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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Aug 07. 2023

인재 빼앗아 간 얌생이가 된 김 부장님.

-그 인재들에겐 구세주일지도.

 이전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나보다 두 달 먼저 퇴사한 구매팀 김 부장님은 현재 이전 회사에서 이렇게 불린다고 한다.

 '잘 키운 인재 죄다 빼앗아 간 얌생이'

 내가 퇴사한 2022년도에만 총 6명의 퇴사자가 발생한(그것도 실무자로만) 이전 회사는 자신들의 문제점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인재들이 빠져나가는지 문제점을 확인하고 개선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저 남 탓만 하는 게 지긋지긋할 정도로 여전하다 싶다.

 

 결론만 놓고 보자면 3년~5년 공들여 키운 신입 사원들에게서 이제야 투자금을 회수하나 싶었는데, 홀랑 자기네 회사로 이직시켜 버린 망할 놈의 김 부장이라 욕할 순 있을 것이다.

생산팀장 대신 생산팀을 꾸려나가던 이 과장과 이전 회사에서 유일하게 영어에 능통한 인재였던 서 과장이 김 부장님이 이직한 회사로 이직했으니 말이다.

 

 "이 과장이랑 서 과장이 일이 많아 힘들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아랑곳 않고, 오히려 팀장 회의에 참석시키더니... 당연한 퇴사 아녜요? 누구 탓만 하는 거래? 참나... 어이없어서는..."


 김 부장님과 몇 번의 통화로 내막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여간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괜찮아. 나는 그런 말들 신경 안 써. 상관없어."

 김 부장님은 어쩜 저리 매번 상관없으실까? 부처가 따로 없다.

 이렇게 모든 걸 감내하는 박 차장님과 김 부장님을 보고 있자면, 나만 모난 인간인가 싶다.

 나 같으면 잘못된 소문에 당하고만 있는 게 억울해 당장이라도 오해를 풀고자 할 텐데 말이다.


 이전 회사와 같은 공단 안에 있는 김 부장님의 이직한 회사는 하필 또 이전 회사와 도보 5분 거리에 있어 출퇴근할 때 언제든 누구든 마주칠 수 있었다.

 마음먹고 얘기하려면 할 수 있는데 왜 참고만 있으신 걸까?


 "아니요, 부장님~ 그런 오해받는 거 억울하지 않으세요? 단지, 구인 중이니 지원하려면 해보라고 귀띔만 해주신 거잖아요!"


 "이젠 나와 상관없는 회사니까. 굳이?"




 2022년 10월쯤 김 부장님으로부터 카톡이 왔었다.


-우리 회사 생산팀 경력직 구하는데 이 과장한테 이력서 내보라고 해볼까?

-이 과장이랑 퇴사 후에도 계속 연락하고 계셨어요? 아직도 힘들대요?

-아니, 퇴사하고 연락 한 적 없긴 한데... 계속 버거워했던 모습이 생각나서...

-하긴... 생산팀장님이 노무 전담하고 나서부터는 생산팀 업무에 전혀 관여를 안 하시고 계시긴 했죠...

-어딜 가나 힘든 건 똑같지만, 채용 소식 전해주면 도움 될까 싶어서.

-혹시 부장님이 스카우트해 갔다고 이상하게 소문나면 어떡해요?

-상관없어. 


 쿨내 풍기며 상관없다던 김 부장님은 나와의 카톡을 끝내고, 바로 이 과장에게 연락해 본인이 이직한 회사의 생산팀에서 경력직을 구하고 있으니 생각 있으면 지원해 보라 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요즘 부쩍 사장님의 닦달이 더 심해져, 거지 같은 회사 때려치워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거기가 지옥인 줄 알았는데, 여기도 별반 다를 건 없어. 그건 알고 있지?"


 "어디라도 여기보단 낫겠죠. 여긴 지옥 끝판왕이에요."

 노무팀장 겸직을 맡으면서 생산팀 일에는 아예 손을 떼버린 팀장 밑에서 나이 지긋한 현장 관리자들에게 비위 맞추며, 하루 열 통 이상 전화해 대며 생산 계획과 납기일 확인 해대는 사장이 있는 이곳보다는 어디든 더 낫지 않겠냐는 확신에 찬 이 과장의 목소리를 들으니 연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과장 1차 면접 봤는데, 상무님이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셔.

-진짜요? 잘됐네요!

-일단 입이 무거워 보여서 좋대. 상무님은 이리저리 말 옮기는 사람 질색하시거든.


"어? 이 과장도 있었네? 하도 말이 없길래 없는 줄."라는 잦은 놀림에도 피식 웃고 말던 이 과장 모습이 퍼뜩 떠올랐다.


