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직과 경력직의 차이는 당당함이야! 긴장한 내색 없이 조곤조곤 말을 해야 전문적이게 보인다고!"
떨려 죽겠다는 내 말에, J는 이미 벌벌 떠는 모습이 마이너스로 작용되었을 것이라며 몰라도 당당하게 답변을 해야 한다는 일장연설을 늘여놓았다.
맞는 말이다.
인사팀에서 14년간 근무했다는 사람이 들어올 때부터 창백하게 긴장한 모습으로 들어와 답변하는 내내 면접관의 기에 눌러 흔들리는 눈동자와 떨리는 울대를 진정하지 못한 채 대답을 한다면 경력기술서에 적힌 이 많은 업무들을 수행한 사람과 지금 면접을 보고 있는 사람이 동일인이 맞는지 의구심이 생길 것이다.
이직한 경험이 없어 신입 사원 자격으로 14년 전에 3~4번의 면접 본 것이 전부인 나에게 경력직으로써의 면접은 낯선 것 투성이었다.
J가 말하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한 이미지를 주는 게 어떤 것인지 머리로는 알겠지만, 행하는 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외운 티 팍팍 내며 준비한 자기소개서의 60% 정도만 겨우 전달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분명 학생 신분으로 취직을 위한 면접을 볼 때와 직장인 신분에서 또 다른 직장을 구하기 위한 면접에서의 질문은 달랐다.
신입 사원 면접에선,
1) 성장과정과 학교생활
2) 성격의 장단점
3) 인간관계에서 나의 역할
4) 취미와 특기
5) 입사 포부
등과 같은 나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면, 경력직 면접에선 오롯이 업무 처리 능력에 대한 질문뿐이었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선 굳이 질문하지 않는다, 이전 직장에서의 업무 처리 스타일을 보고 직접 판단할 뿐이다.
1) 경력기술서에 기입된 업무들에 대한 확인 질문
2) 인사고과 및 평가에 대한 실질적 수행 경험의 예시
3) 연봉 인상에 대한 불만으로 면담을 요청한 직원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4) 직원들 사이에 발생한 분란이나 회사에 대한 불만 해결 방법
5) 엑셀, PPT파일, 워드파일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질문이 전문적인 만큼 나의 대답도 전문적이어야 한다.
버벅대며 부족한 어휘력을 들키게 되는 순간 나의 대답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고 만다.
다행히 이번 세 번째 면접은 긴장이 덜했고, 꽤 떨지 않고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하긴 했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답하는 와중에도 느껴지는 '길을 잃어버린 대답'도 간간히 했지만, 입 꾹 닫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하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며 정신 승리를 해냈다.
고백하자면, 더 이상 인사/노무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전 직장에서 하도 사람에 시달린 탓에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싫다기보다 겁이 났다.
분명 겁이 나고 겁이 났다가, 어떤 날은 인사업무에 대한 커리어를 더 쌓고 싶어졌다.
동생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금씩 일을 시작해볼까 싶다가도 HR 업무 관련 맞춤 채용공고 알림메일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어 있었다.
뭐든 뚝딱뚝딱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마흔이 되었는데도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내 삶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자주 있다.
"막상 입사시켰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능력이 없어 실망하면 어쩌지? 내가 잘 해내지 못하면 어쩌지?"
"입사했는데 역시 인사/노무가 나와 맞지 않은 직무인 걸 알게 되면 어쩌지?"
하루에도 열두 번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누구나 다 그래, 처음부터 누가 잘하냐? 차차 적응하면서 그렇게 또 배우고 성장하면 되는 거야."
"적성에 안 맞으면 그만두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J는 하루에도 열두 번 똑같은 대답으로 나의 두려움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뻥 차버려 준다.
선택을 망설이며 가상의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보자.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만히 생각만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해봤을 때 더 괜찮은 결과가 나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