번 받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뼈를 묻으면 묻었지 이직은 내 인생에 절대 없을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참 고지식한 생각이었다 싶다.


 내일이면 나의 이직이 결정 난다.

 연봉이 줄어든다고 해서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닐 것이다.

 팀원으로만 살아왔던 내가 이젠 팀장이 되어 인재관리도 해야 한다. 사실 이게 제일 두렵다.


 '두렵다, 무섭다, 한 적 없다, 하고 싶지 않다, 옳은 선택일까?'

 지금의 내 선택을 부정하는 소극적이고 소심한 생각들이 끊임없지만, 안 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설령 이 회사에 불합격 한대도.


2022년 3월의 벚꽃(좌)과 2023년 3월의 벚꽃(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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