 2차 면접을 앞두고 있다던 이 과장은 한 달 뒤 김 부장님이 이직한 회사로 이직했다.

 최종 합격 발표 후 사직서를 제출하자 사람들이 퇴사 후 그의 행보에 대해 연신 물어댔지만 이직할 회사에 대한 정보는 절대 함구했다고 한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서로 알만한 회사였기에 혹시나 모를 괴소문들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퍼져나갈 소문은 퍼졌다.
 
덕지덕지 여러 살이 붙어 퍼진 소문은 '김 부장이 이직 생각 없는 이 과장을 꼬셔서 데려갔다'라는 거짓을 만들어 냈지만, 어느 누구도 당사자에게 확인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바쁘게 옮겨댔고, 퇴사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나에게까지 그 거짓이 닿았다.


그렇게 이 과장이 이직하고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다시 김 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같이 일하던 남자 대리가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못하겠다며 사직서를 제출했어.

-아... 그래요? 다시 직원을 채용해야겠네요. 또 가르쳐야 해서 번거로우시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과장하고 연락해 본 적 있어? 12월 말일자로  퇴사한다던데...

-네, 서 과장 퇴사 소식 듣고 연락해 봤는데 퇴사하고 바로 베트남에 한 달 정도 놀러 간대요. 왜요?

-서 과장한테 입사 지원해 보라고 할까 싶어서...

-에? 부장님, 이 과장 데려갔다고 욕이란 욕은 다 듣고 계시면서... 서 과장까지...

-채용 공고를 냈는데 지원자도 없을뿐더러 서 과장 똑 부러지게 일 잘하잖아. 지금 내가 힘들어 죽을 맛이라, 그런 소문 신경 쓸 여력도 없다야.


 사직서를 제출한 남자 대리 몫까지 해내더라 힘들어 죽겠다며 김 부장님은 서 과장에게 연락해 입사 지원을 해보라는 얘기를 몇 번이나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며 가며 마주치는 이전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를 아예 무시할 순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전 회사보다 뚜렷하게 나은 점이 없는 현재 회사를 괜히 추천했다가 서 과장에게 욕먹는 건 아닌지 살짝의 염려가 되었다고 한다.


-어딜 가나 힘든 건 마찬가지겠죠. 그리고 입사지원 하는 것도 최종 합격 후 입사를 결정하는 것도 본인 선택이니까, 부장님 탓은 아니죠. 안 그래요?

-하긴, 그렇겠지? 어딜 가나 똑같지. 나도 뭐... 지금 보니 여기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싶다.

-적어도 하루 온종일 되지도 않는 걸로 들볶던 사장님은 없잖아요. 그리고 팀장님들 중에 유일하게 영어에 능통하셔서 전혀 상관없는 그룹 회의에도 매번 불려 다니셨는데, 이젠 적어도 '통역사 역할'은 안 하시지 않아요?

-그렇지. 여긴 부서마다 영어 잘하는 애들이 있어서 내 일 아닌 회의에 불려 다니진 않아.

-그거 하나는 낫네요. 서 과장한테도 얘기라도 해봐요. 결정은 서 과장이 하겠죠.


그로부터 한 달 뒤, 서 과장도 서류합겹-1차 면접- 2차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전무님이 엄청 마음에 들어 하시는데? 영어 면접을 한 시간 정도 봤는데 막힘없이 잘 대답하더래."


 "우리가 저평가돼서 그렇지, 나가면 다들 똑 부러지는 애들이죠! 괜히 내가 다 뿌듯하네요."

 

 사장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해 일보다는 술자리에서 더 눈이 반짝거리던 팀장 밑에서,

 이것까지 해내면 이것조차 내 일이 되어버릴까 못 들은 척, 못하는 척만 하던 팀장 밑에서,

 직급 이상의 일을 해내며, 서로에게 피해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날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해내면 당연히 우리의 일이 되어 있었고, 사장님은 노고의 값으론 술 한 잔이면 된다며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회식 자리에서 사장님은 '무능한 팀장들'이라며 나의 상사를 욕했고, 우리는 점점 '보고 배울 상사'를 잃어갔다.



-과장님! 저 돌고 돌아 다시 OO산업단지로 들어왔어요. 이직 성공했어요!

서 과장으로부터 이직했다는 카톡을 전해 받은 건, 그녀가 입사하고 3개월의 수습기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축하해! 잘됐네!

-저 사실... 김 부장님이랑 이 과장님이랑 같은 회사 다니고 있어요. 수습기간 다 지나고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왠지 모른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진짜? 축하해! 생판 모르는 곳에서 적응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한두 명 아는 사람 있는 곳이 더 낫겠네.

