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일자로 회사를 그만둔다 했던 차장님이 나와의 '밥 한 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락 온 것은 5월 중순이었다. 한 달 정도 쉬고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는 줄 알았는데 점심 식사 약속 다음 날이 출근일이라고 했다.
"그럼 기숙사에서 생활하시는 거예요?"
"응, 거기 직원 2명이랑 같이 지내게 될 것 같아."
대구가 아닌 타 지역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차장님은 마흔 넘어 가족과 떨어져 지낼 결심까지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매주 2~3시간 운전해서 주말마다 대구로 오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거라며 걱정하는 나와는 달리 의외로 쿨했다.
"매일 제품 불량 건으로 선별 출장 가는 것보다 매주 2~3시간 운전해서 집에 오는 게 훨씬 껌이야."
1%의 아쉬움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장님의 대답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타 지역으로의 이직을 선택하셨을까 짐작이 갔다.
"왜 그만두신 거예요? 웬만해선 그만두지 않으실 분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기나긴 사연을 다 풀려면 몇 시간 들어야 될 텐데 준비됐냐?"
"당연하죠. 궁금해 죽겠어요."
차장님은 내가 퇴사한 2022년 1월 품질팀 팀장으로 승진했다.
중소기업에선 승진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특히, 이전 회사에서는 매년 노사 간의 임단협 교섭을 통해 확정된 인상률을 반영하여 협상 없이 전 관리직의 연봉이 인상될 뿐, 승진했다고 추가로 연봉을 더 인상시켜 준다거나 베네핏을 제공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승진은 그저 책임감과 부담감을 늘리는 구실일 뿐이었다.
제품 불량으로 고객업체에 대응 및 선별작업을 위한 출장은 늘 차장님의 몫이었다.
어떨 때에는 대량 불량건으로 타 지역으로 출장 가 계셔서 3개월 간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박 차장 또 나들이 갔구만!"
박 차장님의 선별 출장에 몇몇 직원들은 그저 바람 쐬러 놀러 갔다는 식으로 부러워했다.
나였다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놀러 갔다고 얘기하지 마세요! 출장 가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라며 울분을 토했을 텐데 사람 좋은 차장님은 그런 말들에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정색한 적이 없었다.
"팀장으로 승진해도 팀원 충원 없이 늘 선별 출장은 내 일이었어. 게다가 장 부장님이 품질 및 생산 총괄이사로 승진하시면서 부장님이 맡고 있던 해외 불량 건까지 내가 맡게 되면서 일은 더 늘어났지. 영어도 못하는데 매번 파파고 돌려서 번역하고 영작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현장 대응도 내가 하고 출장 후 보고서 작성도 내가 하고... 살 수가 없겠더라."
"그래도 차장님은 술 한 잔과 위로면 다 풀리는 그런 분이셨잖아요. 그래서 솔직히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정말 퇴사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았어요. 술 한 잔과 위로에 또 넘어가실 거라 생각했어요."
"나도 처음엔 그랬지... 인사 팀장이랑 사장님이랑 저녁 식사 무지하게 많이 했었어. 사장님도 나에게 품질팀 업무 분장을 새로 해서 일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겠다며 적극적으로 개선시키겠다 약속도 했었고... 그 말에 마음 고쳐먹고 다시 회사를 다니기로 결심했었지..."
"그런대요?"
사장님은 품질팀장에서 생산 및 품질 총괄이사로 승진한 장 부장님에게 박 차장님의 애로사항에 대해 이야기하며 품질팀 관련 업무를 박 차장님과 나눠 함께 해나가길 지시했다고 한다.
장 부장님은 사장님 앞에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해놓고, 박 차장님을 불러내 한 말은 아예 내용이 달랐다고 한다.
"딱 1년만 더 버텨. 더 버티고 나랑 내년에 같이 그만두자. 나도 더 이상 못해먹겠다."
"나는 지금이 너무 힘들어 죽겠어서 겨우 어렵게 퇴사를 결심했는데, 이 상태로 1년을 더 버티라니... 그게 해결책이 된다고 생각한 건지 어이없더라. 그리고 1년 뒤엔 뭘 어쩌자는 건지... 정말 장 부장 본인이 그만둘 생각이라면 1년 뒤에 혼자 남은 나는 어떡하라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 자신의 안위만 생각할 뿐, 남의 고통은 그저 자신의 편리함을 위한 수단이 될 뿐인 거지."
"회사 그만두고 시원섭섭하시지 않아요?"
"전혀. 나는 온 힘을 쥐어짜서 최선을 다했어. 그래서 전혀 미련이 없어. 시원하기만 해."
"저도 처음엔 그랬거든요. 미련도 없었고, 개운하고 통쾌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이 회사가 나를 조금만 덜 몰아붙였다면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선택까진 하지 않았을 텐데'라면서 원망하게 되더라고요."
