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차장님은 1년 먼저 퇴사한 나를 '선배님'이라 칭하며 늘 그렇듯 인심 좋은 밝은 목소리로 나의 안부를 물었다.
1년 사이사이 연말과 명절 인사를 나누며 가끔씩 연락하고 지내는 동안에도 변함없던 차장님의 밝은 목소리.
그런 박 차장님의 퇴사가 전혀, 절대로 믿기지 않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버티던 나의 지난날처럼 차장님도 그렇게 버티며 잘 이겨내 줄 알았는데, 3월 말 서울로 이직한 박대리로부터 품질팀 박 차장님의 퇴사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에이... 그러다 말겠지... 설마 정말 그만두시겠어?"
사직서가 수리되었고 퇴사 일자까지 확정되었다는 박대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올해까지 치면 근속 22년이야. 청춘을 다 바친 회사를 그만둔다고? 그것도 한창 애들 밑에 돈 들어갈 일 많은 이 시기에?"
"하기는... 그렇죠? 한창 돈 벌어야 하는 이 시기에... 설마 진짜 그만두진 않으시겠죠?"
단호하게 믿지 않는 나의 태도가 정보 전달자인 박대리조차 믿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씩 품고 있다는 '사직서'를 참고 참다 '보여주기 식'으로 던진 건 아닐까?' 싶었다.
"알지 알지, 내가 박 차장 힘든 거 알고 말고.", "이번만 참자, 대안을 생각해 보자."라는 뻥카와 공짜 술로 어르고 달래면 전부인 줄 아는 윗머리들의 수작에 또 그렇게 넘어가 차장님의 사직서가 철회되었다는 소식이 곧 들려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과장님!! 진짜 그만두시는 거 맞대요! 인사팀에서 말렸는데도 그만두신대요! 거제도 가신대요!"
며칠 뒤, 나의 예상과는 달리 정말 퇴사를 하시는 것도 모자라 저 멀리 거제도까지 가게 되었다는 말을 박대리로부터 다시 전해 듣게 되었다.
'왜.... 지? 늘 애기들 사진을 자랑처럼 꺼내 보이던 차장님이 토끼 같은 자식들을 놔두고 혼자 왜 거제도까지...'
차장님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바로 이곳에 취직하셨다고 했다.
라떼는 계장 달고 주임 달고 나서야 대리가 될 수 있었다며 사내 규정이 바뀌어 사원에서 바로 대리로 진급한 너희들과 라떼의 '대리 직급'은 엄연히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술만 마시면 하셨다.
이곳에서 결혼도 하시고, 첫째와 둘째 아이도 생겼다 하셨다.
그 첫째와 둘째 아이의 돌잔치에 나도 초대를 받았었다.
이곳에서 직장인이 되었고, 남편이 되었고, 아빠가 되었다고 하셨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마다 직장동료들이 함께 해 주었고, 그 힘으로 여태 버텨오셨다고 했다.
지금쯤 차장님도 한 번은 못해 먹겠다고 드러누우셔야 되는 거 아니냐며, 그만 참고 부장님과 업무 분장 관련면담을 해보라고 권유하는 나에게 '어차피 내가 하게 될 일이야.'라며 투덜대는 것 없이 묵묵히 하던 분이셨다.
하긴... 바락바락 못하겠다 목청 높여봤자 내 목만 아플 뿐, 못해먹겠다던 그 일은 어느새 내 앞에 와있다.
"차장님, 그렇게 참다가 몸에서 사리 나오겠어요. 왜 혼자 다 하려고 하세요? 그런다고 알아주지도 않는다고요!"
새로 뽑은 검은색 그랜져를 비닐도 벗겨내지 않은 채 자랑하며 애지중지하셨지만 2년도 채 되지 않아 불량 대응 출장과 선별 출장으로 주행거리가 10만 Km를 넘어섰고, 또다시 경기도로 선별 출장을 떠나는 차장님께 속상한 마음에 내지른 내 말에 차장님은 또 그저 힘 없이 웃으며 돌아오면 치맥이나 한 잔 하자셨다.
"그놈의 술술! 그러니까 윗머리들이 술 사주면 다 풀리는 줄 안다고요!"
하극상의 강펀치를 맞고도 차장님은 '허허'거리며 회사 정문을 나설 뿐이다.
차장님의 진짜 퇴사 소식을 전해 듣고 며칠은 싱숭생숭했다.
'오죽했으면... 오죽했으면 퇴사를 결심하셨을까?'
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정확한 사유는 모르겠지만 그간 고생하셨다. 막상 나와보니 많은 사람들이 다른 많은 일들을 하고 있더라, 우리가 모르는 세상도 많으니 우물을 뛰쳐나온 차장님을 응원한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보냈다.
정작 스스로에겐 칭찬과 응원이 인색하지만, 차장님에겐 온갖 응원의 말을 정성껏 끌어모아 전해 주었다.
"참... 회사라는 곳이 희한한 것 같아요. 그래도 좋은 추억도 많았는데 내가 이곳을 정말 떠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막판 되면 오만 정이 다 떨어지게 해주지 않아요?"
"그러게 참 희한하더라. 나도 그냥 계속 다닐까 싶다가도 하는 꼬락서니들 보니 더 하고 싶지도 않고, 섭섭한 것도 슬픈 것도 없이 그냥 시원하기만 하다."
"그래도 참... 좋았던 추억은 많았어요... 현장직 파업으로 관리직이 현장에 투입돼서 제품 만들 때 얼굴은 꼬질꼬질해선 서로 박카스 나눠 마시면서... 몸은 힘들었는데 오히려 정신은 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 너도 얼른 건강해져서 다시 이직해야지. 이 나이에 나도 다른 지역으로까지 가는데... 너도 다시 시작해야지! 안 그래?"
"네! 열심히 생각 중이에요. 다시 돈 벌어야죠!"
"그래! 4월 말까지 회사 그만두고 5월엔 좀 쉴 거니까 그때 밥이나 한 끼 하자! 내가 회사에 정 떨어진 이야기 싹 다 풀어주마!"
짠내 나고 서글프고 서러워하다 한탄으로 끝맺을 줄 알았던 우리의 대화는 생각보다 밝았다.
퇴사 후 처음 경험하게 될 삶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적 문제들은 스스로가 충분히 알고 있기에 지금 서로에게 필요한 건 단지 응원의 한 마디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내 나이 마흔, 차장님 나이 마흔 중반.
내 입만 풀칠하면 되는 나는야 미혼,
초등학교에 다니는 토끼 같은 자식이 둘이나 있는 차장님은 한 가정의 가장.
나야 그렇다 치고, 20년 근속한 차장님을 퇴사하게 만드는 중소기업의 결정적 이유는 도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