-네, 맞아요. 이직하길 잘한 것 같아요. 여긴 중구난방으로 일 시켜대는 사람 없어요.  제 일만 하면 돼요.


서 과장은 이직한 회사에 만족해했다.

물론 괴팍한 상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전 회사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김 부장님이 서 과장의 이런 속내를 알게 되면 엄청 좋아하겠다.




"그거 알아요? 김 부장님 지금 완전 배신자 됐어요."

이전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 대리가 "거지 같은 회사, 그만둘 거예요."라고 엄포를 놓은 지 6개월 만에 이직에 성공해 축하자리가 마련되었다. 물론, 이 과장과 서 과장도 참석한 저녁 식사 자리였다.


 "왜요? 왜 배신자예요?"

 서 과장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깐풍기 하나를 집어 들며 물었다.


 "왜긴요. 김 부장님이 이 과장님이랑 서 과장님 데리고 갔잖아요."

 이 대리는 당연한 사실이라는 듯 말했다.


 "누가 누굴 데려가요? 우리가 오란다고 넙쭉 갈 사람들도 아니고..."

 말없이 소주만 들이켜던 이 과장이 어이없다는 듯 받아쳤다.


 "데려간 거 아녜요? 스카우트 제의받고 두 분 다 면접 없이 바로 이직한 거 아녜요?"


 "뭔 소리야~ 우리 절차대로 1차, 2차 면접 다 보고 들어갔어."


 "에~ 그래도 김 부장님이 좋은 말 해주지 않았을까요?"


 "좋은 말을 해주셨을 순 있지,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야. 면접 준비 얼마나 열심히 했다고. 나 2차 면접에서 영어 면접만 한 시간 봤어! 얼마나 힘들었다고!"


 "그리고 김 부장님이 배신자라 소리들을 만큼 큰 역할 하지도 않았다 뭐."

묵직한 이 과장의 한마디에 괜히 웃음이 났다.


 "중요한 건 이전 회사가 직원들의 하소연을 무시했다는 거 아닐까? 이 과장도 서 과장도 재직 중에 충분히 힘든 점을 토로했었잖아. 번번이 무시당했을 것이고?"


 "맞아요. 저는 직급보다 과분한 업무들이 버겁다는 말을 한 바로 다음 날 팀장 회의에 참석하라는 사장님 지시를 받았어요."


 "저도요, 전 영업팀인데 2년이 넘도록 기술팀 그룹 회의 참석에 자료 정리까지 다 했었거든요. 왜 내가 기술팀 업무를 해야 되는지 하면서도 짜증 났는데, 그룹과의 업무 협업을 위해 신규 채용한 기술팀 사원이 아직 업무에 미숙하다는 이유로 퇴사하기 전까지 계속 제가 기술팀 업무를 지원했었어요. 일을 시켜야 능숙해지지 시키지도 않으면서... 이럴 거면 왜 뽑았나 싶더라고요."


 "맞아요. 뭐든 잘하면 안 돼요. 차라리 바보로 사는 게 편해요."


 회사원으로 첫 발을 내디딘 첫 직장의 마지막 소감이 바보로 사는 게 편하다는 것이라니 씁쓸한 일이다.




-지난주에 이 과장이랑 서 과장이랑 만났는데, 김 부장님 배신자라고 소문난 거에 정말 어이없어하던대요?

-그렇지, 내가 무슨 배신자까지. 상관은 없다만.

-그래도 사람들이 부장님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싫지 않아요? 괜찮아요?

-어쩔 수 없지 뭐, 안 보면 그만인 사람들인데 뭐.

-그래도... 부장님... 억울하지 않아요?

-어휴, 너 몇 번이나 묻니? 괜. 찮.아. 하루하루 내 일 해내기에도 바쁘고 지쳐.


사실 서 과장이 이직한 회사가 '김 부장이 다니고 있는 그 회사'라는 소문이 나자마자, 이전 회사 인사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알고 봤더니 김 부장님네 회사 인사팀 직원과 이전 회사 인사팀장님과 아는 사이였단다. 세상 좁다 좁아.


 너무 한 거 아니냐며 쏘아대는 인사팀장에게 "그만두고 쉬고 있는 애한테 입사 지원하라는 게 잘못이니?"라고 말하니,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싶었는지 인사팀장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듯 "아 몰라요! 아무튼!"이라며 전화를 끊더란다.


 회사의 문제점 따윈 알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알게 되면 본인 업무가 되어버릴 거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과오를 마주하게 될 테니까.

 


새삼 퇴사 전까지 '보고 배우고 싶은 유일한 상사'가 김 부장님이었던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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