"난 진절머리 나서 그런 생각조차 안 들어. 그냥 이 회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차장님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작년에 나보다 먼저 퇴사한 김 부장님도, 김 과장도, 내가 퇴사한 후 줄줄이 퇴사했던 이 과장, 박 과장, 서 과장도 그리고 당연히 나도 모두가 한결같이 했던 그 말.
"이놈의 회사 확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요."
분명 회사에서 같이 일할 때는 누구보다 심성 착하고 맡은 일에 게으름 피우지 않던 사람들이었는데, 회사를 그만두는 시점엔 '악'밖에 남지 않은 채 회사에 저주를 퍼부었다.
처음엔 '아. 나만 못돼 처먹은 게 아니구나.' 라며 위안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이렇게 변한 우리의 모습이 서글프고 안타깝게 여겨졌다.
"이직하는 회사랑은 연봉협상 잘하셨어요?"
"연봉 협상은 무슨... 내가 기술을 배우러 가는 거라 협상까진 생각도 못해. 주는 대로 받아야지..."
"네? 아니 그래도... 가족들이랑 떨어져서 멀리 가시기까지 하는데..."
"그만큼 열심히 배워서 얼른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그 수밖에 없어..."
그 순간 "그냥 회사에 연봉이나 올려달라고 하고 계속 다니시지 그러셨어요."라고 말할 뻔했지만, 이어지는 차장님의 말에 순둥이 차장님이 현재의 일상을 포기하고 가족들과의 떨어짐까지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되었다.
"내가 처음에 퇴사하겠다고 사직서를 내고 사장님과 첫 면담을 하는데 말이야. 그때는 이직할 곳을 정해두고 있지 않았거든. 지치기도 했고 힘들어서 좀 쉬자 싶어 사직서를 낸 거였단 말이야."
"아? 진짜요? 저는 이직할 회사 다 미리 정해놓고 사직서 내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장은 날 이직할만한 인재로 생각하지 않았던 거지.
마흔 중반의 내 나이에, 영어도 못해 뚜렷한 기술도 없어, 그저 그때그때 닥친 일을 처내기만 하면서 품질팀에서 20년 근무한 내가 갈만한 회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래서 한창 자식들 돈 들어갈 나이인데 이직할 회사 구해지면 그때 그만두라며 내가 이직 못할 거라고 생각하더라.
한방 먹이고 싶었어. 이런 나를 원하는 회사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
"원래 그렇게 늘 얘기하잖아요. 하는 일 없다고 우리 무시하고..."
"지금 이직하는 곳 사장님은 내가 필요하대. 해보지 않은 분야라 망설이고 걱정하는 내게 그 사장님은 오면 잘할 것 같대. 그래서 꼭 같이 해보자고 부탁하더라."
사장님이 늘 회의 시간에 입버릇처럼 하는 말,
"그 사람 도대체 하는 일이 뭡니까? 그런 사람은 없어도 됩니다."
자기 기준에 1인의 몫을 제대로 하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인재라 생각될 만한 직원도 단 한 명도 없다.
누구든 땜빵 가능한 그런 일을 하는 직원들 뿐이다.
"그런 사람은 돈 몇 푼 더 주면 됩니다. 마음 쓸 것 없어요."
가끔 사장님은 누가 들을까 겁나는 대범한 말을 내 앞에서 서슴없이 하셨다.
업무의 고충을 털어놓는 직원들을 그저 나약하다하며 늘 우리에게 자부심과 자신감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회식 때마다 부족하고 모자란 나를 그나마 이 회사에서 받아주고 이만큼 월급도 챙겨준다라는 생각을 가지게끔 주입시키기도 했다.
가정이 있는 가장은 쉽사리 퇴사를 결심하지 못할 거라는 사장님의 오만에 보란 듯이 '사직서'를 던졌다. 결국 차장님은 돈보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선택했다.
"해보고 안되면 다시 대구 와야지 뭐. " 설렁설렁 안되면 말고 식으로 쿨하게 얘기하고 계시지만 나는 안다. 누구보다 열심히 맡은 바 최선을 다하실 것이라는 것을, 원래 그런 분이시니까.
"차장님, 나중에 또 시간 되면 차 한잔 해요. 내일 첫 출근도 응원할게요."
"그래, 고맙다. 우리 그 회사에서 다 같이 신나게 일하고 신나게 놀았어. 그렇지?"
"맞아요. 새벽 4시까지 술 마시고 누구 하나 지각없이 출근했었잖아요."
"이제 그런 시절이 또 오기나 할까 싶다. 안 와도 상관없어. 그걸로도 충분해."
멋모르고 입사한 첫 직장에서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걸로 만족스러운 회사 생활이었다고 나 스스로를 위로했는데, 차장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다.